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글
90여 년을 거치며 변용되어 온 건축물을
어떠한 기준으로 리모델링해야 할까?
“이 주택의 유형적 특징과 가치를 드러내는 측면에서는 일식과 한식, 서양식의 우열 없이, 준공 당시의 건축적 특징이나 다양한 양식의 보기 드문 혼종적 경향, 그리고 사소하나 거주 과정에서의 소중한 기억의 단초가 될 만한 것들은 보존하거나 복원하고자 했다. 각 시대의 생활상이 반영 및 변용된 건축적 장치들은 최초 건축 당시의 원형과 변형된 당시의 원인, 그리고 현시점의 시대적 요구를 함께 고려해 수리했다.” - 정이삭, ‘미완의 통로, 소멸과 지속의 균형’ 중에서, 30쪽
청파동 주택은 원형의 보존적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재적 가치와 90여 년간 한반도의 풍토에 맞게 변화해 오며 우리 주택문화사를 기록해 온 가치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렇기에 어떠한 기준으로 청파동 주택을 복원, 재생, 활용할지는 리모델링 작업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집은 무엇인가. 이 집은 일본의 것인가, 한국의 것인가, 일본도 한국도 아닌 서구 문명의 편린인가.”(15쪽)라는 정이삭의 질문처럼, 청파동 주택의 리모델링 작업은 건축의 유형을 구분하는 데서부터 가치 판단을 요구한다. 여러 전문가의 자문과 조사를 거친 정이삭은 청파동 주택을 ‘한반도 화양절충식 주택’이라 명명하고, 일식과 서양식, 한식이 가져다준 특성 모두를 긍정하며 작업에 착수한다. 작업자들은 최초 건축물로의 원형 복원 혹은 리모델링 전 온전한 상태로의 보수와 같이 특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잡지 않고, “건축주의 의견, 실사용자에 맞춘 기능적 보수, 현시점 기술적인 여건”에 더해 “주택이 가진 특유의 미감”(175쪽)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다만, 작업자들은 청파동 주택의 작업 방식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와 비효율을 경험했고, 더 나은 방법을 고민 중이다. 포럼에서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을 현대인의 삶에 맞춰 작업해 온 건축가 조정구(구가도시건축 대표)와 문화재 관련한 연구와 수업을 이어온 이경아(서울대학교 교수)를 초청한 이유도 더 나은 혹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조정구는 전통 건축이라 판단하는 나름의 기준을 건축의 ‘고유한 정취’라고 밝혔고, 이경아는 “한국의 정체성이 세계적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여러 기준에 의해 다양한 복원과 활용 방식들이 나타나는 사례에 열린 태도를 가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175쪽)는 의견을 전했다. 이처럼 『나이층: 청파동 주택 리모델링 기록』은 여러 문화와 시대가 충돌하고 융합된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건축을 어떻게 건축적으로 다뤄야 하는지 정답을 제시하는 책이기 보다는, “경험의 기록과 공유가 더 나은 다음을 만들 수 있다”(37쪽)는 믿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책의 구성
‘청파동 주택에 들어서다’는 책의 내용을 안내하는 정이삭의 글에 더해, 청파동 일대의 필지 구분을 보여주는 시대별 지도와 주택의 물리적 변화를 중심으로 일괄한 타임라인으로 꾸려져 있다. 이는 청파동 주택의 저변에 자리한 개발, 생활 양식 등의 움직임을 짐작케 한다. ‘건축을 기록하다’에서는 정이삭이 청파동 주택을 작업하며 판단의 근거로 삼았던 건축가의 태도와 결정 및 실천들을 서술하고, 리모델링 전후 도면과 사진들을 소개한다. ‘구축을 기록하다’에서는 지연순이 열 세 달에 걸친 리모델링 과정을 공종별로 구분해 세세하게 설명하고, 조재량은 내외관에 쓰인 목조와 구조를 중심으로 청파동 주택이 가진 특이점을 짚어낸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청파동 주택의 외연을 넓혀주는 이야기를 담았다. ‘삶을 기록하다’에서는 지연순이 1959년 경부터 근래까지 청파동 주택에 거주했던 신은주를 인터뷰해 주택에 얽힌 건축주의 삶과 시선을 살펴보고, ‘포럼과 전시로 남기다’에서는 청파동 주택의 가치를 모색하고 공유하기 위한 자리였던 포럼, 전시 등의 활동들을 기록했다. 곳곳에 배치된 노경의 건축 사진들은 주택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청파동 주택이 가진 미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