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 불교의 독창성을 말할 때면 ‘선종’ 또는 ‘선불교’가 먼저 거론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도록 번성한 종파가 선종이고, 근대 이후에 서구에 먼저 알려지고 연구 대상이 된 것이 선불교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선종 이전에 천태종이, 선불교에 앞서 천태교학이 먼저 중국적이면서 독창적인 철학을 마련하고 체계화했다고 말해야 마땅하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입증하고자 탐구한 결과물이다.
5세기 즈음에 중국에서 토대가 마련된 천태종에서 인도의 불교 전통을 가장 먼저 중국식으로 철저하게 재가공하려 했다. 천태종은 이 두 사유 세계를 창조적인 대화로 끌어들여 그 둘의 아주 다른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통합체를 개발했다. 천태종은 인도불교에서 파생된 논쟁과 실천의 방법을 써서 동아시아의 지성사에서 가장 엄밀한 이론적 체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이상과 형이상학적 결론은 중국 고유의 철학적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 결과로 포괄적인 사유 체계가 탄생했다. 이 사유 체계는 아주 새롭고 드물게 이해되는 그리고 공교롭게도 천오백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2.
이 책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태불교의 존재론,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들에 대한 해석을 제시한다. 이 이론들은 불교의 일반적인 철학적 개념들, 즉 괴로움, 연기법, 무아, 욕망, 공, 본각(本覺), 불성 따위를 천태종 전통에서 독창적으로 적용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이론들은 『법화경』의 서사적 혁신에 의해 근본적으로 재조정된 것들인데, 천태종 전통에서 그렇게 한 방식에 대한 해석도 이 책이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천태불교는 인도의 전통과 중국 또는 동아시아 문화가 만나서 탄생한 매우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철학이었다. 환경뿐 아니라 언어와 사유방식, 전통과 문화,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중국과 사뭇 달랐던 인도의 불교를 중국식으로 철저하게 토착화한 결과물이 바로 천태불교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천태불교는 이질적인 두 사유 세계 또는 문화 전통을 어떻게 통합해서 새롭게 창조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이 책에서는 난해하게 여겨질 수 있는 천태종의 주요한 관념들과 선례들을 가능한 한 일반인들에게도 생소하지 않은 용어들로 제시하려 했으며, 그 출신이나 배경이 어떠하든 교양 있고 철학적인 독자라면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 또 불교사상의 기본적인 전제들 뒤에 있는 논증의 단계들에 대해서, 그리고 공, 이제(二諦), 방편, 보살승, 불성, 본각 등 혁신적인 대승의 개념들에 의해 어떻게 그 전제들이 지지되고 허물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한다. 비전문적인 언어 표현을 쓰면서도 최대한 명쾌하게, 또 변증법적으로 엄밀하면서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철학적으로 정확하면서도 광범위하게 함축하도록 하려고 했다.
결국, 이 책은 현대의 철학적 반성과 대화에서 핵심이 되는 쟁점들에 공명할 만한 착상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천태종 전통의 독특한 통찰들을 재구성하려는 과감한 시도라 할 수 있다.
3.
오늘날 전 세계가 동시에 맞닥뜨린 상황, 즉 아주 이질적인 문화들이 서로 접촉하면서 두드러지고 있는 철학적 궁지와 위기 상황에서 참조해야 할 역사적 사례로 적합한 것이 바로 천태불교라는 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장이다. 천태불교의 존재론,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천태교학의 핵심을 잘 요약하고 정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어 천태불교의 이론과 원리, 수행론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제시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