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문제의식
한국 사회는 1970~80년대를 지나면서 경제 성장으로 외견상 풍요로운 사회로 진입했고, 1990년대를 지나면서 생산보다 소비가 가치 생산을 주도하는 소비사회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 변화의 국면들 사이에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정치 민주화의 상징적 사건들이 놓여 있다. 풍요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확장되고, 소비 활황 속에서 문화적 요구가 증대되며 취향이 다각화되는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의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특히 집단보다 개인이, 계급보다 정체성이, 동질성보다 차이가 강조되는 사회문화적 변환 속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요구가 다양하게 촉발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기존 관습과 질서에 저항하고, 그 관행을 비판ㆍ성찰하는 새로운 관계와 존재들이 시민의 일상을 재구축해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흐름과 경향이 구조적으로 촉진되어온 한국 자본주의의 체제 변화 속에서 ‘민속’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기술의 근대적 전개 과정에서 소외된 자리에 배치되었다가 그 근대성이 확장됨에 따라 위축되는 방식으로 존재할까? 해방의 근대성이 자유를 증진하는 사회문화의 장에서 미처 그 자유가 다다르지 않은 곳에 위치하면서 궁극적으로 소진되어야 할 구시대의 잔존물로 표상되어버릴까? 혹은 그 표상에 역사와 전통의 의미와 가치를 윤색시키는 봉건적 관성으로 버티면서 해방의 근대성과 대립하는 문화적 상관물로 압인되는 것일까?
사실 현재까지 대다수 민속학 연구는 마을민속의 현상적 보고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가족ㆍ친족ㆍ마을 단위의 공동체민속, 세시풍속과 일생의례 같은 주기적 집합의례, 신앙ㆍ예술ㆍ문학처럼 구비 전승되어온 기존 민속현상들의 지속과 변화만을 기록해왔을 뿐이다. 물론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문제를 제기한 1980년대 시평이나 민족ㆍ민중문화론에 그 양분을 제공했던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전개된 현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외면해온 것이 사실이다.
포크 모더니티란 무엇인가
‘포크 모더니티’는 이와 같은 상황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이전과 전혀 다르게 생성되는 과거인 ‘현대의 민속’에 대한 응답이자 재정립되어야 할 민속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기획이다. 무엇보다 이 개념 체계 속에서 ‘근대성’은 민속을 배척하는 힘이 아니라 민속을 민속적인 것으로 해체ㆍ재구성하여 새롭게 배치하는 힘으로 사유된다. 따라서 포크 모더니티는 근대성의 역사적 국면마다 생성되는 변화에 조응해 민속적인 것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현하며 실천함으로써 그 경계와 층위를 확장시켜나간다.
요컨대 포크 모더니티는 전통과 포스트/모더니티의 계기들이 동시적으로 다양하게 경험되어온 혼종적 근대의 자장 안에서 민속의 사회문화적 형식과 그 담론의 생성 궤적을 추적하는 방법이며, 이전에는 별개의 형태로 존재하던 상이한 구조ㆍ대상ㆍ실천들을 결합해 생성하는 사회문화적 과정 안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이론이다. 즉, 역사문화적 상황과 사회 변화의 경향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 변화의 상황과 경향 안에서 이뤄지는 민속 연구를 체계적으로 담론화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틀이다. 이러한 포크 모더니티의 개념을 통해, 근대 사회와 문화의 제도ㆍ일상ㆍ기억 공간의 형성 및 확장 과정 속에서 민속의 위상과 성격 변화, 그 생산ㆍ유통ㆍ향유/소비 패턴의 복수적 운동, 이에 따르는 구조적 변경과 저항/재변경 등 다양한 방향성을 품고 발산하거나 다양한 지점으로 수렴되고 있는 현대의 민속현상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결국 민속은 ‘민속-’으로 발산ㆍ접속될 수 있으며, 이는 일종의 ‘떠다니는 기표’로서 유동성과 무규정성까지 포괄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민속현상의 단절적이고 불연속적인 다양한 양태들을 발견함으로써 차이의 공간 또는 분산의 공간으로 민속 담론의 장을 확장시킬 수 있게 된다.
민속/학의 전회
한국 사회 또한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과 포스트/모더니티의 계기들이 동시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압축적이면서 혼종적인 근대를 경험했다. 그리고 이 혼종적 근대의 자장 속에서 민속의 사회문화적 형식과 담론이 주조되어왔다. 현재의 문화적 상황은 그 혼종성이 토착화 과정을 지나 일상의 스타일이나 습속이 된 상태에 있다. 예전에는 별개로 존재하던 것들이 결합해 새로운 구조ㆍ대상ㆍ실천을 생성하는 사회문화적 과정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민속 역시 내용과 형식 차원에서 그 혼종적 양상을 더욱 심화시켜나갈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역사적 특이점과 사회문화적 변화의 경향을 반영한 포크 모더니티의 개념틀이 적실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포크 모더니티가 지시하는 민속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5개 범주와 그에 조응하는 12개 코드를 제안한다. 5개 범주는 ‘존재 조건 및 주체, 의미와 생성, 소통과 매개, 자본과 위기, 변환과 대안’으로, 실제와 그 실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 그리고 변화를 사유하기 위한 분석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각 범주들 안에 ‘시간문화, 판, 다중, 사건, 재현, 정동, 구술기억, 감성-미디어, 문화자본, 인류세(/자본세), 하이브리드, 공동체문화’ 같은 분석 코드를 차례로 배치하였다. 민속적인 것들이 근대적으로 배치된 다양한 양상들을 이 12개의 키워드들로 조목조목 읽어낸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저자는 이러한 포크 모더니티의 언어들을 분석 도구로 활용해 폭넓게 전개되는 민속현상의 특성과 그 사회문화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 도구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야기한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경향성에 열려 있는 한편, 인간관계 자체가 자연의 영역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포크 모더니티의 언어들은 인간중심주의에 경사된 서구의 근대 언표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후변화처럼 앞으로 예기되는 인류의 미래 문제 해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민속/학의 전회(轉回)’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부터 새로운 전망을 찾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