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는 무엇을 꿈꾸는가?
앙드레 브르통과 초현실주의적 글쓰기
초현실주의 운동은 대략 191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말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크게 유행한 문학․예술 운동이다. 그 주창자인 앙드레 브르통은 인간의 심층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천착하면서 전통적인 관습과 상식적인 도덕의 벽을 부수고 욕망의 잠재적인 폭발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르통은 1924년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문」에서 초현실주의적 글쓰기란 “이성에 의한 어떤 감시도 받지 않고, 심미적이거나 도덕적인 모든 관심을 벗어난 곳에서 이루어지는 사유의 받아쓰기”라고 규정한다. 그는 인위적으로 만든 문학 텍스트의 언어는 생명력을 갖지 못하고 욕망의 자연스러운 힘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반수면 상태에서 이성의 통제에 가려진 무의식과 욕망의 전언을 충실히 받아쓰고자 했다. 브르통은 필리프 수포와 함께 이러한 자동기술적 글쓰기를 시도해 『자기장』이라는 최초의 초현실주의적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에서는 단지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심층이나 세계의 신비와 일치되고 소통하는 방법으로서 글쓰기를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1920년대에는 이러한 브르통의 주장에 공감한 많은 이들이 자동기술을 비롯해 꿈의 분석, 내면 탐구, 언어 유희 등 초현실주의 기법에 대한 탐구에 몰두한다.
이후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의 원칙을 재확인한다는 명분으로 「초현실주의 제2선언문」(1930)을 발표한다. 여기서는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 과거와 미래, 소통될 수 있는 것과 소통될 수 없는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등 모든 대립된 요소들을 통합하고 초현실적 경이의 세계를 발견하려는 야심이 표출된다. 사랑에 대한 믿음을 혁명적 태도와 같은 것으로 해석하면서 사랑을 이상화하고, 사드를 인간 정신의 해방자이자 혁명적 작가로 부각시켰다는 점 또한 특징적이다. 브르통은 사회혁명에도 분명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초현실주의 혁명’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랭보의 명제와 “세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자들의 혁명은 집단적 계급투쟁보다는 일상적 삶에 예속되기를 거부하는 개인의 자유와 반항정신 쪽에 더 밀착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초현실주의와 문학의 혁명』은 20세기에 사회 전반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 초현실주의 문학과 예술에 관해 심도 있고 세밀하게 논의하고 성찰해나간다. 이 책을 통해 프랑스 문학 및 이론에 관심 있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그 누구든 초현실주의의 방대하고 경이로운 문학 세계를 풍요롭게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불문학자 오생근의 초현실주의 깊이 읽기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앙드레 브르통과 초현실주의’에서는 초현실주의의 주창자인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 혁명의 의미에서 그 이론과 논리, 문제의식까지 찬찬히 고찰해본다. 『열애』 『나자』 「자유로운 결합」 등 브르통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분석하면서 자동기술, 객관적 우연과 같은 방법들을 설명해나가는 한편, 작품 속에서 초현실주의적 상상력과 자유의지가 어떻게 표출되고 있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르베르디의 이미지론을 중심으로, 두 개의 상이한 현실체를 자유롭게 결합하여 생성하는 초현실주의적 이미지에 관해서도 상세히 논의하며, 나아가 초현실주의와 상호보완적 관계였던 다다 운동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2부 ‘초현실주의 시와 소설의 다양성’에서는 초현실주의의 주요 작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심층 탐구한다. 예컨대 엘뤼아르는 자동기술 같은 글쓰기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음에도 인간 내면의 목소리를 찾고자 하는 초현실주의적 글쓰기의 목표에 가장 부합한다고 평가된다. 7~8장에서는 다다 시절부터 초현실주의를 거쳐 참여 시인으로 나아가는 엘뤼아르의 문학적 여정과 그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 밖에도 콜라주 기법과 같은 언어 실험을 통해 도시를 낯설고 경이로운 초현실적 이미지로 제시한 아라공, 작중인물들이 끊임없이 배회하고 이동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초현실적, 상상적 변형을 이루는 도시 공간을 자유분방하게 그려낸 데스노스, 전통적인 소설과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모든 모순과 대립을 종합한다는 이상을 탁월하게 구현한 그라크,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레몽 루셀의 작품들에 대한 해석을 선보인다.
제3부 ‘초현실주의의 안과 밖’에서는 초현실주의가 시대적 외연을 어떻게 넓혀갔고, 다른 문학․예술 운동 진영과 대결하며 어떻게 논의를 이끌어왔는가를 살펴본다. 달리, 마그리트, 에롤드 등의 작화법에 초현실주의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자코메티와 호안 미로 같은 예술가들과 초현실주의의 접점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또한 에메 세제르와 네그리튀드 운동, 그리고 브르통과 바타유의 치열했던 논쟁의 쟁점들을 정리하고 사드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들을 고찰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