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부터 미래까지 오느라 “조금 지친 빛”을 다독이는
어린아이의 작고 연한 손으로 쓰인 시
그러나 유년의 기억이 마냥 아름답고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입구가 넓고 끔찍한 서로의 꿈속을 들여다보듯 바라보기“도 하고 어린 나는 마당에서 앵두를 따며 “내 사랑이 한 번에 행복해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유년의 기억은 어쩔 수 없이 유실되고 상실되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나므로. 시인은 시간이 지나 “원 안에서 쏠리고 넘어지는 여자”로, “사랑 때문에 비굴한 말을 하”는 어른으로 자란다.
시집에서 두 번째로 수록된 시「다친 작은 나의 당당한 흰색」에 등장하는 “한 무더기로 낭비되고 있는 저 환함” 즉 첫눈은 아직 어른이 되기 전, 무결하고 깨끗했던 어린 시절을 향한 동경을 상징한다. 환한 빛을 한없이 낭비해도 될 만큼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던 시간. 그러나 과거로부터 여기-현재에 도착한 빛은 긴 시간을 향해 오느라 “어딘가 조금 지친 빛”이다. 시인은 “지친 빛”을 위로하며 어린아이의 연한 손으로 시를 써내려간다. 김연덕이『오래된 어둠과 하우스의 빛』을 엮는 과정은 곧 과거를 다독이며 조금씩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쇠락하는 기억 속에서, 유실과 상실이라는 필연과 두려움을 딛고서.
그리하여 5부의 마지막 시 「오래된 어둠과 하우스의 빛」에서 “마지막 사람이 난방을 끄고 나오며 뒤돌아보지 않을”때, 비로소 시인은 “현재라는 기쁜 슬픔”을 맛본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Ⅹ』는 봉주연, 김연덕, 안미린, 유선혜의 개성을 담은 시집을 분기별로 선보이게 된다. 젊고 세련된 감각으로 한국 시 문학이 지닌 진폭을 담아낼 이번 시리즈는 비주얼 아티스트 강서경 작가의 표지 작업과 함께해 예술의 지평을 넓혀갈 예정이다.
핀 시리즈 공통 테마 〈에세이〉_‘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에 붙인 에세이는, 시인의 내면 읽기와 다름없는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출발한다. 이로써 독자들이 시를 통해서만 느꼈던 시인의 내밀한 세계를 좀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이 에세이가 ‘공통 테마’라는 특별한 연결고리로 시인들의 자유로운 사유공간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서를 서로 다른 색채로, 서로 다른 개성으로 보여주는, 깊숙한 내면으로의 초대라는 점은 핀 시인선에서만 볼 수 있는 매혹적인 부분이다. 새로운 감각으로 네 시인이 풀어나가는 이번 볼륨의 에세이 주제는 ‘향’이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에 붙인 에세이는, 시인의 내면 읽기와 다름없는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출발한다. 이로써 독자들이 시를 통해서만 느꼈던 시인의 내밀한 세계를 좀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이 에세이가 ‘공통 테마’라는 특별한 연결고리로 시인들의 자유로운 사유공간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서를 서로 다른 색채로, 서로 다른 개성으로 보여주는, 깊숙한 내면으로의 초대라는 점은 핀 시인선에서만 볼 수 있는 매혹적인 부분이다. 새로운 감각으로 네 시인이 풀어나가는 이번 볼륨의 에세이 주제는 ‘향’이다.
에세이 「거칠고 환한 오래전의 향」은 시인이 어릴 적 살던 부암동 338-43번지의 추억과 그 추억 속에 강렬하게 배어 있는 ‘향’을 그리고 있다. 자연 속에 묻혀 있던 시인의 집 안으로 스며 들어오던 아카시아 향과 살구 향, 할머니와 엄마가 해주던 음식의 향, 무언가 사무치는 저녁의 냄새를 풍기던 모기향, 사촌들과 함께 구워 먹던 마시멜로의 향, 부드럽게 쇠락하는 향…… 시인은 부암동의 옛집에서 나고 자라며 장차 시를 쓰게 될 몸으로서의 예민한 감각을 기르고, 아직 오지 않은 이 집과의 이별을 그리워하는 어린이로 성장한다. 사람의 기억 속에 가장 오래 남는 감각이 후각이듯이 시인은 향을 통해 기억을 더듬어가며 옛집을 선명하게 다시 그려내고, 마침내 ‘향’을 통해 다시 지어진 집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