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11월말 이천민주화운동공원 묘원에서 40주기 박종만 열사 추도식 행사를 치렀으니 박종만 열사가 돌아가신 지 40년이 지났습니다. 1984년 11월말 그때는 전두환 군사정권 아래 학생운동 이외에는 모두가 숨죽이고 있던 때였습니다. 박종만 열사가 돌아가시기 6개월 전인 1984년 5월 25일 대구에서 새벽에 회사택시기사들이 사납금인하 등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내 전역에서 7시간 동안 집단 차량시위를 벌였습니다. 대구택시의 시위는 경산, 구미, 강릉, 서울, 부산, 마산 등으로 불길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우발적이고 비조직적인 시위였지만 대구에서 8명, 부산에서 9명 등이 구속되었고, 운전자들도 해고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러한 전국적인 택시차량 시위는 1982년부터 정부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겨냥하여 택시 승차 난을 해소한다고 급속히 증차하였지만 승객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 배경입니다. 택시사업주는 증차로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었지만 운전자는 운송수입 감소로 생계유지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택시시위가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은 택시기사를 요구를 받아들여 택시사업조합과 사업장에 사납금을 인하하도록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통부를 중심으로 월급제실시를 위한 노사정 회의를 운영하여 2년에 걸쳐 6대도시에서 월급제실시를 하도록 제도화하였습니다. 이러한 투쟁의 영향으로 당시 노동조합을 만들기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택시회사에 수많은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지역적 연대를 가지며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택시정책과 노사관계가 변화하는 도중에도 더 많은 이윤획득을 위하여 기존의 전근대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려는 택시사업주들이 많았고, 박종만 열사가 근무하는 민경교통도 이러한 사업장이었습니다. 박종만 열사는 민경교통에 입사하여 노조간부로 활동하는 중 노조간부인 동료 2명이 해고되자 이에 항의하는 농성을 하던 중 1984년 11월 30일 “내 한 목숨 희생되더라도 더 이상 기사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여 돌아가셨습니다. 폭압적인 시기임에도 박종만 열사의 분신항거에 분노를 느끼며 연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문익환 목사님, 이소선 어머니와 청계피복노조원 등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모였습니다. 경찰은 유가족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장례식을 빨리 치러 박종만 열사의 분신항거가 사회문제화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장례식장에 있던 민주인사들을 끌어내고 사과탄을 터트려 닭장차에 태운 다음 일부 유가족과 동료기사들만 참석한 장례식을 강행하였습니다.
1970년 청계피복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기억하고 있던 민주화운동세력은 박종만 열사의 분신과 장례식을 계기로 택시운전자의 열악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면서 외쳤던 그 뜻과 정신이 이소선 어머니와 청계피복노조로, 나아가 모든 노동자에게 계승되었듯이 박종만 열사의 정신도 길이 계승되어야 합니다.
이 책은 ‘박종만과 택시노동운동’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박종만 동지가 분신하여 숨진 뒤에 그 뜻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유가족 조인식 여사와 택시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제1부의 첫 번째 장은 박종만 동지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먼저 박종만동지의 연대기로 박종만 동지의 살아온 행적과 1984년 11월 30일 분신을 하기까지 민경교통노조에서의 활동, 분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분신 이후 숨지기까지, 그리고 장례식장이었던 세브란스병원에서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침탈과 민주인사들의 투쟁을 기록하였습니다. 원래 1985년 12월 1일 박종만 동지 1주기 추도식을 맞아 배규식, 이승배 등이 당시 조인식 여사, 박종만 동지의 누나와 민경교통 동료였던 분들을 인터뷰하고 당시 연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의 투쟁기록 등을 정리하여 펴냈던 박종만 전기(내 한 목숨 희생되더라도 - 박종만 동지 1주기에 부쳐, 고 박종만 동지 1주기 추모사업회 편, 55쪽)를 요약하고 일부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아서 실었습니다.
다음으로 박종만 동지 분신 이후 계훈제 선생님, 백기완 선생님, 이부영 선생님, 천주교 청년단체연합회의 추모 글과 박종만 동지 제3주기 추도식 때 문익환 목사님이 쓰신 추모시를 담았습니다. 아울러 1주기 추도식을 맞아 조인식 여사가 남편을 생각하며 쓴 추모 글이 실려있고, 이어 박종만동지의 장례식에서 적극적인 연대투쟁을 한 청계피복노동조합 민종덕위원장의 회고글이 있습니다. 더 많은 추모사가 있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만을 소개 하였습니다.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박종만 동지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조인식 여사가 박종만 동지의 죽음 이후에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어려운 삶을 살면서도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하며 배우고 느끼며 노력해 온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적고 있습니다. 남편의 뜻을 살리기 위해 택시노동운동, 유가족운동, 민주화운동에 어떻게 참여하고 느끼며 변화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1부 두 번째 장에서는 택시노동운동을 하다가 분신하여 숨지거나 다른 식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했습니다. 박종만 동지가 숨진 뒤에 택시노동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은 매우 많으나 모두 다 소개하기에는 경위가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자료 등의 한계가 있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노동열사로 기록되어 있는 열 네 분과 2023년 9월 택시월급제 실시를 주장하며 분신하신 방영환 동지를 포함하여 총 열 다섯 분을 소개하였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갑갑했으며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았으면, 스스로 몸을 던지는 길을 택하였겠는가’ 싶지만 그들의 절규와 울부짖음이 지금은 들리지 않으니 메마르고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이 다른 산업보다 택시가 훨씬 많으며, 특히 이분들 대부분이 분신이라는 극한적인 방법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서울, 인천에 집중되었는지 모두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제2부에서는 주로 1987년 이후 택시노동운동에 참여하여 활발하게 활동한 열다섯 분들의 다양한 체험기를 실었습니다. 대부분이 박종만추모사업회에서 발간했던 〈운수노보〉와 관련이 있거나 전국택시노련 서울택시지부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운동이 활발했던 1987~1993년경에 택시노동운동에 참여한 분들입니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택시노동운동에 참여했으나 여기에서는 2024년 현재 연락이 닿는 분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특히 인천, 대구, 경주를 제외한 지역에서 택시노동운동을 했던 분들의 이야기를 아예 싣지 못하여 이후의 과제로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수록된 택시현장(단위노조와 서울지역 택시)의 생생한 노동운동 이야기들은 1987년 이후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택시업종에서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 중 운수노동운동이라는 비어있던 영역을 메워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택시노동운동 체험기에서는 여러 가지 측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택시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택시에 진입했고, 어떻게 택시노동운동을 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학생운동 출신은 사회에서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택시노동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노동자출신은 먹고 살기위해 직업으로 택시를 선택했고, 열악한 근로조건과 관리자의 불합리한 횡포에 맞서면서 노동운동에 들어서게 됩니다. 특히 생계의 수단으로 시작한 택시에서 노동운동을 하기까지의 과정과 고민은 1980년대 택시노동운동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 이들은 택시노동운동을 매우 헌신적으로 하였습니다. 각자가 맞닥뜨린 상황 속에서 어떤 태도와 전망을 갖고 택시노동운동을 했는지 간접적이나마 느껴볼 수 있습니다. 모든 열정을 쏟아 부으며, 생계위협도, 구속도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택시노동운동에 전념 하였습니다.
셋째, 택시노동운동을 하다 택시를 떠나는 과정입니다. 택시를 떠나는 것은 대부분 택시 노동운동의 한계나 생활의 어려움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부는 개인택시를 받고 떠나기도 하고, 해고를 당해 떠나기도 합니다. 택시를 떠난 뒤 이들은 나이 들어 새로운 환경에서 뒤늦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면서,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힘겨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를 주저없이 헤쳐나가 극복하고 나름대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택시에 바쳤던 열정이 이후의 삶에도 투영되었던 것입니다.
넷째, 택시를 떠났지만 지금도 택시노동운동 했던 시절을 자랑스러워하면서 그 뒤 택시업종의 어려움과 택시노동운동의 쇠퇴를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30여년이 지났지만 그 시절 오히려 희망을 갖고, 추구했던 이상과 목표가 뚜렷했으며, 인간답게 살기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택시노동운동이 자신의 삶에 활력소가 되고 이정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체험기를 통하여 1980·90년대 택시노동운동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단위노조를 뛰어넘어 전국택시노련 서울택시지부를 중심으로 업종ㆍ지역별 임금교섭을 둘러싸고 노동조합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택시업종의 지역별 임금교섭에서 교섭력 극대화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력을 높였다가 교섭타결 이후 개별사업장에서 개별노조들의 교섭에서 어떻게 후퇴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업종ㆍ지역별 단체교섭이라는 제도가 1987~1997년 정도까지 어떤 조건에서 유지되고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에 대해서도 그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택시노조들의 목표인 완전월급제를 위하여 얼마나 투쟁하고, 어떻게 투쟁하였으며, 이러한 목표가 실현되지 못하면서 택시노조의 지역연대가 어떻게 무너졌는가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일부이지만 1970년대의 지입제와 도급제로 회귀하려는 사업주와 맞서 싸우는 지도급제 철폐투쟁도 볼 수 있으며, 옆에서 지켜본 택시열사의 죽음, 장례과정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험기는 1980·90년대 택시노동 전반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증언이자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3부에서는 택시노동운동을 연대기 식으로 정리한 자료입니다. 먼저 1장에서는 택시노동운동의 연표를 1980년부터 1997년까지 당시의 택시노동운동의 각종 투쟁과 사건 등을 중심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제2부의 열 다섯분들의 택시노동운동 체험기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들을 담았습니다. 다음으로 제2장에서는 정부가 택시정책을 통해서 택시업종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서 이와 관련된 택시 단체교섭의 발전과 변화를 알아보았습니다. 단체교섭의 내용은 원래 2008년 말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고서(2008년도 노사관계 실태분석 및 평가: 택시 부문)의 내용 중 일부를 정리 보충한 것인데 택시업종에 특수한 내용들이 적지 않아서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단체교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시계열적으로 알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택시에 대하여 운동단체가 발표한 성명서 및 홍보지, 각지역 택시노조 등에서 빌간한 홍보물, 박종만추모사업회에서 발간한 운수노보를 포함한 각종 노보 등 택시노동운동 관련 각종 자료를 소개하여 당시의 상황을 일부나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1980년대 중반~1997년까지 우리사회의 민주화, 특히 노동현장에서 노사관계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후 노동운동의 일부인 택시노동운동이 어떻게 일어나 택시업종의 노사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택시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어떻게 투쟁하고 노력해 왔는지, 때로는 좌절과 실패의 어려움, 여러 택시노조 활동가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집단적으로 시련을 뚫고 극복해 왔는지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시내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의 확충, 자가용의 보급으로 도시교통 내 택시업종의 위상과 역할이 변화하여 택시업종의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1990년대 중반 이래 택시노동운동의 약화, 지역별 교섭의 붕괴, 정액사납금제로 임금체계의 후퇴, 택시기사의 부족과 고령화 등을 겪게 되는 후퇴와 좌절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중들의 투쟁 앞에 택시는 늘 선두에 서 있었습니다. 택시는 힘들고 외로운 투쟁에도 불쏘시개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 광주항쟁, 1984년 대구, 부산 등 전국적인 택시 차량시위, 1987년 4월 서울 역삼동 빵빵시위,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월 노동자대투쟁 당시에도, 군부독재 무법천지의 거리에서도 택시는 투쟁의 선봉에 서 있었습니다.
지난 80년대 택시 동지들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에 앞장섰고,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으며, 따라서 택시 동지들의 투쟁은 민주주의의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택시 역사 한가운데에 박종만 열사가 있습니다.
택시노동자 박종만은 1984년 11월 30일“내 한 목숨 희생되더라도 더 이상 기사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습니다. 박종만 열사의 죽음은 택시기사들을 각성시켰고, 택시노동운동을 활성화시켰습니다. 나아가 전국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런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40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박종만 열사의 삶과 정신을 담은 특별한 책을 함께하게 되어 매우 기쁘고 뜻 깊게 생각합니다. 박종만 열사는 우리나라 택시노동운동사에 잊혀서는 안 될 인물로, 그의 헌신과 희생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박종만 열사의 생애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남긴 정신과 가치를 되새기고자 하는 의도로 집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정신을 기리고자 8,90년대 택시노동운동을 했던 동지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박종만 열사의 생애와 업적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위한 끈질긴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의 고난과 함께 한 여정, 그리고 박종만 열사의 유산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열망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종만 열사의 지독한 인내와 불굴의 정신을 느끼게 해주고, 또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해 주기를 바라며, 그의 이야기가 널리 퍼져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동기를 부여하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분들의 지지와 참여가 있었습니다. 이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택시노동운동을 하다 산화해 가신 노동열사의 명복을 머리숙
여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