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하기 위한 길잡이
‘글로벌 공급망’, ‘국제 연결성’, ‘글로벌 물류’ 하면 열에 여덟아홉은 ‘골치 아픈’ 또는 ‘나와 상관없는 전문가 영역’이라며 기피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각종 매체에 가장 줄기차게 오르내린 단어가 ‘연결성’, ‘공급망’ 또는 ‘물류’였음을 생각하면 마냥 무시하고 넘길 문제만은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북방’이라는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명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북방’은 북방정책, 신북방정책 등 국가정책의 한 축이었을 정도로 중요하지만, 북방지역이 북한, 러시아, 중국 등을 포함하고 있어 이념적 혹은 과거 기억 등에 의한 편견과 이해 부족이 여전하다.
한국 경제의 수출의존도는 거론할 필요가 없거니와, 이렇듯 수출이 경제의 핵심인 우리나라의 경우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이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국가나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시장 다변화, 자원 다변화, 공급망 다변화 등은 위기 때마다 거론되는 단골 메뉴 아니던가.
이 책은 ‘북방’과 ‘물류’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꾸민, 실핏줄 같은 공급망을 이해하기 위한 공구서이다. 물류 관련 전문가는 물론이고 북방 지역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도 북방 지역의 정치, 경제, 역사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북방 지역에 대한 최초의 물류 사전
이 사전의 공간적 범위는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극동, 몽골을 포함한 동북아는 물론,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유럽 지역, 이와 연결되는 동유럽 일부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와 유라시아 다른 지역 간 물류 연결은 중국의 이른바 ‘일대일로’ 추진으로 ‘북방의 연결’이 현실화되고 RCEP 발효 등 북방 지역의 연결 범위가 확대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현대 물류 분야에서는 ‘끊김 없는’(seamless) 물자의 흐름이 강조되고 실제로 이 같은 방향으로 정책이 수립ㆍ수행되므로, 관련 지식 또한 전문가ㆍ일반인 가릴 것 없이 끊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이것이 바로 북방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물류 사전으로는 최초가 될 이 책의 출간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언어의 한계를 알면서도, 북방 국가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중국어ㆍ러시아어는 물론 일본어 용어까지 담아 기초 사실을 설명하고, 한 표제어에 복수 언어 독음 병기를 하는 한편, 한글 독음을 단 한ㆍ중ㆍ러 단위 비교와 용어비교표(부록10, 부록11 참조)까지 싣게 된 이유이다.
630여 개 표제어, 100개 이상의 표와 지도
이 사전은 630여 개의 표제어와 100개 이상의 표ㆍ지도, 11개의 부록과 10여 페이지의 참고 문헌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어의 경우 북방 지역의 물류 인프라뿐 아니라 관련 인접 분야, 즉 정책, 인물, 기관 등까지 폭넓게 다루어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한편 이 사전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표와 지도에 있는데, 이는 어떤 사항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즉 특정 국가의 물류 계획 중 세부 사항, 국가 간 협력의 전개 과정과 각 단계의 주요 이슈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경우 표로 정리하였으며, 지도는 지리적 위치, 거점과 거점 간의 연결 현황과 향후 계획, 미래 발전 전망 등 관련 사항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상세한 각주와 참고문헌도 장점 중 하나인데, 이는 내용의 충실성과 신뢰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보다 깊이 살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공간의 연결뿐만 아니라 시간의 ‘끊어진 자리’도 확인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어떤 물류 지점, 경로, 관련 계획의 역사적 전개 상황이 우리나라 물류 궤적의 이해에 의미 있다고 판단할 경우, 독립된 표제어 또는 【역사적 사실】 등 소항목으로 해당 내용을 추가 설명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표제어 ‘나가사키항’의 경우, 【역사적 사실】을 통해, 19세기 말 중국 외교관 황쭌셴이 격동기 조선의 외교 방략을 제시한 「조선책략」에서, 조선의 부산, 원산, 인천을 개방할 것과 조선이 무역을 배워야 할 곳으로 일본의 나가사키와 요코하마를 지목했던 사실을 환기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메이지 시대인 1888년경, 나가사키를 기점으로 부산-원산-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극동 항로’를 개설했던 사실도 부기하고 있다.
저자는 그로부터 140년이 지나 ‘21세기 세계 물류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이 가장 가까운 ‘극동 항로’에서조차 완전한 국제 네트워크의 구축에 성공하지 못했음(예컨대, 부산-원산 항로 단절, 한국-블라디보스토크 철도 단절 등)을 상기시키는데, 이런 역사적 사실은 향후 물류 정책 과제와 관련해 의미 있는 교훈을 던져준다. 이렇듯 이 지식 사전의 목표 중 하나는, 북방 물류의 과제는 ‘공간’의 연결뿐만 아니라 끊어진 과거와의 연결, 즉 ‘시간’의 연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