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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 花道

화도 花道

  • 정관호
  • |
  • 시와사람
  • |
  • 2025-02-26 출간
  • |
  • 128페이지
  • |
  • 125 X 200mm
  • |
  • ISBN 9788956657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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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 평설 |


화도花道로 피워낸 깊고 짙은 서정의 울림
- 정관호 시인의 『화도花道』을 읽고


강 대 선
(시인)


정관호 시인은 일찍 등단했다. 등단하고서 몸과 마음이 세상을 떠돌았다. 그가 겪은 산전수전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지만 그는 늘 마음 어딘가에 시의 허기가 남았노라고 말한다. 고희를 넘긴 그가 다시 찾은 시는 꽃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거짓’으로 얼룩진 세상과는 다른 순수와 정화와 순리를 담은 시를 보면서 성찰의 시간을 시로 받아 적었다. 시인의 말을 통해 그가 써 내려간 시의 여정을 읽어보자

화도花道는
꽃이 쓰는 시입니다
귀담아듣고 가슴에 심어보고
허공에 날려 보내기도 하는
꽃이 쓰는 詩입니다

때론 부메랑처럼 돌아와 꽃을 피우는
변화 일색, 구름 같은
내면의 얼굴입니다

각지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고
다시 차오르는 샘물이다가 넋두리로도 흐르는
꽃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바다 같고
엄마 같은
이 청정한 아침
마음속 여울목으로 살포시,
시꽃을 피웁니다

먼저 그는 ‘화도花道’는 꽃이 쓰는 시라고 말한다. 꽃이라는 시적 대상과의 교감에서 일어나는 시심을 받아 적었다는 의미다. 그러니 이 시들은 시인이 쓴 것이 아니라 시가 시인의 마음을 거울처럼 읽고 들려준 시라는 의미다. “귀담아듣고 가슴에 심어보고/ 허공에 날려 보내기도 하는” 그의 시는 꽃과의 시간을 서술하고 있다. 꽃이 말에 귀 기울인다는 의미는 모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의미가 된다. 꽃을 보며 자기를 성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이 속에 담겨 있다. 가슴에 심어도 보지만 받아 적지 못한 말들은 허공에 날려버리기도 하는 시와의 대화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날아가 버린 시어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꽃을 피우는/ 변화 일색, 구름 같은/ 내면”이라고 말한다. 날아가 버린 시어들이 돌아오는 시간은 오랫동안 궁구한 시간을 의미한다. 시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정원의 꽃을 돌보고 시를 쓴다. 꽃들과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이 시가 되어 다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의 시 쓰기를 통해 꽃이 시가 되고 시가 꽃이 되는 경험을 한다. 이러한 대화는 매번 새롭다. 사계절이 다르고 한 달이 다르고 하루가 다른 변화의 시간을 시인은 예민하게 따라간다. 꽃의 말은 시인의 내면이 속삭이는 말이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시인의 언어들이 꽃을 통해 말을 한다.

시인이 지닌 내면의 언어들이 둥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거짓으로 얼룩진 세상에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그 또한 풍진 세상에 나가 몸과 마음이 상처를 입었으리라. 그러니 그의 내면의 언어가 “각지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고/ 다시 차오르는 샘물이다가 넋두리로도 흐르는” 다양한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시를 쓰는 과정을 은유하기도 한다. 시는 어느 순간 가슴을 가득 채우다가도 어느 순간 넋두리처럼 허망하게 빠져나가기도 한다. 이는 시인이 진정으로 시 쓰기에 전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이 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새로운 감각과 서정을 열어 보이게 하는 열쇠가 된다. 이제 시인은 자기가 꽃이라는 사실을, 꽃이 자기라는 사실을 각성한다. 꽃이 쓰는 시는 꽃과 시인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이룬다.

그는 꽃이 쓰는 시를 통해서 어디에 도달한 것일까. 그는 “바다 같고/ 엄마 같은/ 이 청정한 아침”을 통해 시의 꽃을 피운다고 말한다. 그의 시가 “청정”에 이르고 있음을 우리는 눈치챌 수 있는데 이는 공자가 시 305편을 산정刪定한 후 말한 사무사思無邪의 경지와 다를 바가 없다. 다시 말해 300여 편의 시에는 사특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의 시가 언어의 기교를 부르지 않으면서도 진정성 있게 독자에게 다가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에는 요사함도 없고 간특함도 없다. 오로지 가슴에서 나오는 진심이 꽃의 말을 통해 울림을 준다.

그의 시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띠고 있지만 하나로 엮어보면 ‘사랑’이다. 사랑 안에 기도가 있고 성찰이 있고 그리움이 있고 연민이 있다. 그가 김남조 시인의 시집 『사랑초서』를 읽고 외울 정도로 좋아했던 것은 그 속에 담긴 사랑의 서정이 진심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랑이 “마음속 여울목으로 살포시,/ 시꽃”을 피우게 하는 힘이 된다. ‘여울목’은 시인의 시를 쓰는 자리일 것이고 고뇌의 자리일 것이고 사랑의 자리일 것이다.

당신의 뜨락에
눈으로 휘날리겠습니다
생각하면 은혜와 은총으로 가득한 생이었습니다
천상의 고운 뜻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음이 가슴을 울립니다
성은으로 하얗게 부서지겠습니다
진창으로 더럽혀진 허방
죄의 자리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이제는 생의 자리를 새롭게 하소서
당신의 뜨락에서 무릎 꿇나니
뜨거운 눈물을 허락하소서
이 은빛 고운 날
가장 낮은 자의 가난한 마음으로
당신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뜨거운 기도의 마음을 주시어
어둔 밤을 밝히게 하소서
이 연약한 영혼에게 당신의 뜨락을 허락하소서
은하의 밤,
새로움을 입은 영혼이게 하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남은 생을
휘날리게 하소서
- 「화도 3」
시인에게 ‘당신’은 절대자이자 구원자이며 사랑하는 대상이다. “당신의 뜨락”에 눈으로 휘날리는 일은 시인에게 은혜이고 은총이다. 시인이 절실한 천주교 신자인 점을 생각한다면 시인에게 기도는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다. 시인은 “진창으로 더럽혀진 생의 허방마다/ 죄의 자리에서 허우적거리”었다고 말한다. 진창은 땅이 질어서 질퍽하게 된 곳을 뜻하는 1차적 의미의 확장을 통해 힘들고 괴로운 삶을 의미하고 있다. 이곳에서 더럽혀진 생의 허방에서 시인은 ‘죄’의 존재를 느낀다. 이 부분에서 제가 죄인입니다. 죄인 중에서도 괴수입니다. 라며 울부짖었던 바울을 생각하게 한다. 자신이 죄인인지 몰랐던 사울에서 이제 예수 앞에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바울은 정체성에서 천지 차이가 난다. 죄를 고백함으로 거듭남의 존재로 거듭남, 즉 중생하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시인은 ‘당신의 사랑’을 다시 인식한다. 죄 많은 나를 아직도 사랑하고 계시는 당신 앞에서 시인은 ‘가장 낮은 자’가 되겠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 어둔 영혼의 등불을 밝히고자 한다. 시인의 기도는 시인의 영혼을 뜨겁게 한다. 이러한 기도의 힘은 지상에서 가장 힘이 없는 존재인 꽃과의 동일시가 가능하게 한다. 자기도 죄의 바람에 불어오면 힘없이 꺾이듯 꽃도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금방 꺾이지 않던가. 시인이 꽃을 사랑하는 이유는 절대자인 ‘당신’이 죄 많은 시인을 사랑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시인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는 특별한 존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갈구와 함께 결핍 의식이 시인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시인이 얼마나 부모님의 사랑을 그리워했는지 다음 시편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아버지 오신다

달빛을 등에 지고 오신다

저벅저벅, 파도처럼 밀려오신다

토방에 구두 벗으시고 한숨 내쉰다

한 세월 거친 비바람에

닳아버린 구두창

이제 와 생각하니,

어린 자식들 키우시느라 얼마나 허둥대셨을꼬

아버지 되어보니
그 파도 소리, 가슴 헤집는다
- 「화도 58」

시인이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는 ‘구둣발 소리’다. “저벅저벅,/ 파도처럼 밀려오시”는 아버지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구둣발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한숨이 아버지의 기억을 완성한다. “닳아버린 구두창”을 보이며 어린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시던 아버지. “얼마나/ 허둥대셨을꼬”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을 엿볼 수 있다. 이제 시인이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로 살아보니 아버지의 ‘닳아진 구두창’과 ‘한숨’의 의미를 알 것 같다. 파도처럼 밀려오던 아버지의 기억이 먹먹하게 가슴을 헤집는 시간. 아버지의 사랑을 되새김한다.

초췌하다

저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린 초승달

사내는 어디 떠돌다 이제야 고향에 들었나

나목裸木의 등걸에는

어머니 가신 후 정적이 흐르고

떠도는 발길
고단하건만

무덤가에 앉아

잔 받쳐 드는 저, 사내
- 「화도 48」

시인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먼저 ‘초췌하다’로 이미지화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어머니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시인의 마음이 앙상한 가지처럼 떨고 있다는 것이고 그가 외로움으로 초췌할 만큼 힘들어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머니를 잃고 정처 없이 떠도는 아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의 삶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단어가 ‘고단’이다. 이 고단의 시간의 돌고, 돌아 다시 어머니 무덤가를 찾아온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립기 때문이다. 무덤가에 “잔을 받쳐 드는 저, 사내”가 시인이다. 불효자의 잔을 받쳐 들고 울었을 시인의 마음을 상상하니 애잔하고 눈물겹다.

거짓이 몽니 부린다

가히 독버섯이다

거짓에 논바닥이 갈라진다
속세의 어두운 그림자를 어찌하리

거짓 눈물 판을 치는

얼룩진 세상사

저, 꽃을 보아라

네 마음에 침을 놓는

저 순수의 진실을 보아라
- 「화도 23」

시인이 경험한 세상의 ‘진창’은 어떤 곳이었을까. 시인의 시를 통해서 일부 확인할 수 있다. “거짓이 몽니 부리”는 곳이다. ‘몽니’는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부리는 성질을 뜻한다. 그러니 세상은 겉과 다른 속을 지닌 ‘음흉’하고 심술궂고 욕심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는 의미다. 이러한 세상을 시인은 ‘독버섯’이라고 일갈한다. 진짜가 아닌 거짓이 판을 치는 곳에서 논바닥이 갈라지듯 순수한 이들의 마음이 갈라진다. 어찌할 수 없는 거짓이 세상이 얼룩이 지듯 시인의 가슴도 얼룩이 진다. 그러나 여기에서 시인은 절망하지 않는다.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얼룩을 지우는 기도. 그 기도가 꽃을 보는 일이다. 꽃을 보면 마음이 순해지고 깨끗하게 정화되기 때문이다.
사각의 벽에 꽃이 피었습니다

영하의 벽에 얼어붙은 숨으로 피었습니다

깊은 밤,

사각의 벽 안에서 시꽃이 피어납니다

미완의 불길이

담쟁이처럼 벽을 타고 오르고

마침내 시의 불이 벽을 넘으면

벽 속에 갇힌

시어가 활활 올라올 것입니다

만화방창으로 벽을 넘을 것입니다
- 「화도 6」

기도하는 일은 마음에서 자연히 우러나오는 일이기도 하지만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세상을 은유하는 ‘사각의 벽’에 ‘꽃’이 피었다. 이러한 불가능한 설정은 상징을 읽어야 한다. 세상은 ‘영하’의 온도다. 이곳에서 “얼어붙은 숨”으로 피어 있는 꽃은 누구일까. 시인 자신이기도 하고, 시를 쓰는 이들을 이르기도 할 것이다.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온도를 꽃은 감지한다. 이 온도를 자양분 삼아 꽃은 담쟁이처럼 벽을 타고 오른다. 꽃이 벽을 타고 넘는 담쟁이의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얼어붙은 꽃은 담쟁이의 생명력으로 변하고 다시 활활 타는 불이 된다. 이 뜨거움으로 ‘사각’으로 말해지는 세상의 편견을 넘으면 “벽 안에 갇힌 시어가 활활 올라올” 것이다. 그러니 시인에게 기도와 같은 시어는 담쟁이 같은 생명력이자 불같은 뜨거움이다. 이 불로 피워낸 시꽃이 “만화방창으로 벽을 넘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슴앓이 눈물꽃인가

죽도록 사랑해서

가슴앓이 눈물꽃

숯처럼 타버린 후에도

노을빛 멍울꽃

별들이 안다네
- 「화도 39」

기도와 시를 향한 뜨거움을 시인은 ‘가슴앓이’라고 말한다. 시를 쓰는 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잘 표현한 구절이 있을까 싶다. “죽도록 사랑해서/ 가슴앓이 눈물꽃”을 통해 시인은 꽃과 기도와 시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죽도록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사랑은 기쁨과 환희의 순간은 잠깐이고 노을빛이었다고 점점 어두워지는 멍울꽃이 피어난다. 멍울은 림프샘이나 몸 안의 조직에 병적으로 생기는 둥근 뭉치를 말함이니 가슴앓이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준다. 그 가슴앓이는 기도와 시와 꽃을 향한 마음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한다. 이 마음을 별들이 안다고, 알아줄 거라고 엄살 한번 부려보는 것이다.

기도하는 일은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자 성숙으로 도달하는 길이다. 성찰은 거울을 들여다보듯 꽃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고 내면의 소리를 받아 적는 일이다. 성찰을 통한 성숙이야말로 시를 통해 이루어야 하는 가장 아름다운 경지다. 시인은 일상적으로 대하고 바라보는 대상을 통해 삶의 깨달음, 달관, 순리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견지한다.

이제는 닳고 닳은 빗자루 신세지만

아직은 마당을 쓸 수 있지
벽 귀퉁이에 주저앉아 새벽잠 설치는 사내

내일 아침이면

다시 마당을 쓸러 나오겠지

꽃처럼 웃겠지

닳고 닳은 몽뎅이꽃

청정한 가을 하늘 담으러

닳아진 몸으로 가을을 쓰는 꽃
- 「화도 19」

시인의 눈에 ‘몽당빗자루’가 들어왔다. 닳고 닳은 몽당빗자루는 시인이기도 하다. 이제 칠순을 훌쩍 넘은 나이. 닳고 닳은 몽당빗자루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아직은 마당을 쓸 수 있”다며 자기의 쓸모를 말한다. 여기에서 ‘아직’이라는 말이 주는 힘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다시 마당을 쓸러 나오겠지/ 꽃처럼 웃겠지”를 통해 사내의 소망을 드러낸다. 사내는 시를 쓰며 꽃 피우는 시인의 모습을 닮았다. 그 시에 청정한 가을 하늘이 담긴다. 정관호 시인을 다른 말로 하면 “닳아진 몸으로 가을을 쓰는 꽃”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첫사랑이 온다

첫사랑 순결보다 눈부신

순백의 눈

저 눈송이 품어도 좋으련만,

가슴이 옛사랑 그리움으로 젖는다

은빛
눈물

흘러내린다
- 「화도 31」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순수의 열망’이다. 순결과 고결을 지향하는 일은 꽃과 같다. 지금 ‘첫눈’이 내린다. “첫사랑 순결보다 눈부신/ 순백”으로 눈으로 표현한다. 저 순백의 눈송이를 품고 싶다. “가슴이 옛사랑 그리움으로 젖는다”를 통해 ‘옛사랑’이 시인의 가슴에 순수와 순백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세상의 진창에서 더럽혀지고 얼룩진 영혼은 다시 순수와 순백의 영혼으로 되돌리고 싶은 것이고 그 방법이 기도이며 꽃을 보는 일이고 시를 쓰는 일이다. 기도로 젖은 마음이 눈물로 흘러내리는 일은 정화이자 승화의 지점이다.

짙푸르던 은행나무 노랑나비 떼 앉아 있다

멀리 가려는 듯

만추의 샛노란 깃털을 하고

바람 오면 새처럼 날개를 파닥인다

서릿바람 불면

저 나비들, 군무 추며 날아가겠지

내년 봄에 다시 만나리

일제히 날아오르는 노랑나비 떼

당신에게 날아가려는지

내 어깻죽지에도 노란 날개가 돋는다

만추의 바람이 불어온다.
- 「화도 47」

이제 시인은 순리를 받아들인다. 때가 되면 모두 떠나가야 한다. 시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받아들이는 태도다. 시인은 거부가 아니라 순응한다. 하지만 이 순응이 무력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품고’ 미래를 견인하는 희망으로서의 순응이다. 가을 은행나무에 은행잎들이 노란 나비로 앉아 있다. 은행잎들은 ‘만추의 샛노란 깃털’로 비유된다. 바람이 오면 날개를 파닥이는 이 나비들. 시인도 이제 날아가야 할 나이가 되었다고 인식하는 것일까. 떠남의 아쉬움을 두고 시인은 “내년 봄에 다시 만나리”라고 말한다. 떠나는 일은 만나는 일이라는 거자필반去者必反, 즉 떠나는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듯이 죽음 또한 생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믿음이 여기에 있다. 떠나서 어디로 가는가. 떠남은 ‘당신’에게 가는 일이다. 그러니 떠나는 일도 그리 서러운 일만은 아니다. 당신을 만나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상처 많은
분꽃 위로

별들이 내려앉는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듯
천상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낮은 곳에서
누군가
두 손을 모은다
- 「화도 88」

시인의 기도는 바람이자 기원이다. “상처 많은/ 분꽃 위”에도 순수와 순결을 의미하는 별들이 내려앉는다. 은총은 대상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시인의 귀에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듯/ 천상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인이 듣는 이러한 환시와 환청의 경험은 에피파니 Epiphany의 순간, 즉 깨달음의 시간에 들려오는 풍경과 음성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인지하는 것이다. 낮은 곳에서 손을 모으는 이는 시인이다. 시인과 같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사람들이자 신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익어가는 일은 겸손하다

추수꾼은 빈 곳간을 겸손으로 채운다

둥근 알갱이

대를 잇는 종손처럼 겸손하고 올곧다

소슬바람에
휘어진 쪽두리꽃

휘영청
달빛에 고개 숙인다
- 「화도 86」

시인이 기도로 익어가는 일은 ‘당신’ 앞에서 낮아지는 일이다. 다시 말해 ‘겸손’의 자세다. 추수꾼이 빈 곳간을 알곡으로 채우듯 이제 시인은 ‘겸손’으로 남은 인생의 곳간을 채운다. 이러한 기도와 사랑과 겸손의 알갱이가 대를 이어가기를 소원한다. “소슬바람에/ 휘어진 쪽두리꽃”이 휘영청 밝은 달빛에 고개를 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도하는 자는 낮은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다. 이 시간이 바로 가장 아름다운 성찰의 시간이다.

정관호 시인의 시는 ‘진창’으로 상징되는 세상에서 거짓과 음흉과 욕망에 상처를 입은 영혼이 다시 순수와 순백의 영혼을 찾는 시적 과정이 담겨 있다. 꽃과 말을 하고 꽃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 적는 일은 성찰이자 성숙의 시간이다. 그의 시집 화도花道, 즉 꽃의 길은 순수와 순백을 향한 여정이자 절대자인 ‘당신’에게 가는 길이다. 전체적인 틀을 김남조 시인의 ‘사랑초서’를 따르면서도 시인의 내적 성숙을 ‘꽃’이라는 대상으로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은 다른 시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연작시집이라 하겠다.

시인이 시적 대상과 하나가 되는 지점에서 발아하는 시들은 사무사思無邪의 경지에 닿아 사심이 없고 깨끗하다. 그리움과 연민을 드러내는 시편뿐만 아니라 때론 사랑의 뜨거움과 헤어짐의 슬픔을 담아낸다. 나그네처럼 떠돌다 돌아온 시인이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영혼을 회복하는 일에 공을 들인 것이 시다. 시는 담쟁이 같은 생명력으로 시인에게 뜨거움을 안겨준다. 시인이 죽도록 사랑한 시, 시 쓰는 일이 시인에게는 기도이다. 앞으로도 시를 향한 시인의 가슴앓이가 계속될 것을 믿는다. 나는 그의 몸과 영혼이 더 닳고 닳아진 몽당빗자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몽뎅이꽃’이 피워 올리는 아름답고 순결한 꽃을 보는 일은 진흙탕에서 올라오는 연꽃처럼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관호 시인의 시를 읽으면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온 듯 마음이 깨끗해진다. 앞으로도 시로 지은 아름다운 별꽃을 많이 피우기를 염원하며 그의 시 한 편을 읽는다. 누나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이 꽃으로 피어 있다.

누나야, 꽃구경 가자

저 언덕 넘어 꽃마을로

실바람 불어오는 꽃밭에 앉아 도란도란

누나 꽃, 내 꽃

누나 웃는 모습, 꽃으로 피었네

그 웃음 시꽃

별꽃 피는 그날이 오면

눈부신 꽃으로 오는 그날이 오면

나는야, 꽃보다

누나가 좋아라

사랑 참, 고와라

- 「화도 72」

목차

화도 花道 _ 차례



시인의 말 _ 7
여는 시 _ 8


화도 1 _ 16
화도 2 _ 17
화도 3 _ 18
화도 4 _ 20
화도 5 _ 21
화도 6 _ 22
화도 7 _ 23
화도 8 _ 24
화도 9 _ 25
화도 10 _ 26
화도 11 _ 27
화도 12 _ 28
화도 13 _ 29
화도 14 _ 30
화도 15 _ 31
화도 16 _ 32
화도 17 _ 33
화도 18 _ 34
화도 19 _ 35
화도 20 _ 36
화도 21 _ 37
화도 22 _ 38
화도 23 _ 39
화도 24 _ 40
화도 25 _ 41
화도 26 _ 42
화도 27 _ 43
화도 28 _ 44
화도 29 _ 45
화도 30 _ 46
화도 31 _ 47
화도 32 _ 48
화도 33 _ 49
화도 34 _ 50
화도 35 _ 51
화도 36 _ 52
화도 37 _ 53
화도 38 _ 54
화도 39 _ 55
화도 40 _ 56
화도 41 _ 57
화도 42 _ 58
화도 43 _ 59
화도 44 _ 60
화도 45 _ 61
화도 46 _ 62
화도 47 _ 63
화도 48 _ 64
화도 49 _ 65
화도 50 _ 66
화도 51 _ 67
화도 52 _ 68
화도 53 _ 69
화도 54 _ 70
화도 55 _ 71
화도 56 _ 72
화도 57 _ 73
화도 58 _ 74
화도 59 _ 75
화도 60 _ 76
화도 61 _ 78
화도 62 _ 79
화도 63 _ 80
화도 64 _ 81
화도 65 _ 82
화도 66 _ 83
화도 67 _ 84
화도 68 _ 85
화도 69 _ 86
화도 70 _ 87
화도 71 _ 88
화도 72 _ 89
화도 73 _ 90
화도 74 _ 91
화도 75 _ 92
화도 76 _ 93
화도 77 _ 94
화도 78 _ 96
화도 79 _ 97
화도 80 _ 98
화도 81 _ 99
화도 82 _ 100
화도 83 _ 102
화도 84 _ 103
화도 85 _ 104
화도 86 _ 105
화도 87 _ 106
화도 88 _ 107
화도 89 _ 108
화도 90 _ 109

| 평설 |
화도花道로 피워낸 깊고 짙은 서정의 울림 | 강대선 _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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