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묻힌 진주, 원전(元㙉)과 원사립(元士立)
역사상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인데도 잘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주요 인물은 흙에 묻힌 진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고성 현령 원전(元㙉)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많은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 일등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아들인 진주 목사 원사립(元士立) 역시 여러 곳에서 왜적을 무찔렀으며, 특히 정유재란으로 혼란에 빠진 충청도 일대를 방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역시 빛나는 공적을 인정받아 선무원종공신으로 책봉되었다. 이들 부자는 조정에서 인정한 공신이자 충신이지만, 후세는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아마 대부분일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와 2장은 제각기 고성 현령 원전과 그 아들인 진주 목사 원사립의 전기로, 사실상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3장은 원전과 원사립 부자의 삶에 지표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 깜깜한 밤중에도 뱃길을 밝히는 등대와도 같았던 선조들에 관한 이야기다. 4장은 원전- 원사립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유구한 전통을 제대로 잇기 위해 노력한 인물을 간단히 소개하였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경기도 진위현 여동(여좌동이라고도 함, 현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에 세거(世居)한 명문가 원주 원씨의 역사를 부분적으로나마 조명하고 있다.
충신 원균의 동생, 원전
고성 현령 원전(元㙉)은 맏형인 원릉군 원균의 오른팔과도 같았다. 임진왜란이 시작되기 전부터 원균이 순국할 때까지 원전은 시종일관 진중(陣中) 에서 원균을 충심으로 보좌하였다. 원전의 특징을 우리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원전은 실전에서 공을 세운 탁월한 장수였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한산대첩에서도 그는 큰 공을 세워 조정의 표창을 받았다. 선조 까지도 원전을 탁월한 장사(將士)라고 기억할 정도였다. 둘째, 원전은 적정(敵情, 적의 형편)을 환히 꿰뚫어 보았다. 그의 형 원균은 항상 왜적의 동향에 관해 촉각을 세우고 많은 정보를 탐지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원전은 적의 현황과 전략을 깊이 통찰하였다.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원전에게 남해 전선(戰線)에 관한 정보를 물었고, 그의 설명에 크게 공감하였다. 셋째, 원전은 맏형인 원균의 참모장 또는 비서실장에 해당하였다. 그는 형님을 위해 항상 성심성의껏 보좌하였다. 경상 우수사 원균이 충청병사로 이임하였을 때도 마지막까지 우수영에 남아 잔무를 깨끗이 처리하고, 형님을 뒤따라갔다. 한 마디로, 원균과 원전의 관계는 바늘과 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원전의 일대기는, 원균의 활동을 떠나서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충신이자 효자인 원전의 아들, 원사립
원전의 아들 원사립은 효제(孝悌, 효도와 우애)와 충신(忠信)을 실천한 장수요, 엄연한 명장이면서도 칼을 찬 선비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한문식 표현을 빌리자 면, 문무겸전(文武兼全)과 충효쌍전(忠孝雙全)의 주인공이었다.
근거없이 원사립의 생애를 무턱대고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옛 문헌에 명확히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다. 기록에 따르면, 경향 각지의 선비들이 원사립의 단아한 언행과 풍모를 흠모하였다고 한다. 또, 그는 효심이 유난히 깊어 모친상에 시묘살이를 마치자 불과 수개월 뒤에 세상을 하직할 정도였다. 조정에서는 그 의 효행을 높이 평가하여 효자 정려를 하사하였다. 그는 명장이자 탁 월한 목민관(牧民官)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세 가지 사실을 아래에서 간단히 설명하겠다.
첫째, 정유재란이 발생한 직후 그는 상중(喪中)임에도 기용되어 충청도 서천 군수가 되었다. 그 당시 서천과 한산 일대는 왜적의 차지가 되어 충청도 남서부가 큰 혼란에 빠져 있었는데, 원사립은 적은 수의 병사를 가지고도 단시일 내에 왜적을 소탕하였다. 둘째, 왜적을 크게 물리친 공으로, 원사립은 요직인 경상도 진주 목사와 김해 부사를 역임하였다. 특히 김해 부사 시절에는 선정을 베풀어 포상을 받았다. 더불어 그의 품계가 한 단계 높아져 당상관에 올랐다. 셋째, 조정에서는 원사립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그를 압록강에 있는 만포진 첨절제사로 임명하여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그는 만포진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숙원사업으로 남아 있던 축성(築城) 사업을 절반 이상 마쳤다. 적은 병력을 가지고 누구도 하지 못한 어려운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였으니, 참으로 놀라운 성과였다.
자랑스런 후예들
이전에는 우리가 잘 몰랐으나, 원전과 원사립은 참으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전통이라도 자손이 그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곧 사라진다. 역사를 공부해보니 과연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이름을 날린 명문가는 매우 많으나, 수백 년 동안 그대로 명성을 유지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왜 그런 것일까? 조상이 세운 빛나는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이 사라지면, 그것으로 그 집안의 역사는 시들기 시작한다. 과거의 영광이란 풀잎에 매달린 이슬방울과도 같아서 해가 중천에 솟으면 자취를 감추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지난날의 영광을 기억하고 다시 재현하고자 노력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뚜렷이 기억하고, 오늘의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미래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역사에 오래 남은 명문가란 전통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런 후예들이 생기는 그 배경으로 여동의 지역과 그 가문의 배경이 가장 원인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여동의 원주 원씨로 말하면 “뿌리 깊은 나무”요, “샘이 깊은 물”이었다. 원주 원씨(原州元氏)는 고려가 건국될 당시부터 그 나라가 멸망하기까지 무려 500년 동안 우리나라 굴지의 명문귀족이었다. 여동의 원씨들은 조상의 위업(偉業)을 잊지 않았으며, 빛나는 전통을 지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은 이런 자랑스런 후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