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가 바라본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그리고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하이데거는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를 통해, 신칸트학파를 비롯해 주로 인식이론적 관점으로만 읽혀 오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했다. 저자에 따르면, 하이데거가 이 책에서 시도한 것은 자신의 근본 문제의식(“존재물음”)과 관련하여, 칸트 철학의 의도를 형이상학 정초라는 맥락에서 재조명하려는 작업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하이데거는 그 목적에 따라 먼저 3가지 물음을 던졌다고 정리한다. 그것은 ① ‘칸트가 당대에 마주했던 형이상학 개념이란 어떤 것인가?’ ② ‘칸트가 형이상학을 정초하면서 무엇을 단초로 삼았는가?’ ③ ‘왜 그러한 정초가 순수이성비판인가?’이다. 결국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면서,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을 하이데거식 존재론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한 결실이 바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하이데거가 볼 때, “칸트가 당대에 마주했던 형이상학 개념”이란 바로 18세기 독일 학교철학에서 통용되던 도식적이고 이론 중심적인 형이상학이었다. 칸트는 이러한 형이상학이 “어떠한 구속력 있는 통찰도 내주지 못하는 실정”을 인식했고, 이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일신하고자 했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해석에 따르면, “칸트의 전 철학적 기획은 이러한 형이상학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일신하는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칸트가 이러한 작업의 단초로 삼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존재론적 인식의 기초 위에서 초감성적 존재자를 비롯한 모든 존재자의 인식 가능성 문제가 다루어진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칸트가 이 작업을 “순수이성비판”이라 부른 이유는, 인간의 인식 능력(순수이성)의 가능 조건과 한계를 먼저 비판적으로 살핌으로써 형이상학을 정초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독해는 칸트를 지나치게 ‘존재론적’으로 재구성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하이데거 또한 자신이 전통적 칸트 해석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 표면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텍스트에 숨어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까지 읽어 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철학자를 해석한다는 것은 곧 그와 대결을 펼친다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는 곧 칸트와 하이데거가 벌인 치열한 대결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종종 스포츠 시합에서 많이 보듯이, 위대한 선수들의 시합에는 그것을 중계해 주는 캐스터와 해설자가 필요한 법이다. 그들이 없다면 읽어 낼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하이데거의 칸트 해석을 단순히 따라가거나 옹호하기만 하는 대신, 하이데거와 칸트 철학 사이의 간극이나 긴장 또한 세심하게 짚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하이데거와 칸트가 벌이는 철학함의 대결에 있어 적절한 캐스터, 해설자가 되어 줄 것이다. 이제 하이데거와 칸트의 위대한 시합을 방청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