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문법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주시경(1910), 『국어문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은 이 분야의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국어문법』 이후의 한국어 문법 기술의 방법론을 분류론적 문법과 표준이론의 생성문법과 원리매개변인 이론의 문법과 최소주의 기획의 문법의 네 가지로 나누어, 각각의 대표적 이론적 시도들을 선별하여 비판적 검토를 보이고, 그 결과로 필자 자신의 한국어 문법 체계를 이끌어 내었다.
이 책에서 전개하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현대 한국어 문법의 기술로서, 필자가 가지고 있는 한국어 문법에 대한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이와 함께 한국어학의 후속 세대에게 한국어 문법 연구의 주요 문제들을 가려내어, 정리하여 보여주고, 문법론의 논증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그 중요한 목표로 유의하고 있다. 과학의 연구는 항상 제기된 이론에 대한 비판 작업을 주요 작업으로 가진다. 과학적 연구로서의 한국어 문법론 연구에서 항시 비판의 도구로 삼아야 할 사항들, 즉 계열관계와 통합관계의 질서에 관한 점검, 구성성분됨의 요건, 구조보존 원리의 요건, 그리고 관찰의 충족성 요건, 기술의 충족성 요건, 설명의 충족성 요건을 점검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보임으로써 이 분야 연구의 초보자가 스스로 실행가능한 이론을 전개하는 힘을 쌓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 책의 독자로 상정하는 사람들로는 기성의 연구자들도 있다. 특히 외국에서 한국어 문법을 연구한, 또는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통문법서를 포함하는 한국어 문법서들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검토할 수 있는 요약과 비판의 저술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것을 필자는 오래전부터 느껴 왔다. 기존 한국어 문법론의 연구서들 중에도 이전의 전통문법, 생성문법의 이론들을 개관한 사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전통문법의 대표적 이론들을 이 책만큼 포괄적으로, 상세하게 요약하여 비판한 예는 찾을 수 없다. 생성문법의 이론들도 표준이론, 원리매개변인 이론, 심지어 최소주의 통사론까지 포괄하여 각각의 대표적 이론들을 일관된 관점에서 요약・비판한 예는 역시 찾을 수 없다. 선행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모든 이론적 검토에서의 필수 사항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이전과 다른 이 책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어 문법론의 기술에 있어서 필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점은 통사구조의 기술이 의미 또는 의미구조와의 구체적 연결을 고려하여 실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합성성 원리’라는 이름 아래, 최근에 와서 생성문법 이론가들에게 더욱 분명히 인식되어 가는 관점이라고 판단한다. 통사구조와 의미구조가 대응되는 과정에 규칙들의 체계가 존재하며, 이들은 문법의 일부이다. 필자는 문법의 일부로서의 의미 해석 규칙들의 체계를 수립하고 상론하여 2023년 말에 「한국어 형식문법」이란 제목으로 출판한 바 있다. 그곳에서의 의미 해석 규칙들은 이 책에서 구체적인 문장 유형의 통사구조를 논할 때에 의미론적 근거로서 활용되기도 한다.
부정하든, 긍정하든, 우리는 현재 한국어의 음운론적 체계의 전모와 통사론 체계의 전모와 함께 의미론 체계의 전모를 보면서 판단할 수 있는, 행복한 위치에 와 있다. 이것은 110여 년 전에 과학적 연구의 열의에 차 있던 (그러나 불운한) 청년 주시경이 갖지 못한 상황이다. 필자는 주시경이 ‘늣씨’, ‘씨’, ‘모’, ‘드’, ‘미’와 같은 기호 단위들의 체계를 과학적으로 기술해야 한다는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미’는 담화 단위에 상당하는 것인데, 담화 단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현재 ‘담화표상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언어학자들의 연구 주제의 목록 안에 포함되고 있다.
이 책의 한국어 통사론에 대한 기술과 그것의 의미와의 연관성에 대한 전망이 초보자는 물론, 동료 학자들에게도, 완전한 한국어 문법의 기술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유용한 자료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2024년 12월
양 정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