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The BRAW Amazing Bookshelf 선정작
★2021 쿠아트로가토스 재단상 파이널리스트
“아니, 웃는 시간이 아니면 웃어서도 안 된다고?”
우리 사회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우화, 그래서 대체 누가 왕이라고?
자유와 질서 중 무엇이 필요한가요?
처음에 숲속 동물들은 곰의 등장을 반겼다. 곰은 초원의 동물들이 ‘왕’이라는 존재 아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전한다. 숲속 동물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초원을 상상하며 처음으로 자신들에게도 ‘왕’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숲의 왕 선거에서 곰은 강력한 리더십과 체계적인 질서를 강조하며 동물들의 지지를 얻는다. 처음에는 모든 게 잘 진행되는 듯 보였다. 곰은 숲을 더욱 안전하고 질서정연한 공간으로 만들겠다 약속했고, 동물들은 그 계획에 동의하며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기도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곰이 왕이 된 이후, 동물들의 삶은 점차 변해가기 시작한다. 그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규칙을 만들었고, 점점 더 많은 것들을 통제하려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규칙이었다. 식사 시간, 취침 시간, 놀이 시간 등 모든 걸 정해두고 동물들이 더욱 ‘체계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규칙들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 강제적인 것이 되어간다. 울타리가 세워지고, 경계가 정해진 숲. 그곳에서는 특정 시간에만 움직여야 한다는 생활 방식까지 강요되었다. 심지어 언제 웃어야 하고, 언제 쉬어야 하는지까지 곰이 결정했다. 곰은 이것이 숲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믿었으나 점점 동물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자유롭게 뛰어놀고, 원하는 시간에 먹고 자던 삶에 사라졌으니까. 질서라는 미명 아래 모든 것이 제한되었다.
질서는 자유보다 좋은 것인가? 아니면 자유는 질서보다 좋은가? 질서는 억압이나 통제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가? 곰을 왕으로 뽑을 때 동물들이 기대했던 건 ‘더 나은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스스로 자유의 부재 속으로 밀어 넣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러한 과정은 인간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지도자가 등장할 때 우리는 그가 사회를 더 안정적이고 질서 있게 만들 것이라 기대하지만, 때로는 그 질서가 지나치게 강요될 때도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권력과 통제의 관계를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유’와 ‘질서’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방식의 억압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말이다.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이곳의 유일한 왕은 자연입니다.”
책 후반부에 나오는 이 문장은 단순히 말 그대로의 결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책이 던지는 강력한 화두이자 메시지에 가깝다. 곰이 만든 ‘완벽한 질서’는 사실 완전한 사회라기보다 개성과 자유가 제거된 공간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곳에서 동물들은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이 문장은 사회 시스템의 본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며, 정돈된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개성과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매 순간 뒤돌아봐야 한다.
책 속에서 곰이 강조했던 규칙들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규칙들은 동물들을 억압하는 요소로 변해간다. 이는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규칙과 기준을 만들어 가며 사람들을 그 틀 안에서 살아가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지워가는 것은 아닐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책에서 곰의 숲이 점점 황폐해지는 과정은 바로 그러한 사회적 압박과 인간성의 상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가깝다.
결국 동물들은 곰이 만든 틀을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자유롭게 걷고, 기쁠 때 웃으며, 먹고 싶을 때 먹는다. 이 장면들은 단순한 이야기의 끝이나 인간 세상을 반영한 우화의 결말이 아니라, 오히려 지향해야 할 방향성에 더욱 가깝다. 판타지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거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곰이 세운 ‘질서’가 결국에 생명을 억압하는 요소가 되었듯 우리는 사회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리더가 필요한가요?
곰은 자신이 왕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라고 주정한다. 그는 숲을 안전하고 효율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자신이 가장 강하고 경험이 많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곰이 이야기하는 ‘좋은 왕’의 개념이 점점 변질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동물들의 안전과 복지를 위하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곰의 목표는 숲을 자신의 방식대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그 무엇으로 변해간다. 동물들의 개성과 다양성은 점점 사라지고, 오직 곰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사회로 바뀌어간다.
책 속의 곰은 흔히 떠올리거나 사회에서 보는 ‘강한 독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단호하고 체계적이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나 그 방식이 폭력적이며 강압적이다. 또한 다른 존재들의 의견을 배제해 자유를 억압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모두 곰이 제안하는 변화에 동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에 따른 불만이 쌓여 가기 시작한다. 특히 곰이 숲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장면은 우리가 오래 기억해야 할 역사인 홀로코스트나, 제주 4·3, 한센인 집단 학살이 있었던 소록도를 떠올리게 한다. 곰은 병든 나무, 작은 식물, 그리고 자신이 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없애버리며 결국 숲의 다양성을 말살해 버린다.
이 책은 세상에 어떤 리더가 필요한지 고민하게 한다. 강한 리더십이 꼭 좋은 리더십인지, 혹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정말로 공동체에 이로운 것일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 생각의 끝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있고, 경제 성장과 개발을 통한 사회 정돈만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던 가까운 역사도 있다. 곰이 만든 새로운 숲은 깔끔하고 단정해 보였으나 결국에 생명이 줄어든 삭막한 공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와 반대로 마지막에 동물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숲은 자연스러운 조화와 균형이 가득하다. 이 대조적인 장면들은 리더의 역할이 ‘통제’가 아니라 공존과 협력에 있음을 말하는 것만 같다.
누구나 이상적이고, 단정하고, 안전한 세상을 원한다. 하지만 여기서 이상적이라는 건 장애나 성별, 인종으로 사람을 배제하고 숨어들게 만드는 그런 이상이 아니다. 또 점자블록이 미관상 좋지 않다고 없애버리는 단정함이 아니며, 자신의 권리를 농성으로써 주장하는 이들에게 무질서하고 폭력적이다 손가락질하며 밀어내는 그런 안전이 아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겪은 지금에야 독재가 무엇이고, 평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금은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만 같다.
억압과 통제, 그러한 폭력의 방식으로는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걸 기억하기를. 다양성과 존중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화, 그리고 독재가 아닌 민주적인 세상이 주는 안정감이 진정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바로 이 작은 책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