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시설의 안전은 우리나라에서 단순한 공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원자력시설 특히 원자력발전소는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한 인공 설비의 하나이다. 이처렴 복잡한 대형 설비의 안전성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안전은공학적으로 정량화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원자력 안전에 대한 논의는 논리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원자력시설이 얼마나 안전하면 우리나라 국민이 원자력시설에 대해 안심할까? 원자력시설이 얼마나 안전한 것이 충분히 안전한 것인가(How safe is safe enough?)라는 질문은 원자력계가 오랜 기간 답을 찾아온 숙제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줄 방법이 이 책의 주제인 원자력 리스크 평가와 관리(Risk Assessment and Management)’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리스크 평가’ 는 원자력시설에서 잠재적으로 발생 가능한 피해와 손실을 총합적으로, 그리고 정량적으로 평가해주는 방법이며, ‘리스크 관리’ 는 리스크 평가 결과를 활용해 대상 원자력시설의 설계, 운영상의 개선점을 찾아 관련 리스크를 저감하는 체계이다.
원자력시설의 리스크에 관한 관심은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원자력 분야에서 실제 공학적인 리스크 평가가 시작된 것은 미국 규제 기관이 지원한 원자로안전연구(RSS: Reactor Safety Study)의 결과로 1975년도에 WASH-1400 보고서가 나오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원자력시설을 이용하는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원자력시설의 리스크 평가와 관리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시설의 리스크 평가가 법적 요건이 되어 있다.원자력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리스크 평가 방법은 확률론적안전성평가(Probabilistic Safety Assesment: PSA)라고 불리는 방법이다. PSA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원자력시설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사고경위를 파악하고 그 사고경위의 발생 확률과 그 영향을 평가함으로써 어떤 원자력시설의 사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미래의 잠재적 손실과 피해, 즉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기술이다.
저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PSA 분야의 연구를 하였고, OECD/NEA와 IAEA 등 여러 국제기구와 국제 학회에서 PSA 분야와 관련된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국내외의 PSA 훈련과정 혹은 여러 대학에서 PSA 분야 강의도 해왔다. 이를 통해 느낀 점은 원자력 리스크 분야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이 분야의 보고서를 읽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우선 원자력시설의 리스크 평가와 관리를 위해서는 원자력시설의 설계 및 운영 특성, 인적 요인 그리고 확률과 통계 둥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원자력 리스크 분야의 기술 기준도 원자력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기술 기준과도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기술기준은 기준이 되는 정량적 값 둥을 제공하는 등 그 내용이 명확하지만, 대표적인 PSA 기술기준의 일종인 미국의 ASME/ANS PRA Standard는 특정 수치를 제공하지 않으며, ‘~해야만 한다’ 와 같이 매우 정성적인 기준을 제공할 뿐이다. 따라서 원자력 리스크 분야의 보고서는 실제 원자력 리스크 평가 및 관리 업무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국내에는 PSA에 대한 국문 전공 서적이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하여 원자력 리스크 분야의 보고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이를 위해 필요한 원자력 리스크 평가와 관리 관련 기본 개념과 기술을 소개했다. 그러나 현대와 같이 인터넷을 통해 많은 관련 자료를 얻을 수 있는, 특히 원자력 안전과 같이 일반에게 공개된 자료가 많은 상황에서 단순히 원자력 리스크 분야의 기술적인 내용만을 정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기술적인 내용의 소개만이 아니라 어떤 기술이 도입된 배경과 실제 현장에 사용되는 방식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구성했다. 즉, 이 책은 원자력 리스크 평가 및 관리 분야에 대한 단순한 기술 소개가 아니라 이 분야의 중요한 개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작성했다. 예를 들어 리스크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항 분포나 푸아송 분포에 대한 단순한 수학적 설명보다는 이런 분포가 리스크 분야에서 어떤 현상을 모델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등에 관해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