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는 일본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고전
일본 최고의 정신과 의사 가미야 미에코,
상실의 폐허 속에서 고통의 의미를 성찰하다
죽음과 함께하며 삶의 의미를 탐구한 인간의 기록, 《이키가이》
세상에는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잠에서 깼다는 사실 자체가 견딜 수 없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밀려오는 무력감과 함께 ‘아, 오늘도 하루를 살아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것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삶의 의욕을 빼앗는 허무와 싸우고 있다.
가미야 미에코는 이런 질문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녀는 젊은 시절 폐결핵을 앓으며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후, 막대한 고통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센병 요양소 애생원의 환자들이다. 그녀는 애생원에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이들을 만났고, 그들을 상담하며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 《이키가이》를 기획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심리치유 서적이 아니다. 오랜 시간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하며, 삶의 의미를 끝까지 탐구한 한 인간의 기록이다. 이 책은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매일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 이키가이
일본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이키가이(生きがい)’를 품고 있다고 한다. 이키가이는 ‘살다’를 뜻하는 ‘生き(이키)’와 ‘가치, 보람’을 뜻하는 ‘甲斐(가이)’가 결합된 말로, 삶의 보람이나 사는 이유를 의미한다. 사실 오늘날 ‘삶의 보람’이라는 말은 얼핏 진부하게 들린다.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나 가치를 생각하라는 지침은 현대인에게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 문화의 ‘이키가이’는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시간을 아우르는 ‘인생’보다는 삶의 세부적인 단면, 즉 ‘일상의 생활’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이키가이는 추상적이기보다는 ‘손에 잡히고’, 공허하기보다는 ‘밀도 있는’ 개념이다. 삶의 의미가 철학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이라면 이키가이는 보다 현실적이고 생활에 밀착된 개념이다.
이것은 인생을 꿰뚫는 거창한 대의도, 삶에 보람을 느낀다면 행복이 찾아오리라는 막연한 낙관도 아니다. 이키가이는 ‘당장의 현실이 비참할지라도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이며, 인생의 굴곡에 놓인 수없이 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매일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다.
‘일상의 철학’, 이키가이에 문학적 깊이를 더하다
가미야 미에코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 문학가이다. 대학 시절 고전문학을 전공하다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그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미셸 푸코, 버지니아 울프의 저서를 일본어로 번역한 전력이 있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가미야 미에코가 일과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명상록》을 번역했다는 사실에 놀라 《명상록》을 처음 읽어보았다고 밝혔다.
저자는 스물한 살 무렵, 그 당시 난치병으로 악명 높던 폐결핵을 앓으며 삶과 죽음, 고통과 슬픔을 평생의 화두로 삼게 된다. 그녀는 함께 요양하던 지인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왜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고, 이것이 마음의 빚이 되어 병에서 회복된 후 정신과 의사로 진로를 바꾼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역량도 탁월했던 그녀는 유산 후 우울증에 빠진 미치코 왕비의 상담의를 맡아 명성을 쌓았고, 1957년부터는 한센병 요양소 애생원에서 환자들을 상담했다.
의사이면서도 뛰어난 문학적 배경을 가졌던 저자는 죽음에 직면하여 삶의 보람을 빼앗긴 이들의 황량한 마음을 단순한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녀의 사유는 철저히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철학적 깊이와 문학적 감수성이 더해지며 더욱 밀도 있고 보편적인 성찰로 거듭난다. 《이키가이》에서 세밀한 필치로 묘사되는 애생원에서의 임상 사례, 원폭 피해자들의 사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이들의 사례는, 펄 벅과 시몬 베유 등 뛰어난 문필가들의 이야기와 함께 인류 공통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고통을 피하지 말고 철저하게 괴로워하라
인간의 존재 근저에는 삶의 보람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늘 따라다닌다. 통제할 수 없는 고통은 삶을 무너뜨리며 우리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흔을 남긴다. 가미야 미에코는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삶의 관계를 탐구했고, 《대지》를 쓴 소설가 펄 벅의 인생은 그녀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지만 정신지체아 딸을 낳게 된 작가 펄 벅은 아이의 병을 알게 된 후, “세상 어떤 것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모든 인간관계가 무의미하고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고 말한다. 저자가 직접 상담했던 한센병 요양소의 환자들 역시 ‘멍하니 시간을 때우고’, ‘먹고 잠만 자는’ 생활로 자신의 세계를 축소했다.
이처럼 사는 보람을 잃은 사람은 절망과 허무의 어두운 계곡으로 떨어진다. 이때 정신 내부의 압력을 낮추지 못하면 고뇌는 더욱 안쪽으로 파고들어 미치거나 자살하는 정신적 파국을 맞게 된다. 물론 술, 마약, 도박, 또는 일에 몰두하는 등 고뇌를 얼버무리거나 그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은 많다. 그러나 고뇌와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새로운 출발점을 찾으려면 고통을 피하지 않고 철저하게 괴로워하는 수밖에 없다.
펄 벅은 고통과의 융화라는 힘든 여정을 이렇게 보고한다. “첫 번째 단계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고, 언제나 내 곁에 있을 현실”이다. “나는 이 단계를 몇 번이나 다시 밟아야 했다. 나는 또 무너지고 수렁에 빠졌다. … 그러나 나는 주저앉아 있지 않는 법을 배웠다. … 이것이 내 삶이니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인간의 조건
가미야 미에코는 “인간의 정신력만큼 신기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어떤 불쾌한 일이 있어도 정신의 날개를 타고 자유롭게 날 수 있으며, 군중 속에 있어도 자신이 원할 때는 언제나 혼자만의 고요한 세계로 침잠할 수 있다. 정신의 힘으로 인간은 시공을 초월해 장소와 시대를 불문하고 타인과 손을 잡는다. 인간은 정신 속에 “커다란 꿈의 전당을 세워 가난하고 비참한 현실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정신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좋은 환경 속에만 있는 사람은 그 고마움을 모르기 마련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 사지를 잃은 사람, 혹은 다양한 이유로 운신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에게 정신은 큰 의미와 역할을 갖는다. 이들의 경우, 정신세계에 사는 것 이외에 인간다운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는 보람을 상실했던 사람은 가치의 기준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사람은 더 이상 타인의 평가나 자신의 소유물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 다시 발견할 수 있는 내면적인 기쁨을 추구하게 된다. 가미야 미에코에 따르면 이것이 그 모든 비극에도 불구하고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의 생명 그 자체, 인격 그 자체로부터 솟아나는 기쁨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에게도 평등하게 열려 있는 기쁨이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몸소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고통과 슬픔이다. 결국 진정한 행복, 어떠한 우연적 사건에도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행복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위세를 떨치는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 아니다. 삶에서 진정한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불행, 절망, 고통, 가난 속에서 삶의 보람을 잃었다가 되찾은 사람 중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