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슬픔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
“그래도 우리는 고통과 함께 머무는 법을 서서히 배워나간다”
저자는 트라우마와 애도에 심리치료의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그간의 임상 경험, 연구 결과, 종교 성인들의 지혜, 서양 심리학 등을 통해 사별의 슬픔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밝힌다. 그는 총 50개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상실의 충돌, 죄책감과 수치심, 슬픔에 순응한다는 것, 슬픔과 트라우마를 자각하지 못했을 때 치르는 대가, 대물림되는 슬픔, 일상에서의 애도 의식, 자기 돌봄의 중요성 같은 주제를 다룬다. 상실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몸과 마음의 치유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또한 연민이 결핍되고 행복에 중독되어 상실의 슬픔을 질병 취급하는 사회 문화 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애도자를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 숙고한다.
아이나 부모, 배우자나 연인, 반려동물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이다. 그래도 상실 이후의 감정, 고통의 크기와 결, 그 의미와 깊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점차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인간이 죽음과 애도의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은 매우 깊고 복잡하다. 깊은 절망, 동요, 조바심, 무감각, 쾌감 상실, 두려움, 불안감, 과도한 근심, 죄책감과 수치심, 외로움 등 고통스러운 감정은 크나큰 상실을 애도하는 이들에게 공통으로 찾아드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애도 반응은 극적인 행동으로도 나타나는데, 이는 주로 애도의 과정에서 느껴야 하는 감정을 거부할 때 나타난다. 저자는 사별 후 약물 남용, 도박, 과소비, 문란한 성생활,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 무모한 행동, 자해 행위 등을 경험한 내담자의 사례를 통해 애도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일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상실의 감정을 어떻게 마주하고 위로해야 할까?
슬퍼할 권리, 기억할 용기, 맹렬한 연민의 필요
“상실의 슬픔을 오롯이 받아들인다는 건, 상실의 경험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짐으로써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아주 신비로운 모순을 수용한다는 의미이다. 슬픔은 우리를 텅 비우지만 우리 안에는 감정이 그득해진다. 두려움은 우리를 마비시키지만 우리는 타인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애도하고 그들이 존재하기를 기원한다. 예전의 우리는 사라지고 좀더 온전한 우리가 된다. 가장 깜깜한 밤을 알기에 사랑하는 이들의 빛으로 세상을 밝힐 수 있다. 우리는 모순된 존재들이다. 우리는 견딜 수 없는 일을 견뎌내고 있다.”-본문 13쪽
저자는 딸의 때 이른 죽음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인간의 자연적 본능과 함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온전히 겪어내려는 욕구도 우리 안에 있음을 배웠다. 고통을 깊숙이 거듭 느낀 후에야 비로소 치유의 과정이 시작된다. 저자의 설명대로 이 치유는 무척이나 신비로운 과정이다. 고통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지만, 바로 그 변함없음에서 역설적으로 고통이 치유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견딜 수 없음을 견디기’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치유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다면 치유는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저자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온전히 겪는 과정에서 고통의 불가피성과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면 자신과 다른 모든 고통받는 인간들에 대한 연민이 새로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치유되려면 고통과 슬픔을 느낄 줄 알아야 하고, 떠난 이를 기억할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하며, 그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공감해줄 사람에게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저자는 크나큰 고통을 혼자서 감당할 수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몇 주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고통이 멎지 않는 한 그 감정을 공감과 연민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곁에 꼭 있어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