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을 지키는 외교란 무엇인가?
2025년, 다시 헌법이 이끄는 외교로
2024년 계엄 사태는 한국 정치의 근본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한국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한국 정부가 민주공화국으로서 국민의 권익을 헌법으로 보호한다는 뜻이며, 국제정치에서도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를 지켜야 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외교는 헌법적 가치를 바탕으로 국민을 위한 실질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즉, 외교는 단순한 협상 전략이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막중한 책임을 띤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자 문재인 정권 외교부 제1차관을 지낸 최종건 교수는 『헌법의 힘, 외교의 길』에서 “외교는 국민의 자존감을 보호하는 국정國政”이며, 외교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헌법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헌법이 규정하는 가치란 “국민주권”과 “평화”이다. 따라서 국민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외교는 실패한 외교이며, 남북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평화 정책이 한국 외교의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고 최 교수는 말한다. 외교는 전쟁을 막고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는 “첫 번째 방어선”인 것이다.
갈라지는 세계, 역사와 평화를 잇는 외교에 대하여
한국은 언제나 외교 중이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경쟁, 글로벌 무역 질서 재편을 예고한 트럼프의 재임 등 국제 갈등과 격변 앞에 ‘평화’라는 한국의 외교적 목표는 더욱 복잡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우며 러시아를 전면적으로 비판한 윤 정권의 행보는 결과적으로 러시아와 북한이 밀착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이제 정치적 연대를 강화하는 러시아와 북한을 상대로 남북 갈등이라는 고질적 리스크를 해결해야 하며,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구도 사이에서 중국 시장은 유지하는 한편 미국과의 동맹 관계 또한 지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평화와 국익을 지키는 한국의 독자적인 외교 전략은 무엇이어야 할까. 최 교수는 역사적으로 ‘대화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외교가 한국의 명운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병자호란 당시 이조판서 최명길은 조선의 존속을 위해 홀로 청나라와 협상에 나섰다. 명청 교체기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청나라를 등지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명과의 의리를 저버리고 청과 화친하는 행위라며 질타받았지만 결국 실용과 합리성에 기반하여 국가의 운명을 지키기 위한 결단에 가까웠다.
이러한 협력외교는 한국 외교를 관통하는 전통이며 보수와 진보로 나뉘지 않는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는 중국과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며 한반도의 외교 지형을 변화시켰으며, 김대중 정부는 노태우 정권의 북방외교를 계승하여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을 이끌었다. 사상 초유의 탄핵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2018 판문점 선언을 이끌어냈다. 하나의 정부에 국한되지 않는, 하나의 가치를 통해 발전하는 “이어달리기 외교”를 수행할 때 한국의 안전과 국익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동북아시아 질서를 생산하는 교량 국가로 거듭날 것인가,
강대국의 그림자 아래 소비자로 남을 것인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꽃피우는 K의 힘
이 책은 대한민국 외교가 나아가야 할 길에 명확한 비전을 제시한다. 대륙과 해양의 교차점에 위치한 한반도는, 지금도 외부 세력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정학적 운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위험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이 동북아시아 질서를 이끄는 교량 국가로 발전할 역량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자는 한국이 미·중 무역 의존도를 낮추고 자립성을 확보하여 외교 방향에 다변화를 주고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인프라 개발, 디지털 전환, 에너지 협력 등 다양한 경제적 연대를 공고히 함으로써 한국의 외교적 기회를 넓힐 때, 한국의 지리적 운명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한국 외교가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국가 전략 속에서 수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현대의 외교는 더 이상 외교관만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의료인과 보건 전문가들이 보건 외교를 이끌었으며, 재난이 발생하면 재난 전문가가 외교의 일선에 선다.” K-문화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모습도 외교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한국이 보여준 촛불 혁명은 대한민국 외교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으며,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한 사례로 평가받았다. 이 같은 찬사는 국제 무대에서 한국 외교의 신뢰를 더욱 높이는 데 기여했으며 나아가 세계적 리더십과 국익을 가져다주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독재에 맞서 싸운 이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룩한 소중한 결실이다. 이러한 역사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치, 국민에서 시작되는 외교야말로 헌법이 없는 국제정치에서 필요한 한국의 독자적인 외교라고 저자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