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당신에게
“하루에 하나씩 ‘죽지 않을 이유 찾아보기’를 처방합니다!”
최선을 다해도 야속할 만큼 불운이 반복될 때, 아침에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게 도저히 해낼 수 없을 무거운 일처럼 느껴질 때, 매일같이 막막함과 싸우느라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까지. 좌절의 순간은 쉬지도 않고 찾아온다. 그러다 ‘죽고 싶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진담이 되었을 때,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랬다. TV에서만 보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었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진심이 되었을 때,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사로부터 조금은 색다른 처방을 받는다. ”환자분! 오늘부터 죽지 않을 이유를 하나씩 생각해 보세요.”
딱 100일 동안 글을 써보기로 했다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죽지 않을 이유를 찾아서
절벽에 선 사람들, 그러니까 딱 한 발짝의 기로에 서있는 이들에게 죽지 않을 이유를 떠올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반면, 죽고 싶은 이유는 세상에 너무나 많다. 취업이 안 돼서, 친한 친구와 싸워서, 일이 힘들어서, 싫은 사람이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겹다고 이별을 통보받아서 등등. 이렇게 한번 삐끗했다고 느끼는 순간, 잔인하게도 부정의 기운은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라면 물을 못 맞춰서, 커피가 뜨거워서, 아침 해가 너무 밝아서, 이불이 잘 개어지지 않아서, 음료 뚜껑이 한 번에 따지지 않아서까지. 숱하게 넘치는 죽고 싶은 이유 속에서 질식하기 직전, 저자는 마지막으로 ‘글쓰기’에 매달려 보기로 결심한다. 무언가를 적는다는 것, 그것이 불현듯 자신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 속에서 글쓰기는 그나마 남길 수 있는 유일한 흔적처럼 느껴졌다. 막상 쓰려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어 막막해하던 찰나, 1일 차에는 그냥 “100일간 글을 적어야 해서”라고 적었다. 그렇게 시작된 100일간의 글쓰기. 과연 남은 99일 동안 그는 잘 해낼 수 있을까?
100일이 지난 후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고요?
“그럭저럭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만”
100일간 글을 쓰며 버텨낸 그에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바로, “그래서 살고 싶어졌나요?”라는 질문일 것이다. 100일의 여정 끝에서 저자는 말한다. 울고 싶어서 글을 썼고, 괴로운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하지만 글쓰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고. 죽지 않을 이유를 찾아 헤맨 100일 동안 뭔가 대단한 변화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여전히 며칠은 죽고 싶고, 며칠은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전과 달라진 것이 없느냐고 한다면, 분명한 대답은 ‘아니오’다. 100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죽지 않을 이유를 찾기 위해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둘러싼 일상과 주변 사람, 과거의 추억들을 떠올리게 되었으니까. 이를 통해 매일 발견한, 어쩌면 지나치게 사소한 그 이유들이 최악의 순간에서 우리를 건져 올리는 구원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만약 당신도 지금 출구가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다면, 이 책과 함께 죽지 않을 이유를 찾아 나서는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이미 한 걸음 앞서 다녀온 사람이 웃으며 손짓한다. 그와 함께 100일의 여정을 끝내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