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불교, 아시아를 잇다!
아시아의 한자 불교와 경전과 수행법 교류 …
아시아 불교 모자이크의 한 부분 담당
일찍부터 현재의 베트남 지역은 인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주변의 동북아시아와 활발히 교류했다. 특히, 북부의 루이러우(연루) 지역은 초기 불교 교류의 중심지로, 인도와 중국 양쪽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불교 유적이 남아 있다. 베트남 불교는 중국 남부에도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중국 남종선의 영향도 받았다. 특히 리 왕조 시기에 중국 송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불교문화가 발전했고, 선종의 영향이 강해진 베트남 불교는 이후 한자 불교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개인적 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통해 아시아 불교권 형성에 기여하게 되었다.
10세기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루었고, 리 왕조에 이르러 마침내 불교가 국가의 중심 이념으로 자리 잡으며 사회 통합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베트남 황실은 불교를 대외 활동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며 국제 관계를 강화했고, 불교 경전과 사절단을 교류하며 대(對)중국 관계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불교는 아시아 불교 모자이크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베트남 불교. 사회 통합을 이루다!
불교의 중흥 이끈 황실과 중생의 결속 다진 승려 … 불교 국가의 탄생
1009년 리 왕조 초대 황제 리타이또(李太祖, 1009~1028 재위)가 승려 반하인(萬行)의 지원을 받아 왕위에 오르면서, 베트남은 불교 국가로 거듭났다. 현재 수도 하노이와 근처에는 수많은 사찰과 불탑이 건설되었으며, 불교가 국가 통치의 중심이 되면서 승려들은 국정을 보좌하고, 백성을 가르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황제와 황족, 그리고 관리들이 불교를 신봉하며 장려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황제가 직접 불교 행사를 주관하고, 불경을 수입하며, 승려 교육을 지원했다. 또한, 주요 불교 종파인 초당파(草堂派)와 무언통파(無言通派)를 적극 후원하여 불교 사상의 발전을 이끌었다.
베트남 역사에서 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사회 통합을 이루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불교 사원과 불상이 조성되며 베트남의 ‘전통’ 문화로 이어졌으며, 대규모 불교 행사와 축제가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으며 리 왕조 사람들의 결속을 다졌다. 사찰이 교육 기관으로서 경전을 배우고 수행을 하는 중심지가 되었으며, 승려들 중에 일부는 황실의 조언자로 활동하며 정책 수립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불교는 독립과 호국을 강조하는 시대정신과도 결합하여 나라를 대표하는 종교로 점차 자리를 굳혔다.
베트남 불교, 현재 베트남에서 다시 떠오른다!
유교의 부상 속에 영향력 약화 … 유무형의 유산으로 생명력 여전
10세기와 11세기 초 사이에 단명한 응오 왕조, 딘 왕조, 띠엔레 왕조에 비해 리 왕조가 비교적 장기간 존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불교가 있었다. 그러나 역대 황제 리타이똥(李太宗, 1028~1054 재위), 리타인똥(李聖宗, 1054~1072 재위), 리년똥(李仁宗, 1072~1128 재위), 리아인똥(李英宗, 1138~1175 재위) 등으로 이어지면서 베트남의 불교는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한다.
번성하던 불교는 리 왕조 후반에 이르러 유불 융합 정책과 승려들의 타락으로 점차 영향력을 잃어간다. 1225년, 쩐 왕조[陳朝]가 성립되며 리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불교의 영향력도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한때 베트남에서 불교는 쩐 왕조 시기까지 국가 발전의 상징이었으나 ‘유교 국가’ 레 왕조의 등장으로 이전의 영향력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이렇게 베트남에서 불교는 정치적 영향력이 감소했지만,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실생활에 깊이 뿌리내린 종교로 남았다. 현재 베트남의 불교 유적은 국가 문화유산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관광 산업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이 책은 대우재단 학술연구지원 사업 논저 부문에 선정되어 연구 및 출간 지원을 받은 저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