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남섬 외딴 마을의 책방지기 루스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며 유머러스하면서도 가슴 울리는 이야기
영화 〈반지의 제왕〉이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장대한 배경이 실사로 구현된 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촬영지가 된 뉴질랜드는 태곳적 대자연의 웅장함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안겼다. 그 이후로 뉴질랜드에는 ‘청정 자연’이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이 때문인지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국가이며 성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먼저 발을 내디디며 도전에 앞장선 뉴질랜드의 분위기는 루스 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덕분에 우리가 뉴질랜드에 방문해야 할 이유는 하나 더 늘었다.
뉴질랜드 남섬 끝의 아주 작은 외딴 마을에는 ‘자그마한 책방 둘Two Wee Bookshops’이라는 아주 작은 서점이 있다.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연히 발견한 숲속 오두막 같은, 동네 사람들에게는 사랑방 같은 이 서점에는 책이나 영화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를 간직한 책방지기가 산다.
루스 쇼가 태어난 1946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가 살기에는 여전히 어두운 시대였다. 많은 딸들이 집안에서 일을 돕거나 한정된 교육만 받을 수 있던 그런 시대였다. 그럼에도 루스의 10대는 모험과 도전의 나날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을 도와야 했지만, 부모님은 루스에게 편견 없이 세상을 알려주었고 바다는 언제나 열려 있는 놀이터였다. 가게 일을 돕고 받은 용돈으로 학교에서 병아리 판매 사업을 하거나 금광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를 따라 직접 금광에서 사금 작업을 하는 등 남다른 경험을 쌓아갔다. 언제나 대가족의 중심이었던 루스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불행하게도 남자의 폭력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 일로 루스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타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좌절이나 포기, 절망이라는 이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루스의 20대는 그야말로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방불케 한다. 해군에 입대하여 간호사 수련을 받으며 일하지만, 그곳에 정박할 생각이 없던 루스는 미련 없이 직위를 버리고 항해를 떠난다. 망망대해에서 만난 사람들은 루스에게 또 다른 삶의 모습을 가르쳐준다. 루스의 좌표 위에는 바다 위에서 만난 해적, 인육을 먹는다는 부족, 돈을 벌기 위해 바다에 모인 사람들로 얼기설기 얽혀 있다. 무엇보다 4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지게 될 첫사랑 랜스와의 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책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자그마한 책방 둘’은 그저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니다. 사람들은 책을 찾기 위해 이곳에 들어서지만 나갈 때는 ‘위로’와 ‘기쁨’이라는 선물을 안고 간다. 실타래처럼 얽힌 삶을 풀어갈 때마다 루스가 찾아낸 것은 책이라는 의지처였다. 일흔이라는 황혼에 책방을 연 것은 루스에게 있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삶이 가르쳐준 지혜로 다른 이의 상처를 보듬는다. 꼬마 숙녀의 이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향수병에 시달리는 여행자의 마음을 달래주는 건 루스의 독보적인 장기다. 2019년 9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이어진, 참혹했던 호주 산불 참사로 트라우마를 겪던 소방관 역시 루스의 책방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루스가 건네는 건 그저 책 한 권이지만, 그 책은 언제나 희망과 기대라는 꽃을 피운다.
“나는 사람마다 맞는 책이 있다고 확신해요. 그 완벽한 책을 나의 이 작은 책방에서 얼마나 자주 찾아내는지 정말 놀라울 따름이에요.”
첫 에세이로 전 세계 10여 개 나라 독자들을 만나게 된 루스는 한국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삶이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특별한 글을 보냈다.
책이라는 인류 보편의 유산을 매개로 사람들을 이어주는 루스의 진솔한 기록 『세상 끝 책방 이야기』는 2025년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더없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