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문제의식
우리나라에서 여성 관련 문제들을 언급하면서 ‘여성운동’ 또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로 추정된다. 예컨대 1922년 6월 13일부터 30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부인문제 개관」이라는 연재물에서 월마 마이클의 저서 『건전한 훼미니즘』을 소개한 것이 보이고, 『조선일보』 1929년 12월 4일자부터 11일자까지 7회에 걸쳐 연재된 정철(鄭哲)의 「여권운동의 사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선 ‘여성 참정권 운동’, ‘법률상의 평등한 지위 획득 운동’ 등 세계 여성운동사를 소개하면서 여성운동을 페미니즘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들이 등장하기 전이나 그 이후로도 상당 기간, 여성문제는 이른바 페미니즘의 관점보다 ‘여자교육’ 또는 ‘부녀교육’ 차원에 치우쳐 있었다. 이 책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근대 계몽기에서 해방 직후까지) 또한 상황에 따라 각각의 논조는 다르지만, 학교 확장과 지식 보급의 필요에 따르는 계몽 이데올로기가 사회 담론의 중심을 이루는 때였다. 이는 갑오개혁 이후 학교 확장론, 국권 침탈기 애국계몽론,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자들의 조선인 지배 이데올로기 전파와 조선인의 민중ㆍ문화운동 등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바다.
특히 여성교육 차원에서 당대는 남성 중심 사회에 남녀동등권 개념이 도입되고, 여성 관련 담론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면에서 여성을 주체로 한 교육활동을 전개하는 일이 결코 간단치 않았다. 국권 침탈과 상실로 이어지던 시기에는 성평등이나 성역할 문제보다 국가가 최우선인 애국 담론이 지배적이었으며, 본격적인 일제강점의 치하에서는 남녀평등에 입각한 부녀 근로 담론조차 그 노동력 활용ㆍ착취가 목적인 계몽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대 여성 관련 다수 텍스트들의 실제 내용엔 전통적인 부덕(婦德) 및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와 그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근대적 성 담론이 변색된 채로 혼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배경 아래서 보다 객관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당대 여성교육과 여성운동 문제들에 접근해보려 했다. 현재까지의 여성교육용 독본 연구가 여성운동사나 국어교육사 연구 차원에서 편린으로 다루어진 경향이 우세하고, 남녀동등권이나 페미니즘만을 지나치게 부각하거나 특정 텍스트의 내용 분석에만 치우친 연구가 많았다는 인식에서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여성교육 및 여성 담론들을 계량화하여 시대별ㆍ매체별ㆍ주제별 분포도를 작성하고, 그에 따르는 연계 자료들을 대응하며 설명해가는 방식을 채택했다. 예컨대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각 매체별로 남녀동등권 개념의 등장과 여성교육의 필요성 및 학교 확장론의 급증 현상을 주관의 개입 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각 장의 서사
서장인 「근현대 여성교육과 여성문제 연구 방법」은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연구 대상과 방법을 서술한 장이다. 이 장에서는 ‘근현대’, ‘학문’, ‘계몽’ 등의 기본 개념과 ‘여성 담론’, ‘여자교육’ 등의 개념을 확정하고, 주된 연구 방법으로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를 병행하고 있음을 밝혔다.
제1장 「근대 계몽기 여성 담론과 여자교육」에서는 1880년대부터 1910년 사이의 여성 담론과 여학교, 교과서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이 장에서 근대 여학교를 지칭하면서 ‘여자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 까닭은 이 시기 여학교에서 ‘여성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장은 여자교육 관련 교과서의 유형과 독본, 수신류 교과서의 내용 분석이 중심을 이룬다.
제2장 「일제강점기 여성 담론과 여성교육」에서는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소재의 여성 담론과 교육 자료를 대상으로 시대별 여성문제와 교육 실태 등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1910년대의 경우 ‘식민지 여성 만들기’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으며, 1920년대 이후는 가정교육, 교육정책과 맹휴, 여학생 담론 등을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제3장 「일제강점기 여성교육용 자료의 분포와 내용」에서는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식민정책과 여자교육독본, 청년운동과 농민독본류의 여성교육, 식민지 농촌정책과 부녀교육, 신문 연재물과 계몽독본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일례로 조선교육령 및 여자고등보통학교 규칙의 ‘조선어과’ 요지에 따라 편찬된 교과서인 『여자고등조선어독본』이 식민지 여성관을 실현시키는 선명한 도구였음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청년운동과 농민독본, 신문 연재 독본에 당시 여성문제를 반영한 진취적인 교육 내용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제강점기 여성교육이 갖는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는 지점이었다.
제4장 「일제강점기 여성잡지와 여성교육」은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발행된 35종의 여성잡지를 분석한 장이다. 이 장에서는 여성잡지의 시대적 변화, 잡지 속에 등장하는 여성문제를 주제 삼아, 여자교육 문제와 여성교육 담론을 객관화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주목할 점은 1920년대와는 달리 1930년대 여성잡지의 경우 흥미, 오락적 경향을 보이면서도 ‘강좌, 강화, 독본, 교과서’ 등의 명칭을 사용한 교양물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이들 자료를 좀 더 객관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했다.
제5장 「일제강점기 여성교육의 구조와 본질」에서는 앞선 논의들을 종합하여, 교육 현실과 여성교육의 문제, 그 내용과 특징을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조선총독부의 『여자수신서』를 비롯하여, 신문 잡지 소재 ‘독본류 자료’를 중점적으로 살폈으며, 이 시기 여성문제 가운데서 중요하게 다뤄진 ‘노동’과 ‘성차별(성교육)’ 문제에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했다.
식민지 시대의 여자교육과 담론이 광복 이후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제다. 제6장 「식민지 여성교육과 광복 이후 여성 담론의 변화」에서는 일제강점기 제도로서의 여성교육(여학교 제도)과 여성 담론의 본질을 규명하고, 식민지 여성교육의 본질과 수탈 구조, 군국주의 일제의 패망 이후 과도기적 상황에 반영된 여성 담론의 특징 등을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