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이냐, 인간의 자유의지냐를 두고 벌어진 칼뱅파와 아르미니우스파의 첨예한 대립은 하나의 학문적, 신학적 논쟁임에도 국가의 기반을 뒤흔들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오며 포스트 종교개혁의 물결을 일으켰다. 상대를 인정할 경우, 자신들이 지지하는 교리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것이기에 각 진영은 한 치도 물러날 수 없었다. 독일에서 일어난 최초의 종교개혁이 기존의 가톨릭 세력과 개혁교회 간의 대립이었다면, 북유럽에서 일어난 이 포스트 종교개혁은 개혁교회의 핵심 교리인 예정론과 은혜론을 둘러싼 내부의 시각차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후자의 대립은 아르미니우스 사후 40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면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는 기독교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정통 칼뱅의 노선을 따르는 장로교가 기독교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그럼으로써 아르미니우스의 신학 사상은 소수 견해로 간주되어 온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볼 때 아르미니우스의 신학 사상은 감리교회, 루터교회, 성공회교회, 성결교회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등 결코 칼뱅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 주었다. 그런 측면에서 아르미니우스 전집의 국내 출간은 많이 뒤늦은 감이 있다. 전집의 출간으로 인해 이제 우리도 칼뱅의 강력한 대항마로서 인간 자유의지의 자율성과 가치를 강조한 아르미니우스 사상의 전모를 처음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성서와 신앙에 대해 기존의 고착화된 시각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접근을 하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념비적인 작업을 담당한 연세대 철학과의 김혜련 교수는 “한국 교계의 풍토에서 ‘아르미니우스’라는 이름은 거의 ‘펠라기우스’와 동일시되는 형편”이라고 지적하면서 “그처럼 일면적인 접근이 공정한 것인지 재고할 필요”가 있으며, “교회사에 등장하는 사건이나 교의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문제도 단선율이 아니라 다성음악을 대하듯 접근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이 책은 총 세 권으로 출간될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 전집』의 2권에 해당한다. 1권이 정통 칼뱅주의자들의 거센 공격에 맞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항변했던 아르미니우스의 강연, 공개 토론, 논박, 변론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2권은 아르미니우스가 1603년에 레이던대학에 부임한 후 개인 서재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비공개 토론, 신학자로서 그가 견지하는 기본 철학과 테제를 보여 주는 박사 학위 논문, 독일 팔츠 대사에게 보낸 공식 서한문과 친구 아위텐보하르트에게 보낸 개인 서한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권의 1부 「비공개 토론」에서는 신학의 정의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스도의 삼중직, 그리스도의 의의 본질, 칭의의 구조와 효력 발생 과정 등 신학의 기초 개념과 세부 주제에 대해 차분하게 논증적으로 접근한다. 2부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의 박사 학위 논문」에는 로마서 7장에 대한 석의, 교회사에서 이단적인 것으로 주장되었던 특정 견해에 대한 기술, 고대 교부들의 판단,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변에 의지하여 펠라기우스주의의 구조에 대한 분석과 재평가가 담겨 있다. 특히 칭의(稱義)와 중생에 대한 도식적 해석을 과감하게 넘어서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아르미니우스는 로마서 7장과 그 전후 문맥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면 중생한 사람의 행위 패턴을 전도시킬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신자들의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바울이 로마서에서 구성한 논증을 거의 심리철학적 관점에서 해부하는데, 그 결과 그는 바울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은혜 아래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의 인격을 자기 자신에게 전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3부 「서한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성에 대한 아르미니우스의 정밀한 논증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것에 비해 성자의 신성성에 대해서는 미약하다는 비판을 논증적으로 투명하게 해소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포스트 종교개혁의 한복판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쟁점과는 무관하게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아르미니우스가 중요하게 여긴 주제가 무엇인지, 신학의 초석을 이루는 개념이 어떤 것들인지 등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또 다른 기독교 거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제임스 니콜스와 윌리엄 니콜스 부자가 편집하고 번역하여 1875년에 세 권으로 완결 출간한 The Works of James Arminius(흔히 ‘런던 판본’으로 불린다)의 2권을 옮긴 것이다. 아르미니우스의 전집은 1629년에 『신학대전』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나왔지만, 세간에 그 존재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세기에 니콜스 부자가 다른 자료들과 함께 다시 엮고 영어로 번역하여 출간함으로써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런던 판본의 체제는 상당히 어지럽고 복잡하여 한국어판에서는 가독성을 높이고 텍스트 이해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체제를 다시 정비하고 본문 중간중간에는 소제목을 다는 등 전면적으로 새롭게 편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