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범인을 찾아 헤매는 남성성의 세계
뛰어난 만듦새와 정치성을 지닌 작품답게, 이 영화는 다양한 쟁점을 낳는다. 범죄스릴러가 한국 사회와 만나 장르의 쾌락을 무너뜨린 게 아니라, 더 원초적이고 강력한 ‘체념’의 쾌감에 복무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사건의 기반인 가부장제 구조를 지우고 “텅 빈 여성 시체에 ‘독재하의 엄혹한 1980년대’라는 다른 역사적 맥락을 채워 넣”은 “왜곡된 남성 무용담”은 아닌가. 온기 있지만 서투른 해결보다 모든 걸 다 드러내서 이미 세계 자체가 미쳐 있다는 것을 싸늘하게 말하는 것이 과연 봉준호의 방식일까. 여성의 시신은 널려 있지만, 여성의 언어는 부재한다. 저자는 말한다. 이 영화가 주시하는 방향은 여성을 구하지 못한 남성의 죄의식이 아니라, 구할 수 ‘없는’ 남성성의 모순과 궁지라고. 영화 결말 속 스크린 바깥을 응시하는 송강호 얼굴 클로즈업은 무지로 살아남은 남성성의 얼굴이라고. 그의 얼굴은 회한이나 후회, 혹은 공포와 불안의 감정이 아니라, 무지의 힘을 전시하며 그 힘으로 진동한다고. 박두만, 조용구, 서태윤, 구 반장, 신 반장, 박현규, 그리고 어딘가 존재할 진짜 범인 모두를 포괄하며 이들 사이의 근원적 ‘차이’란 환상에 불과한 게 아니냐고 빤히 묻는다. 이보다 무서운 자기인식이 어디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