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교 추천 고교 필독서 100선
희랍과 라틴 고전에서 얻은 인문 정신의 정수!
토머스 모어의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작품
《유토피아》, 유럽 근대의 문을 열다
이 책은 1516년 영국의 뛰어난 지식인이자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가 출판한 《유토피아》의 국내 최초 라틴어 원전 완역본이다. 《유토피아》에는 본문에 해당하는 1, 2권과 더불어 에라스뮈스, 페터 힐레스, 제롬 부스라이덴 등 당대 인문주의자들이 이 작품에 헌정한 추천사 혹은 헌사가 서문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서문들은 《유토피아》의 개정 작업마다 계속해서 덧붙여졌으며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의 초고를 기초로 에라스뮈스 등 당대 인문주의자들이 함께 편집하고 수정해 만들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당대 인문주의 공동의 산물이자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살아 있는 동안 5종이 출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판은 1516년 12월 벨기에 루뱅에서 출판되었다. 그해 9월 저자가 원고를 에라스뮈스에게 보냈고,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였던 에라스뮈스가 초고를 대폭 수정해 초판을 펴냈다. ‘유토피아’라는 이름 또한 에라스뮈스가 원고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토머스 모어는 라틴어 식으로 ‘어디에도 없다’라는 뜻을 지닌 ‘Nusquama’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에라스뮈스가 이를 희랍어 식으로 변경했다.
‘유토피아’를 ‘Utopia’라고 쓰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가 되지만 ‘Eu-topia’라고 적으면 ‘행복도시’가 된다. 플라톤과 키케로의 고대 세계를 토대로 근대 세계를 열고자 투쟁했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상상한 ‘행복도시’의 모습이 이 책에 그려져 있다.
《유토피아》는 유럽의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서구 근대사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라는 상반된 두 책과 함께 시작되었다(뉴욕 타임스)”라고 평할 정도로 유럽 역사상 매우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500년 전 인문주의자들의 질문,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온갖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한 사회에서
그들이 꿈꾼 완벽한 이상향 ‘유토피아’
《유토피아》가 출간된 시기는 유럽 중세 말의 위기가 지나고 근대적 발전이 태동하던 때다. 14, 15세기 유럽은 전쟁, 질병, 기근 등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흑사병과 기근으로 인구가 1/3가량 줄어든 지역도 있었다. 한편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으로 양국 모두 큰 피해를 입었고 백년전쟁의 종식 후에도 영국에서는 장미전쟁이라는 귀족들 간의 내전으로 처참한 학살이 벌어졌다.
1485년 장미전쟁이 끝나고 헨리 7세의 튜더 왕조 시대가 도래하면서 근대가 시작되었다. 이후 영국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19세기에 이르러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라는 세계 최강대국으로 도약했다. 토머스 모어가 당대 인문주의자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유토피아》를 집필한 시기는 바로 영국의 그와 같은 눈부신 발전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발전했지만 안타깝게도 성장과 발전의 성과는 소수 귀족이 차지하고 가난한 농민들의 처지는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가혹했다. 경제발전과 직물업의 성장으로 양모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작농들은 대대로 농사를 짓던 땅에서 쫓겨나고 그곳에 목장이 들어섰다. 농촌 사회가 붕괴하고 토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해 절도 등 생계형 범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났다.
당대의 최고 지식인이며 정치가, 행정가이기도 했던 토머스 모어가 시대의 문제를 예리하게 짚어내고 그 대안을 찾으려 했던 시도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유토피아》다. 1515년 5월 토머스 모어는 영국 사신단의 일원으로 플랑드르 지역 브루게를 방문했고, 협상 기간 중 여가를 이용해 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해 런던으로 돌아와 완성했다.
《유토피아》 1권의 내용은 앞에서 언급한 당시의 역사적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국왕은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에 관심을 두고 있고, 탐욕스러운 귀족들은 재산을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 가난한 농민들은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범죄자로 전락한다. 1권은 저자인 모어가 국왕의 명령을 받아 플랑드르에 가는 내용으로 시작되는데 실제로 모어가 경험한 그대로다. 모어는 이후 작품에서 펼쳐질 공상 세계를 그리기에 앞서 사실 그대로의 현실을 생생히 묘사해 독자가 앞으로 2권에서 그려질 이상적인 대안 국가, 상상의 세계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자연히 깨닫게 한다. 또한 모어가 제시하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독자는 ‘이상 사회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원적 질문을 품게 된다.
날카로운 현실 비판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놀랍도록 급진적인 상상!
유토피아 문학과 디스토피아 문학의 탄생
토머스 모어는 1515년 헨리 8세에게 외교 임무를 부여받고 플랑드르에 파견된 기간 동안 유토피아를 썼다. 본래 그의 구상은 당시 지적으로 교류하던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에 대응하는 ‘지혜에 관한 논설’을 쓰는 것이었지만 계획을 바꿔 당시 유행하던 여행기 형식의 소설을 썼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상 사회를 그린 2권이고, 이후 1권을 추가해 현재의 형태로 출판했다.
1권은 플라톤식 대화에 풍자 요소가 가미된 극적 구성 형식을 취하고 있고, 2권은 먼 곳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이 그곳을 소개하는 여행기 형식이다. 1권은 토머스 모어, 페터 힐레스, 가상의 인물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대화를 주도하는 이는 휘틀로다이우스다.
휘틀로다이우스는 아메리카 항해에 동행한 포르투갈 출신의 방랑 철학자다. 구대륙 문화와는 다른 시선을 지닌 허구적 인물로 지식인의 정치 참여, 영국의 범죄와 사형 제도, 군주의 호전성과 탐욕 등 당대 영국 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이에 대해 실존 인물인 모어와 힐레스가 유보적 태도를 보이거나 반대의견을 제시한다.
2권은 대화 대신 화자 휘틀로다이우스가 가상의 섬나라 유토피아에 관해 설명하는 독백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만 휘틀로다이우스의 긴 이야기가 끝난 후 작중 인물로서 모어의 짧은 논평이 이어진다.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노동의 대가를 공평하게 분배받는 나라, 교육과 독서를 중시하는 문화를 바탕으로 정의와 평등,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제도가 국가의 토대가 되고, 약자를 배려하며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완벽한 이상향 유토피아의 모습이 그려진다.
《유토피아》는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볼테르의 《캉디드》 등으로 그 계보가 이어지는 유토피아 문학의 시초가 되었고 오늘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유토피아 소설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1권에서는 당대 현실을 생생히 묘사하며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2권에서는 그에 대한 대안 사회를 제시하는 구성으로 대화와 독백, 사실적 역사성과 허구성, 현실주의적 비판과 급진주의적인 상상이 맞물려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이 작품의 독특한 특징은 반유토피아 문학, 즉 디스토피아 문학의 탄생으로도 이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