「반야심경」, 260자로 압축된 대승불교의 진수
반야경은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전이다. 그런데 ‘반야경’은 하나의 경전에 대한 명칭이 아니다. 반야경은 소품(小品)으로 분류되는 「도행반야경」, 「팔천송반야경」 등과 대품(大品)으로 분류되는 「방광반야경」, 「대품반야경」 등 여러 ‘반야경’들에 대한 통칭이며, 이 경전들은 기원전 100년경에서 기원 후 1200년경에 이르는 긴 시기에 걸쳐서 저마다 성립되었다.
「반야심경」은 이러한 반야경의 핵심 사상을 요약한 경전으로, 한역본(漢譯本)으로는 소본(小本) 2종과 대본(大本) 5종이 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반야심경」은 소본으로 분류되는 현장 역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 대승불교의 심오한 진수를 불과 260자의 한자로 압축해놓은 현장 역 「반야심경」은 그야말로 한국 불자의 삶과 함께하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실체로 받아들이지 말라
「반야심경」은 불교의 모든 경전 가운데 가장 짧고도 익숙한 경전이지만 막상 읽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일반인의 눈에는 「반야심경」의 간단한 내용을 구성하는 진술들 하나하나가 암호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물론 불교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그 암호들을 불교의 기본 개념들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것은 더욱 넘기 힘든 난관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반야사상의 귄위자인 이태승 전 위덕대 불교문화학과 교수가 집필한 「인문학 독자를 위한 반야심경」은 이런 「반야심경」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너무도 유명한 말은 무슨 뜻인가? “색(色)이 곧 공(空)이다”라고 풀이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지만, “색이 곧 공이다”라는 진술이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아니, 그 이전에 불교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공’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공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실체적 개념을 해체하는 것이다. 「인문학 독자를 위한 반야심경」은 이 부분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설명한다. 「반야심경」 가운데 언급되는 오온, 십이처, 십팔계, 십이연기, 사제와 같은 불교의 기본 개념들을 간명하게 짚어보는 것은 물론, 일반인에게는 낯선 지혜륜 역 대본(大本) 「반야심경」과의 교차 검토까지 진행하며 공에 대해 살펴본다. 불교의 맥락에서뿐만 아니라, 불교를 배태한 더 넓은 지적 차원인 인도철학의 맥락에서도 공을 다루는 접근법 역시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이를 통해 이 책은 대승불교의 핵심인 공을 선명하게 이해시켜준다.
대자유의 세계를 향해
불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공 자체가 아니다. 불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삶의 길이며, 공은 그 새로운 삶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 독자를 위한 반야심경」 역시 이 부분에 주목한다. 이 책은 공성(空性)의 체득, 즉 반야바라밀다에 대한 설명을 디딤돌 삼아, 나와 남의 구별이 신기루 같이 사라지는 대자유의 경지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모델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지혜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며, 스스로를 구원하고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든 사물이든 ‘나’이든, 모든 것이 연기된 것일 뿐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 그 모든 것들 사이의 구분 역시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주변과 더욱 합일하게 되고 나아가 우리 자신이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됩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