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세계에 깃들고 싶은 먹의 마음으로
‘이응 품은 미음’속에 써 내려간 음악과 글들
“만약 이아립의 노래에 모양이 있다면”
○ 한 때 책상 한쪽에 이아립의 앨범 커버 포스터를 붙여 놓은 적이 있었다. 사진 속 이아립은 (아마도 여행지로 추정되는) 야외 카페에서 (아마도 커피로 추정되는)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 내가 그 이미지를 사랑했던 이유는 앨범 타이틀이자 수록곡인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가 내게는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이었고, 앨범 커버의 이미지에 그것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아립의 주문은 특별하고 강력했다. 그가 ‘이 밤-’ 첫 운을 떼면 책상 앞 나의 영혼은 이미 다른 곳에 도착해 있다. 내게 그의 목소리에 담긴 공기는 ‘공기 반 소리 반’의 보컬 테크닉이 아닌, 나를 기분 좋게 감싸면서 떠미는 ‘바람’이다.
□ 그동안 동그란 시디로 만났던 이아립의 음악이 이번엔 네모난 사진과 함께 도착했다. 모니터를 사진으로 꽉 채운 후 이아립의 목소리를 만난다. 2025년, 이아립의 주문은 또 다른 방식으로 강력하다. 나를 훌쩍 다른 곳으로 옮겨주던 ‘바람’은 이번엔 아주 가까이에서 속삭인다. 일상을 꼼꼼히 살펴 우리의 ‘하루를 구원하는 작고도 위대한 것들’을 발견하자고, ‘찰나에 깃든 영원’을 함께 바라보자고. ‘정해진 슬픔’마저 감싸안은 그의 목소리는 일상의 다정함을 증폭하는 촉매다.
○ 만약 이아립의 노래가 ‘듣는’ 것이 아니라 ‘만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질감을 가지고 있을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지 궁금했던 나에게 이 송북이 도착했다. 가장 사랑하는 연필을 깎아 여백에 작은 메모 혹은 그림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따스한 촉감의 종이에 담긴 라이너 노트, 그 담담하고 내밀하고 정갈한 하양과 검정의 조화는 ‘다정한 세계에 깃들고 싶은 먹의 마음’ 자체다. 그리하여 이 송북을 듣고, 읽으며 내가 만들어 낸 단어가 있다. [earipscope: 무심히 지나쳤던 사소한 것에 깃든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장치] 나의 하루를 ‘구원하는’ 것들이 너무 멀리 있지 않음을 earipscope 통해 다시금 깨닫고 안도한다.
□ 이응과 미음은 출발지로 돌아와야만 완성되는 운명을 가졌다. 음악가와 출판인 사이, 창작자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거친 이아립은 ⟪이응 품은 미음⟫을 통해 자신만의 경로를 개척한 후 단단하고 야무지게 제 자리를 찾아 귀환했다. 앞으로도 그가 음악과 책 혹은 또 다른 영역에서 꾸준히 그려나갈 동그라미와 네모가 청자와 독자 모두에게 다정다감한 풍경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이세미(재미공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