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돌아가는 쉬운 길을 찾지만 실패하곤 합니다. 살을 빼는 것도 그렇고 운동하는 것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습니다. 기본에 충실하고 기본기를 바탕으로 상황에 맞춰 활용하는 능력을 키운 것이 제일 확실하고 쉬운 방법입니다. 아주 고전틱한 말을 다시 해보아야겠습니다.
학습(學習)에서 학(學)은 기본서를 보거나 강의를 수강하는 과정입니다. 학으로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습(習)에서 羽는 새의 날개이고 白은 百인데 백번을 의미합니다. 어미 새가 나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고 날갯짓을 백번 해야 새가 날 수 있습니다.
학습은 그래서 지난한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배우고 익히는 것이야말로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에서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고 합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의미입니다.
배우고 익히는 게 즐겁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즐겁지 않을까요. 시험만 잘 보기 위해 요약서나 보려고 하고 요행수를 바라면서 공부하면 배우고 익히는 것의 즐거움을 알 수 없습니다. 일종의 강압적인 노동일 뿐입니다.
판례를 읽으면 판결문을 쓴 사람의 마음, 수준까지 읽어낸다면 배우고 익히는 게 정말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공부는 노동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지적인 유희입니다. 공부가 전 시대의 거인들이 어떻게 배우고 익히고 사고했는지 알 수 있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엘리트들이 우리 시대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자 하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 겁니다.
기본서를 읽으면서 저자의 호흡까지 생각까지 읽어내는 즐거움을 요약서에서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판례원문을 전체적으로 읽어야 판례를 쓴 법관의 고민을 알게 됩니다. 법학의 맛을 알고 멋을 아는 과정이 변호사시험 공부의 과정입니다.
학문의 즐거움에 취해 차를 타기 보다는 걸어가면서 즐겼던 젊은 날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법시험 강의는 최고의 지적인 유희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학문의 효율성을 추구하지는 않으나 수험은 효율성을 추구해야 하기에 한계가 없지는 않습니다. 요새 기본서를 보지 않고 요약서만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용감한 수험생도 있고 더러는 그래서 성공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공부가 노역이 되고 수험생들의 얄팍한 목표의식과 결합해서 기본서 대신 요약서를 보게됩니다. 효율성만을 극도로 찾는 다면 공부의 즐거움을 잃어 버리고 균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뭐든지 과유불급입니다. 극단은 큰 부작용이 매우 큽니다. 너무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과론적으로 공부의 즐거움 대신 노동만 남아 즐거움이 없으니, 효율적이지도 않게 됩니다. 즐기지 못하니 고통뿐이어서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법학의 기본서를 읽지 못하는 법조인이라면 그 누가 신뢰를 하겠습니까? 기본서가 어렵다고 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본서를 읽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고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효율성과 공부의 즐거움이 균형을 이룰 때 장기적인 효율성에 도달하게 됩니다.
처음에 기본서를 읽을 때 지도해주는 선생님이 빠르게 틀을 잡아주면 좋습니다. 디테일한 설명보다는 뼈대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면 좋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디테일한 내용을 암기하거나 이해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개관을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모른다고 멈추지 말고 쭉 밀어야 합니다. 사로 연결되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빠르게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본서 목차와 디테일한 목차를 뼈대로 삼고 살을 붙여나가야 합니다. 목차를 읽고 암기해서 책을 덮고도 줄줄 암기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차를 넣은 상태에서 그 안에 들어갈 내용을 연상하고 정확하지 않으면 다시 기본서를 찾아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책 목차 간의 관계를 떠 올려보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사례문제집에서 문제를 보고 기본서에 있는 목차와 내용을 떠올려 보고 목차를 작성해보는 연습을 합시다.
사례집은 기존 기출과 모의고사 문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본서의 목차와 핵심적인 내용만 머릿속에 있다면 사례문제를 공부하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사례문제를 보면서 기본서 어디에 있는 내용인지를 머릿속에서 떠올려보고 아직 미숙하면 기본서 목차를 찾아보면서 어떤 내용이 들어가기 좋을까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내용을 구성하면 출제자가 가장 좋아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암기만으로는 그 문제 그대로 나오지 않으면 문제를 제대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만으로는 좋은 답안을 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답안에 대한 구상을 해보고 더 나은 답안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답안을 정말 잘 쓰는 사람에게 첨삭을 받고 첨삭을 반영하여 다시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가장 완벽한 답안을 몇 개만이라도 작성할 능력이 있다면 나머지는 시간의 문제입니다. 아니면 예시답안을 보고 다시 예시답안처럼 답안을 써보는 방법도 좋습니다. 물론 예시답안을 맹종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 나은 답안을 항상 생각해보아야 하고 머리에 반복적으로 도상연습을 하여야 합니다. 구상이 잘 되면 답안을 정성껏 다시 써야 합니다. 극도로 완벽한 답안을 쓰려는 노력과 과장이야말로 법조인이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제 기본서나 사례가 익숙해지면 다양한 조합을 통해 문제를 구성해보는 재미도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최근 비상계엄과 탄핵사건, 대통령 체포와 구속 사건을 보면서 국민들이 법조인들에게 큰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큰 실망은 또다른 기대이기도 합니다. 법치국가에서 법조인들이 법이 잘 융통될 수 있게 해야 함에도 법을 몰라서 법을 알아도 이익이나 이념에 치여서 법을 왜곡시켜 국민들이 법에 대한 혐오를 가질 가봐 걱정입니다.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권력간 충돌은 법이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합니다. 동일한 법이 어떨 때는 유리하고 어떤 경우에는 불리하더라도 우리는 묵묵히 법이 숨을 쉬고 공기처럼 잘 생활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결국 이익이나 이념을 위해서 법이 질식되는 것을 방관하거나 협조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법을 잘 알고 따뜻한 법조인이 되는데 조그만 힘이 될 수 있는 교재를 만들고 강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건승하시고 행복한 삶 누리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025. 1. 18.
황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