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시궁쥐였어요!”
어쩌면 로저의 이 말이 사실일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지금의 로저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언론의 주장처럼 하수도에 사는 난폭한 괴물일까요?
공연업자의 바람대로 돈을 벌어 주는 세기의 볼거리일까요?
거리의 소년이 원하는 최고의 빠져나가는 챔피언일까요?
정말 다행은, 왕자비와 괴물의 ‘기적’이
신문을 더 잘 팔리게 할 기삿거리라는 점이랍니다.
◆ 여러 층의 읽기가 가능한 동화 ㆍ 모험담 ㆍ 패러디
어느 날 저녁, 나이 든 밥 아저씨와 조앤 아주머니 부부의 집에 다 찢어진 제복을 입은 꾀죄죄한 남자아이가 나타난다. 그 아이는 “나는 시궁쥐였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이름이 뭔지, 어디서 왔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부부는 아이에게 ‘로저’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는, 로저가 온 곳을 찾아 나선다.
맨 처음 시청에서는 발견된 아이라 소관이 아니라고 하고, 경찰서에서는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하고, 병원에서는 학교에 보내라고 하고, 학교에서는 매를 때려 도망치게 만든다. 곧이어 왕립 철학자라는 사람이 연구를 하겠다며 데려가서는, 그만 아이를 잃어버리고 만다. 곧바로 박람회 공연업자의 손아귀에 떨어진 로저. 이제 금세기 최고의 볼거리가 되어 온몸에 부스럼을 붙인 채 역겨운 괴물 행세를 하는데……. 그러다 밤에 활동하는 소년들 패거리에 얽혀 들고, 결국 갈 곳 잃은 로저는 죄책감과 비참함 속에 하수구 철망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 무렵 흥미로운 이야기 취재에 열을 올리던 회초리일보는 ‘하수도의 괴물’ 기사를 쓴다. 괴물 박멸 여론이 들끓고, 신문들은 괴물 때문에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학부모 단체들은 괴물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선동한다. 드디어 괴물의 운명이 결정되는 재판정, 해부학 교수, 왕립 철학자, 공연업자…… 증언이 이어질수록 로저는 흉포한 괴물로 각인되고, 기어이 사형 판결이 내려진다. 절망한 밥과 조앤은 마지막으로 오릴리아 왕자비를 찾아간다.
다음 날, 회초리일보에는 천사 같은 왕자비의 중재로 기적이 일어났다며 애당초 괴물은 없었다는 기사가 실린다.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이 고통받는지 아느냐는 질타와 함께.
동화와 풍자, 슬랩스틱 유머와 긴장감 넘치는 멜로드라마의 요소를 모두 갖춘, 멋진 이야기.
__가디언
◆ 잘 알려진 옛 동화와 현대 대중문화의 조화
《나는 시궁쥐였어요!》는 필립 풀먼의 대표적인 어린이책으로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널리 사랑받는 수작이다.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갈 때 시종으로 변해서 마차를 타고 간 시궁쥐, 그 뒤에 시궁쥐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재치 있는 물음에서 출발해 바로 인간 사회의 위선적 모순과 허위의식을 비틀고 뒤집으며 종횡무진 어두운 이면을 들춰 보임으로 동화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언론, 교육, 공권력, 정치, 지식인,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이윤 추구…… 우리 사회의 여러 측면이 꼬리를 물고 뒤섞인 판타지는 꼭 지금의 우리 현실처럼 전혀 낯설지 않다. 독자들은 그동안 당연시했던 언론의 힘이나 지식인의 권위나 정치인의 정책 등 많은 것에 새삼 의문을 가지며 어떤 것도 무지성적으로 믿어 버리지 말아야 함을 확실하게 깨닫는다. 잘 알려진 동화들을(신데렐라, 구두장이를 도와주는 그림 동화 속의 난쟁이들, 고아원의 올리버 트위스트와 친구들, 전설로 남아 버린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기억까지) 뛰어난 장인 정신으로 엮어 낸 이야기, 판타지이면서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리얼리즘,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고 찾아오는 감동적인 결말이 아주 멋지다.
삶이라는 것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인지
알려 주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좀 더 지혜롭게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__필립 풀먼
◆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다시 생각한다
언론의 역할 중 하나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보도이다. 하지만 회초리일보는 사실과 상관없는 정보를 유포하고 같은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전파한다. 수많은 기사와 논평을 통해 한 아이를 폭력적인 괴물로 만든 것도, 겉모습에 속지 말자고 여론을 조성하는 것도, 마지막에 언제 그랬냐는 듯 완벽히 논조를 바꾼 것도 모두 같은 회초리일보이다. 언론이 항상 진실을 말하지는 않기에, 신문, 방송, 인터넷 등 현대 대중 매체를 대하는 소비자의 지혜가 절실하다.
◆ 무책임한 정치는 삶을 파괴한다
언론 못지않게 정치 역시 여론의 뒤를 쫓아가며 눈치를 보고 대중의 입맛에 맞는 판단만 내리고 있다. 오늘날 욕을 먹는 정치의 모습 그대로다. 사회에 다양한 욕구가 존재하는 그만큼 어려운 정치는 당연히 많은 사람을 편안하게 살게 해 주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 대변할 길이 없는 소수를 억압하는 것이 바른 정치일까? 균형이 무너지면 치우쳐지고, 그 치우침은 권력이 대변하지 못하는 삶을 파괴한다. 바로 로저의 삶처럼.
◆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자, 그 이름은 지식인
지식인이란 간단하게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자이다. 그래서 진실을 탐구하고 알리는 사명이 주어진다. 하지만 왕립 철학자는 로저의 진실을 외면하며 세 치 혀로 자신의 잘못을 빠져나가려고만 한다. 오늘날 복잡한 사회에서도 지식인의 역할은 변함이 없다. 장차 이 사회의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할 우리 어린이들은 로저를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계기가 되는 왕립 철학자를 보며, 진실을 말하고 실천하는 지식인의 책무를 무겁게 새겨야 한다.
◆ 교육 현장, 가정과 사회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선생님은 로저가 왜 소리를 지르는지 알아보지 않고 윽박지르고 무조건 매를 든다. 획일적인 통제 교육, 처벌에 의한 강압 교육이 아니라 이해와 따뜻한 마음을 공유하는 교육만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지식과 인성 모두를 고양시키는, 공교육의 역할에 관해서 함께 고민하고 가정과 사회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이지만 밥이 욕심 없이 솜씨를 발휘한 진홍빛 구두, 그 구두로 인해서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사랑과 가족과 일에 대한 열정이 이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간 바탕이 된 것이다. 순수한 장인 정신의 승리!
삶이라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다. 아무리 사회가 혼란스러워도 우리의 사랑과 행복을 위해 사회를 바로 잡아가는 노력이 언제나 밑받침되어야 함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