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론 |
고통과 결핍 극복의 성장 시학
강 나 루
(시인, 《시와사람》 부주간)
1. 시작하면서
이 시집은 배명희 시인의 유년에서 시작해 40대가 된 최근까지의 기록이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하나의 존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서사와 서정을 형상화한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성장시의 형식과 내용을 올곧게 보여준다.
이 작품집은 성장시면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배명희 시인은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자신의 결핍이라 할 수 있는 장애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된 사색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성장시와는 그 결이 다르다. 남들과의 다름에서 오는 시적 화자의 고통은 대개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에서 기인한다. 8세 무렵 그것을 자각한 이후 10여 년간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이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과정이 아니며, 자기 자신과의 싸움 끝에 완성한 성장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배명희 시인은 시를 배운 적이 없다. 세간의 시인들처럼 세련된 시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그는 시가 무엇인지 전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꾸밈없는 언어는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며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시적 배경은 시적 발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정성으로 인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모두 창작 연도가 말미에 기재되어 있다. 이는 창작일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인의 생물학적인 나이와 사고(思考)의 연령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를 통해 시인이 그 나이에 어떤 사고와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
2. 태생적 한계로 인한 성장의 고통 발현
유년에는 자신이 장애를 가졌어도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의 번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8세의 기억을 재구성한 「홍시」에서 사랑하는 손녀를 위해 “가을마다 감을 골라/ 항아리 속에 꼭꼭/ 넣어두”신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볼이 터질 듯 달콤한/ 홍시가/ 살얼음을 품고/ 입속으로 쏘~옥” 들어왔던 유년의 기억이 그립기만 하다. 이 작품에서는 아직 자신의 결핍에 대해 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맑은 소녀의 감성이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9세의 기억을 되새긴 「할아버지의 약속」에서 처음으로 시적 화자의 성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할아버지께서 나를 업고
동구밖을 거니시며
“명희야 할애비가 죽으면
하늘 위에서 우리 명희 꼭 낫게 해줄 거야.
그때는 마음껏 뛰어놀아도 돼.”
엄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하늘에서도 나를 낫게
해주신다 했는데,
왜 나는 아직 그대로일까?
할아버지가
아직 하늘에 도착하지 못하신 걸까?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 「할아버지의 약속」 전문
이 시집에서 시적 화자는 배명희 시인이다. 자전적 성장 과정을 시적 정서로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시인이 9세 무렵의 기억을 되살려 쓴 것으로, 이미 시적 화자는 자신의 장애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어린 손녀를 업고 다니며 “명희야, 할애비가 죽으면/ 하늘 위에서 우리 명희 꼭 낫게 해줄 거야,/ 그때는 마음껏 뛰어놀아도 돼.”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배명희 시인의 장애는 여전히 계속된다. 그래서 화자는 엄마에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하늘에서 나를 낫게/ 해주신다 했는데,/ 왜 나는 그대로일까?”라고 궁금해한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아직 하늘에 도착하지 못하신 걸까?”라고 묻는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 작품에서 ‘하늘’이라는 장소성은 ‘사람이 죽으면 되돌아가는’ 공간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은 현실을 모르는 시적 화자의 고통을 염려하는 가족의 염원이 깃들어 있지만, 배명희 시인의 성장의 단초가 된다.
「눈물의 김밥」에서 시인은 학교에서 소풍 가는 날, 방에 앉아 만화영화를 본다. 엄마는 몸이 불편해 소풍 가기 힘든 딸을 위해 “과자봉지를 사다 놓으시고,/ 부엌에 앉아/ 훌쩍이며 김밥을 싸셨다.”
「오빠들」에서는 오빠들이 막내 동생을 목마 태워 비행기놀이를 해준다. 넘어질까 봐 손을 잡고 “한발, 또 한발/ 발맞춰 걸어간다.”
「언니들」에서는 휴가 때 서울에서 온 언니들이 예쁜 옷을 사 와 입히고, 초콜릿을 사준다. 이처럼 어머니는 딸 걱정에 시름이 늘어나고, 오빠들과 언니들은 장애를 가진 막내 동생을 위해 온갖 사랑을 베푼다. 이러한 환경의 시적 화자는 온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 배명희 시인이 12살 무렵의 일이다. 물론 이후로도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은 계속되지만, 시적 화자의 성장통은 멈추지 않는다.
「뛰어놀고 싶어요」에서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장애를 인식하며 고뇌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시적 화자는 신적 존재에게 “저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노는데/ 저도 내 몸인데,/ 왜 마음대로 안 되나요?”라며 원망의 목소리를 낸다. “숨이 차도록 달리며/ 술래잡기,/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싶”다며 하소연한다.
이 무렵 시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다. 그 시선은 왜곡된 사회적 편견에서 시작되고, 시적 화자의 자의식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특히 사람들의 시선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내 마음을 찔러요./ 너무 아파요.”라고 절규하며 괴로워한다.
다음의 「원망」에서는 자신이 믿는 신적 존재인 절대자 하나님에게 원망을 쏟아낸다.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초라하게
만드셨나요?
왜요?
남들은 보기 좋게, 예쁘게,
흠 하나 없이
만드셨으면서요.
저는 남들처럼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너무 힘들어요.
제발, 하나님 곁으로
저를 데려가 주세요.
우리 부모님에겐
저 말고도 자녀가
네 명이나 있으니,
저 하나쯤 없어도
괜찮지 않겠어요?
저는 저녁마다 기도해요.
다음 날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은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면서요.
그런데 왜
제가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나요?
저도 건강한 몸으로 남들처럼
마음껏 뛰어보고 싶어요.
제가 욕심이 너무 과한가요?
그저,
남들처럼 건강한 몸으로,
친구들과 재미있게 수다도 떨고,
평범한 하루를 살고 싶을 뿐이에요.
남들에겐 평범한 일이
왜 저에겐 이렇게 힘든가요?
- 「원망」 전문
이 작품에는 신적 존재인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이 혼재한다. 하나님은 기도와 믿음의 대상인 동시에,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존재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면서요/ 그런데 왜/ 제가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나요?”라는 대목에서 보듯 화자는 하나님을 모순적 존재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하나님에게 원망의 질문을 던진다.
“왜 저를 이렇게 초라하게/ 만드셨나요?// 남들은 보기 좋게, 예쁘게,/ 흠 하나 없이/ 만드셨으면서요.”라는 화자의 강한 어조는, “왜요?”라고 하나님께 따지듯 묻는 대목에서 원망의 목소리를 더욱 강하게 드러낸다. 화자는 장애로 태어난 자신과 그로 인해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음을 토로하며 “너무 힘들어요.”라고 원망한다. 그리고 “제발, 하나님 곁으로 저를 데려가 주”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특히 “저는 저녁마다 기도해요./ 다음날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고통과 절망을 표출한다.
화자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이 자신에게는 힘겨운 것인지 신적 존재에게 따지듯 묻는다. 그러면서도 신적 존재에 대한 화자의 믿음은 여전하다. “다음날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간절히 기도하는 믿음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신앙의 끈을 놓지 않은 시적 화자는 훗날 이 믿음이 자신을 지키는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배명희 시인에게 10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색하고 질문하며, 타자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날카롭고 예민해졌다. 그러나 그러한 사색과 비교 속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한 체념과 두려움이 시인의 정신을 지배한다.
「계단」에서는 말 그대로 계단을 오르내릴 때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계단 오르내리는 일이 공포스럽다고 진술한다.
「직선」에서는 시적 화자가 평탄한 길을 걷고 싶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내 갈 길은/ 굵은 곡선이라고/ 이미 정해진 것을,”이라며 자신의 운명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길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절망적인 인식은 사춘기가 지날 때까지 지속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배명희 시인의 시적 발화는 장애로 인한 결핍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태생적 장애로 인해 한동안 결핍이 지속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적 화자의 인식 태도는 굴절되고 왜곡되며, 이를 시로 형상화하여 특별한 성장시의 형태로 나타난다.
3. 결핍 극복 의지의 성장시
서정시에서 성장시는 보편적으로 시적 화자의 현실 적응 과정에서의 부적응과, 보다 나은 인간으로 서기 위한 정신적 성장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실존적 고뇌를 거쳐 높은 경지의 정신세계를 지향한다. 그런 까닭에, 성장시는 인생의 어느 한 과정에서만 치열한 삶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자기 갱신의 모습을 이어간다. 시인에게 성장시는 숙명이기도 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배명희 시인의 성장시는 자신과 타인 간의 육체적 다름을 인식한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인식은 사춘기에 더욱 격화되었다가 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러 자신의 다름을 수용하고, 그것이 실존의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되며, 마침내 결핍을 결핍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극복에 이르게 된다.
배명희 시인이 15세가 되던 해, 「강인한 꽃」에서 처음으로 결핍 극복 의지를 보여준다.
벼랑 끝에
비바람이 내리치고
사나운 바람이
날 때릴지라도
나는 꿋꿋하게 서 있는
한 떨기의 꽃이 되리라.
- 「강인한 꽃」 전문
이 작품은 짧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시적 화자의 강인한 의지가 돋보인다. 오랜 시간 방황하던 영혼이 마침내 「강인한 꽃」을 쓸 수 있었음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장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졌기 때문으로 여느 성장시와는 사뭇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벼랑 끝에/ 비바람이 내리치고/ 사나운 바람이 날 때릴지라도// 나는 꿋꿋하게 서 있는/ 한 떨기의 꽃이 되리라.”라고 처음으로 희망적인 시인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까닭이다.
이 작품은 높은 수준의 시적 형상화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결기가 돋보인다.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도 직선의 길이 아닌 곡선의 길(「직선」)이 예견되더라도, “벼랑 끝”으로 상징된 그 길을 “비바람이 내리치고/ 사나운 바람이/ 날 때릴” 것이라고 해도 꿋꿋하게 꽃을 피우는 꽃이 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시련을 은유화한 ‘벼랑’, ‘비바람’이라는 현실에 굴하지 않는 ‘한 떨기의 꽃’은 겉으로는 나약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벼랑’과 ‘비바람’에 맞서는 ‘한 떨기의 꽃’은 마치 강철처럼 느껴진다.
이후 배명희 시인의 시는 점점 더 밝아져 장애에 대한 비관적인 사고는 사라지고,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태도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걸음걸이」에서는 시적 화자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불안불안,/ 아슬아슬,/ 위태위태,/ 비틀비틀,”하여 “잡아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다. 이는 염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태도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혼자 걸어갈 수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혼자 걸어갈 수 있음이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한편, 「기도」에서는 누군가가 시적 화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너그럽게 웃어 넘길 수 있도록, 참기 힘든 언어로 힘들게 하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내가 나에게」는 시적 화자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진정한 마음을 엿보게 한다. 오랫동안 자신의 장애를 결핍으로 바라보았던 시선이 이제는 따뜻한 긍정으로 변한다. “전엔 날 싫어했잖아,/ 창피하다며,”했던 적이 있었지만, “내가 살아보니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라고 고백한다. “난 네가 정말 좋아./ 명희야,/ 정말 사랑해!!”라고 자신에게 위로하기에 이른다.
「여유」에서도 “이젠 눈물도 식어가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네”라고 편해진 마음을 내비친다. 지옥 같았던 시간들이 고통의 감옥이었다면, 이제는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게 된 기쁨을 노래한다.
이렇듯 시인의 정신적 변화를 이끈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가 믿고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그런 까닭에 「축복」에서 “나에게 주신/ 모든 것들이/ 주님의 축복입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된다.
「감사의 조건」에서 보다 구체적인 감정을 고백한다.
비록 시력이 좋지 않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솜씨를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내가 자유로 호흡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비록 말은 잘 못하지만,
귀로 듣고 대화할 수 있음에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내 걸음은 비록 느리지만,
누구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있음에,
나에게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비록 손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펜을 잡고 내 마음을 글로 표현
할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지극히 공평하신 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님이여!
감사의 조건을 깨달을 수
있도록 나에게 장애를 선물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장애를 통해 저는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를
마음 깊이 깨달았습니다.
장애가 없었다면.
감사의 마음을 모르고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았을 겁니다.
- 「감사의 조건」 전문
이 작품은 그동안 시적 화자를 고통스럽게 한 원인으로 인식되었던 육체적 장애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시력 저하’, ‘언어의 어눌함’, ‘비틀거리는 걸음’, ‘손의 부자유스러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눈이 잘 안 보여 불편했지만, 그것조차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솜씨를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비록 말은 잘 못하지만,/ 귀로 듣고 대화할 수 있음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라고 진술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내 걸음은 비록 느리지만,” “나에게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비록 손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펜을 잡고 내 마음을 글로 표현/ 할 수 있음에 행복”하다고 긍정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러한 마음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 대상이 “지극히 공평하신 나의 하나님”이라고 믿는 시적 화자이다. 그는 “감사의 조건을 깨달을 수/ 있도록 나에게 장애를 선물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를 드린다. 이는 “장애를 통해 저는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를/ 마음 깊이 깨달았습니다.”라는 진술에서 드러나듯, 장애를 감사의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몸이 성한 사람들 중에서도 여전히 자신은 물론 세계와 불화하며 마음이 편치 못한 경우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장애’는 ‘결핍’이 아니라 축복이자 선물로 받아들이는 배명희 시인의 시는 장애로 인한 성장시는 완성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4.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
배명희 시인이 ‘절망’ 혹은 ‘좌절’의 세월을 보낸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장애 때문이다. 그는 장애를 결핍으로 인식하였으나, 그것을 극복한 이후에는 지극히 보편적인 사고를 하기에 이른다. 26세 때 쓴 「그리움」은 그 나이에 맞는 그리움의 정서를 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하루 종일/ 그대 모습을 보며,/ 내 가슴에 묻어두고,/ 잠 못 이루는 밤/ 나 그대 생각하네.”라고 노래한 짧은 작품이지만, 마음속에 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무렵에 쓴 「손길」에서는 “그대를 사랑하는 만큼/ 그대가 머무는 곳에/ 내 손길이 닿기를.”이라고 읊으며, 혼자서 바라보는 그리움의 대상에게 자신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순정한 감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좋아하는 죄로」에서는 “너를 좋아하는 죄” 때문에 “내 가슴은/ 조용히 아파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또한 “너의 영역을 알면서도/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좋아하는 대상이 시적 화자의 사랑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아파하는 것이다.
이렇듯 시인의 사랑의 감정은 답답한 상황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사랑하는 나의 반쪽./ 그 날개를 찾아서/ 행복의 둥지로/ 푸르게 날아가고 싶”(「파랑새의 희망」)다고 한다.
하늘처럼
높고 넓은 마음으로
구름처럼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고 덮어주며,
해처럼
따뜻한 가슴으로
나의 모든 걸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
비처럼
나의 아픈 상처를 씻어주고,
새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내 영혼을 평안케 해주는 사람.
번개처럼
아주 큰 웃음과
빛나는 날갯짓으로
나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
나와 아름다운 동행이
되어 줄 사람. 그런 애인
있었음 참 좋겠다.
-「그런 사람」 전문
시적 화자가 기다리는 사람은 ‘하늘’, ‘구름’, ‘해’, ‘비’, ‘새’, ‘번개’ 같은 우주적이고 자연적인 것들이다. “하늘처럼/ 높고 넓은 마음”, “구름처럼/ 나의 부족한 부분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람, “해처럼/ 따스한 가슴”을 지닌 사람, “비처럼” 상처를 씻어주는 사람, “새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영혼을 위로해주는 사람, “번개처럼/ 아주 큰 웃음”을 주는 사람이 “나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와 아름다운 동행이/ 되어 줄 사람./ 그런 애인 있었음 참 좋겠다.”고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품은 배명희 시인이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를 갖게 된 지 10여 년이 지난 29세 때 쓴 것으로, 참으로 오랜 시간 외로움의 시간을 보낸 시인의 깊은 시름이 배어 있다.
장애로 인한 고통을 극복했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 “비처럼/ 나의 아픈 상처를 씻어” 줄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습에서 보이듯, 여전히 자신의 결핍을 인식하고 있다. 또한 “새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내 영혼을 평안케 해주는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에서는 외로운 영혼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이러한 복합적인 정서의 심란함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어서, 지극히 건강한 시인의 정신성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다음의 작품 「사랑·1」, 「사랑·2」는 최근 시인의 사랑에 대한 정서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달콤하다,
입안 가득 퍼지는 꿀처럼.
조용히 스며들며
마음을 적시고,
눈부신 미소를 남긴다.
그러나 때로는 쌉쌀한 여운을
남기고
아린 추억을 품는다.
그럼에도,
사랑은 달콤하다.
- 「사랑·1」 전문
나의 불완전함까지
온전히 바라봐 주는 사랑.
휘청이는 마음의 그림자 속에도
빛을 내려준 따스한 눈빛
거짓 없는 마음으로
나의 오늘과 내일을 품어주는
그런 사랑이
내 곁에 와준다면,
함께 걷는 길이
더 빛날 것 같아.
- 「사랑·2」 전문
「사랑·1」은 시적 화자의 ‘사랑’에 대한 개념과 감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사랑은 “달콤하다”, “쌉쌀한 여운”이라는 상반된 감각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는 “입 안 가득 퍼지는 꿀처럼/ 조용히 스며들”어 “마음을 적시”기 때문이고, “아린 추억을 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의 감정은 그것이 진행되는 동안의 감각이기도 하지만, 사랑이 좌절되었을 때는 “아린 추억”으로 남는 것이어서, 사랑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가오는 감각적 경험이다. 그럼에도 시적 화자는 “그럼에도,/ 사랑은 달콤하다.”고 한다.
「사랑·2」는 사랑의 본질을 노래한 작품이다. “나의 불완전함까지/ 온전히 알아봐주는” 마음이 사랑의 본 모습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빛을 내려주는 따스한 눈빛” 같은 것이 바로 그러한 사랑의 실체라는 것이다. 더불어 사랑은 “거짓 없는 마음”이어서 “나의 오늘과 내일을 품어주는” 마음이며, 현재는 물론 자신의 미래까지 온전하게 함께 해주는 마음이라고 시적 화자는 말한다. 그래서 “그런 사랑이/ 내 곁에 와준다면,/ 함께 걷는 길이/ 더 빛날” 것 같다고 고백한다.
살펴보았듯이, 배명희 시인은 오랜 시간 자신과 동행할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나의 불완전함까지/ 온전히 바라봐 주는 사랑”이라고 밝힌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는 자신의 장애에 대한 인식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에 오랜 시간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5. 나가면서
배명희 시인의 시집 『나와 나의 동행』은 자신의 장애를 결핍으로 인식하는 데서 시적 발화를 한다. 시인은 다른 사람들과의 육체적 다름에서 비롯된 자기와의 갈등, 그리고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왜곡된 시선에서 느껴지는 따가움으로 인해, 절망과 좌절, 분노의 정서가 그의 삶에 오랫동안 머물렀음을 작품 속에서 드러낸다. 그러나 마침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며, 참된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장의 과정은 단순히 인내와 고통을 넘어, 스스로의 노력과 더불어 기독 신앙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인간적인 그리움과 누군가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통해 여전히 성장의 과정을 겪고 있다. 육체적 장애의 극복 과정에서 치열하게 맞섰던 고통을 통해 성숙에 이르렀지만, 사랑과 관계에서의 성장통은 여전히 그의 삶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 고독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며, 이는 인간의 본성과 본질적인 정서를 드러낸다. 따라서 시인이 고독과 성장통을 기꺼이 겪고 받아들임으로써 또 다른 성숙에 이르기를 기대하며, 그의 시 속에서 그 과정이 계속될 것임을 소망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