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은 1974년 박정희 정권의 대통령 긴급조치(비상계엄)에 항거하며 사회민주화에 앞장 선 시대의 선지자였다”
‘무소유’의 가르침을 우리 시대에 전하고 2010년 홀연히 원적(圓寂)에 든 법정 스님(1932∼2010)의 15주기를 맞아 스님의 일생과 사상을 조명한 평전 『비구 법정-우리 시대에 왔다 간 영혼의 스승』(중앙출판사)이 출간됐다. 이번에 나온 『비구 법정』에는 그동안 알고 있던 자연 친화주의자이자 에세이스트로서의 법정 스님이 1960년대부터 원적에 들기까지 우리사회의 민주화에 앞장 선 ‘시대의 선지자’였음을 확인할 수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으며 법정 스님의 가르침 연구를 위해 집필 원고 350여 장도 수록해 스님의 원문 가르침을 접할 수도 있다.
이 책은 30년 넘게 불교신문 기자로 재직하며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한 여태동 기자(58)가 2020년 받은 ‘법정 스님 인물연구 1호 박사논문’인 ‘법정의 시대정신 형성과 전개과정 연구’와 2020년 불교언론문화상(신문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내용을 종합한 것으로 법정 스님의 맏상좌 덕조스님(서울 길상사 주지)이 감수해 ‘법정학’ 연구에 밀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인 여태동 기자는 2019년부터 2년 동안 해남 선두리와 목포, 흑산도, 광주 정광중학교, 통영 미래사 등 법정 스님의 향기가 담긴 곳곳을 다니며 불교신문에 법정 스님의 생애를 다룬 ‘무소유의 향기’를 연재했다. 법정 스님이 원적에 들기 3년 전이었던 2007년부터는 불교신문 전략기획부장으로 일하며 법정 스님이 불교신문에 남긴 글을 모아 2017년 출간한 『낡은 옷을 벗어라』라는 책을 출간하는데 책임편집을 맡기도 했다.
『비구 법정』에는 저자가 현장을 취재하면서 발굴한 유년시절과 학창시절, 청년시절의 행적이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법정 스님은 중학교 시절부터 목포로 유학을 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학창시절을 보낸 증거의 성적표와 스님의 철친한 친구였던 전남대 박광순 명예교수(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2023년 작고)의 강연과 회고록을 통해 학창시절의 비화(祕話)도 담겨 있다.
또한 (사)맑고 향기롭게와 길상사 주지 덕조스님, 고(故) 박광순 교수 및 유가족, 파리 길상사 초대주지 천상스님, 김정숙(현대문학사 편집자로 『무소유』 원고 청탁 및 수령자이자 책 제목 기여자, 기타규슈시립대 및 구마모토대학 교수 역임)씨의 협조로 미공개 사진 100여 장이 수록돼 있다. 법정 스님으로부터 ‘호우프 씨’라는 애칭을 받은 김정숙씨(경북 영주 거주)는 〈현대문학〉 편집자로 재직하고 있을 때 원고청탁을 통해 1971년 3월호에 실린 에세이 ‘무소유’가 책 『무소유』로 이어진 사연의 엽서를 저자에게 제공해 이 책에 실었다.
저자는 1986년 대학교에 입학 후 송광사 대구포교당인 삼덕동 관음사에서 열린 사상강연회에서 법정 스님을 처음 만나 큰 덕화를 받았다. 이후 경북대불교학생회에 입회해 불교활동을 시작했고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대구.경북지부에서 활동했고, 육군 7사단 연승사(강원도 화천)에서 불교군종병 생활을 했다. 그 인연으로 1994년 불교신문 기자로 입사해 40년이 넘게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접하며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연구하고 있다.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의 법문을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저자는 원적에 들었을 때도 길상사 행지실에서 가사 한 벌을 덮고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배웅했다. 그때 법정 스님에 대한 평가 한 줄은 ‘우리 시대에 왔다 간 성스러운 비구’였다. 그때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연구해 널리 전해야 하겠다는 발원이 이어져 『비구 법정』이라는 인물평전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
『비구 법정』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불교계를 대표한 사회민주화 인사로서의 행적이 곳곳에 담겨 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한 법정 스님은 출가 전부터 많은 독서량이 있어 출가 후에는 아주 빠르게 불교를 깊이 체화했고, 해인사에서는 팔만대장경을 탐독한 후 운허 스님을 도와 『불교사전』을 편찬했고 한문으로 된 팔만대장경을 한글화하는 데 앞장섰다. 이러한 학문적 토대 위에 집필된 법정 스님의 저서에는 초기 불교사상에서부터 반야·법화·화엄·선사상 등 불교 전체를 아우르는 실천적인 가르침이 녹아 있다.
출가 후에도 법정 스님은 해인사 학인 시절 문학과 철학·예술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공부했고, 함석헌 선생, 장준하 선생, 황산덕 교수 등의 강연과 대화도 나누며 사회 민주화에 대한 인식을 넓혔다.
이러한 법정 스님의 식견은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의 험로에서 불교계를 대표하는 민주화 인사로 이름을 올렸고 이로 인해 상당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80년대 광주민중항쟁을 목도하고 군사독재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한 ‘시대의 어른’이기도 했다.
요즘 계엄상황과 흡사한 대통령 긴급조치 1974년에는 시 ‘1974년의 인사말’, ‘1974년 1월-어느 몰지각자의 노래’, ‘쿨룩 쿨룩’과 비판글인 ‘돌아본다 1974’를 통해 시대의 부조리에 장군죽비로 경책을 했으며 1980년 광주민중항쟁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며 불의에 항거하기도 했다. 특히 1974년 박정희 독재정권 하에서 내려진 긴급조치(비상계엄)에 대해서 법정 스님은 봉은사 다래헌에 주석하며 ‘헌법개정 청원운동’에 불교계 대표로 참여해 갖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여기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법정스님은 시와 글을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었던 〈씨ᄋᆞᆯ의 소리〉에 게재하기도 했다.
「1974년의 인사말」(전문)
그동안 별일 없었어요?
만나는 친구들이
내게 묻는 안부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 밖에 무슨 인사를 나눌 것인가
별일 없었느냐구
없지 않았지
별일도 많았지
세상이 온통 별일뿐인데
그 속에서 사는 우리가 별일이 없었겠는가
낯선 눈초리들에게 내 뜰을 엿보이고
불러서 오락가락 끌려다녔지
다스림을 받았지
실컷 시달리다 돌아올 때면
또 만나자더군
정 떨어지는 소린데
또 만나자고 하더군
별일 없었느냐구
왜 없었겠어
치자治字가 모자라 별일 없었지
친구여, 내 눈을 보는가
눈으로 하는 이 말을 듣는가
허언虛言은 입으로 하고
진언眞言일랑 눈으로 하세
아, 우리는 이 시대의 벙어리
말 못하는 벙어리
몸조심 하세요
친구들이 보내는 하직인사
그래, 몸조심 해야지
그 몸으로 이 긴 생을 사는 거니까
그런데 그게 내 뜻대로 잘 안 돼
내 몸이
내게 매인 게 아니거든
「쿨룩 쿨룩」(전문)
쿨룩 쿨룩
웬 기침이 이리 나오나
쿨룩 쿨룩
이번 감기는
약을 먹어도 듣지 않네
쿨룩
법이 없는 막된 세상
입 벌려 말좀 하면
쿨룩 쿨룩
비상군법회의 붙여
십오 년 징역이라
쿨룩
자격을 또 십오 년이나
빼앗아 버리니
쿨룩 쿨룩
이런 법이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쿨룩 쿨룩
입 다물고 기침이나 하면서 살아갈거나
쿨룩 쿨룩
기침은 마음 놓고 해도
그 무슨 조치에 걸리지 않는지 쿨룩 쿨룩
기침도 두렵네
기침도 두렵네
쿨룩 쿨룩 쿠울루욱…
「1974년 1월-어떤 몰지각자沒知覺者의 노래」(일부)
(1)
나는 지금
다스림을 받고 있는
일부一部 몰지각한 자者
대한민국大韓民國 주민住民 3천5백만
다들 지각知覺이 있는데
나는 지각知覺을 잃은 한 사람.
그래서 뻐스 안에서도
길거리에서
또한 주거지住居地에서도
내 곁에는 노상
그림자 아닌 그림자가 따른다.
기관機關에서 고정배치된
네 개의 사복私服
그 그림자들은
내가 어떤 동작動作을 하는지
스물네 시간을 줄곧 엿본다.
…(중략)…
(8)
우리는 지금
다스림을 받고 있는
일부一部 몰지각자者
대한민국大韓民國 주민住民 3천5백만 다들 말짱한 지각知覺을 지녔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지각知覺을 잃었는가
아, 이가 아린다 어금니가 아린다.
입을 가지고도 말을 못하니
이가 아리는가
들어줄 귀가 없어 입을 다무니
이가 아리는가
들어줄 귀가 없어 입을 다무니
이가 아리는가
오늘도 부질없이
치과의원齒科病院을 찾아 나선다.
흔들리는 그 계단을 오르내린다.
1960년대부터 글쓰기에 일가견을 보인 법정 스님은 한문대장경을 한글대장경으로 옮기며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쳤으며 불교신문에 ‘낡은 옷을 벗어라’라는 글을 실으며 역경의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침묵은 범죄다-봉은사가 팔린다’라는 칼럼을 실으며 2만 평이 넘는 종단 토지가 한전으로 매각(후에 현대자동차로 매각되며 2020년 시가 10조5500억원 가치)되는 모습을 안타까와하며 필사적으로 반대하며 불교교단을 바로세우려는 노력을 경주하기도 한 내용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법정 스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연주의자로서 에세이스트였을 뿐 아니라 사회 민주화와 세계평화 실현에 노력한 민주인사였고 인류를 파괴하는 전쟁을 반대하고 기후환경을 옹호한 선지자였다”며 “법정 스님의 사상은 그가 원적에 든 이후 저서가 절판돼 연구 환경이 위축돼 있지만 이 책이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좀 더 자세하게 접할 수 있는 밀알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책을 저술한 여태동(余泰東)은 1966년 소백산과 태백산이 켜켜이 드리운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1리 막지고개(막현마을)에서 태어났다. 경북대 영문학과 졸업 후 미원그룹(대상)에 입사, 미원통상에서 MD로 근무했다. 1994년 불교신문 기자로 입사해 30년 넘게 근무하며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거쳤다. 동국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사회복지사 1급 자격 취득),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법정의 시대정신 형성과 전개과정 연구」(2020년)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시동인회 ‘청죽(靑竹)’에서 활동했고, 군대시절인 1989년에는 국방일보에 시 「GOP 전선」을 발표했다. 2021년 『시와 세계』 겨울호에 「어매의 어매」 외 5편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천년사찰 천년숲길』, 『송아의 관찰일기』, 『바우덕이』 등 10여 권의 책과 첫 시집 『우물에 빠진 은하수 별들』을 출간했다. 법정스님에 관한 논문 10여 편도 썼다. 2020년 한국숲과문학명상협회(산림청인가) 숲치유명상가 1급 자격증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