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볼로냐 라가치상 만 9~12세 대상 코믹스 부문 수상작★
색을 되찾아 가는 색다른 그림책
왠지 모르게 심심하고 불만스러운 날, 저 멀리 훌쩍 떠나지는 않아도 가까운 곳 어디든 어슬렁거리고 싶은 날,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내 머릿속에 사는 누군가도 나를 따분해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색이 사라진 아침》은 이 상상력에서 출발한 독자 참여형 그림책이다. 주인공 여자아이는 하루아침에 색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눈을 뜬다. 아이 안에 있던 기억들이 심심해서 바깥으로 나간 탓에 색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독자의 선택에 따라 여러 행동을 하며 기억을 하나둘 다시 만난다.
이 책은 2023년 볼로냐 라가치상 만 9~12세 대상 코믹스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창의력 넘치는 소재와 능동적인 독서를 이끌어 내는 이야기 형식, 평면적이지만 섬세한 그림 기법 등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뒤죽박죽 페이지 속을 모험하며 만드는 나만의 이야기
《색이 사라진 아침》은 페이지를 차례대로 넘기며 읽었다가는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 수 없을 것이다. 주인공 여자아이에게 이입하여 중간중간 등장하는 선택지와 지시를 따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읽어야 한다. 인간이 깊은 잠에 빠지면 흑백 꿈을 꾼다고 하는데, 이를 반영했는지 이야기는 새까만 바탕에 흑백으로 이루어진 꿈에서 시작한다. 꿈을 꾸던 여자아이는 잠에서 깨어나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보인다. 무슨 일인지 살피려고 집 밖으로 나가 봐도 온통 흰색 아니면 검은색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아이는 난생처음 보는, 하지만 자기와 아주 가까운 존재를 만난다. 바로 자신의 기억이다. 신기하게도 기억을 만났더니 아이 눈에는 몇몇 색이 다시 보인다. 기억은 아이가 색깔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아이는 알록달록한 구슬처럼 생긴 기억과 함께 동네에 서린 옛 기억도 떠올리며 남은 기억들을 찾아 떠난다. 하루 동안 펼쳐지는 긴 산책에서, 아이가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할지는 온전히 독자의 결정에 달렸다. 마지막에는 이야기를 한 장으로 축약한 듯한 주사위 게임도 실려 있으니, 친구들과 다 함께 책을 읽은 다음 즐겨 보자.
아침을 거듭하며 풍성해지는 삶
복잡하게 나뉘는 이야기 곳곳에는 함정도 숨어 있다. 여차하면 선택지에 따라 아침으로 돌아오고 만다. 운이 좋다면 몇 번 만에 결말에 다다를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힌트가 없고 애초에 여러 번 읽기를 권장하는 책이기에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올바른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원점으로 돌아와 낙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답과 오답은 없다. 그저 마지막으로 향하는 길이 여러 갈래 있을 뿐이다. 대개는 몇 차례 처음으로 돌아갈 테고, 그때마다 그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색이 사라진 아침》의 구조는 어쩌면 인생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에둘러 가는 길 없이 한번에 종착점에 이른다면 편하겠지만, 다른 길을 모른 채 지나가면 조금 시시하지 않겠는가. 흑백이었던 세상에 색이 하나둘 더해지듯, 도전을 반복할 때마다 더 넓고 다채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아침 해를 거듭 맞이할수록 내 안에는 더 많은 경험치가 쌓인다. 결말 또한 하나가 아닌 점도 비슷한 시사점을 준다. 어떤 선택을 통해 얼마나 많은 길을 돌고 돌아 어떤 결말에 이르렀든, 그것은 독자이자 주인공인 내가 만든 이야기고 오로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