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를 시라고 바꿔 쓰고 나면
글로 목탁 소리 낼 수 있어 좋다
글로 찬성 소리 낼 수 있어 좋다
글로 그림 그릴 수 있어 좋고
글로 영화 찍을 수 있어 좋다
수작 한 편 쓴 것 같아 다시 살펴보면
정답 없는 수학 문제를 풀다
정답을 못 찾은 것 같아서 좋다
점 하나 찍은 마침표에서
11차원 우주 물리학 이끌어내는 것 같아 좋고
행간 한 줄로 시작되는
천국의 계단 기하학 연결한 것 같아 좋다
부족한 내가 시 한 편 쓰고 나면
부족한 내가 별 하나 그리고 나면
시가 내게
안부를 묻는 것 같아 좋고
서툰 사랑에
서툴러도 된다고 고백해 주는 것 같아 좋다
시 한 편 쓰다 보면
온전히 나를 이끌어주려 하신다
- 「시」 전문
詩를 시라고 바꿔 쓰고 나면 글로 목탁 소리를 낼 수가 있고, 詩를 시라고 바꿔 쓰고 나면 글로 찬성 소리를 낼 수가 있다. “글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어 좋고” “글로 영화를 찍을 수가 있어 좋다”. 좋은 시 한 편 쓰고 나면 “정답 없는 수학 문제를 풀다/ 정답을 못 찾은 것 같아서 좋”고, “점 하나 찍은 마침표에서/ 11차원 우주 물리학을 이끌어내는 것 같아” 좋다. “행간 한 줄로 시작되는/ 천국의 계단 기하학 연결한 것 같아서” 좋고, “부족한 내가 시 한 편 쓰고 나면/ 부족한 내가 별 하나 그리고 나면// 시가 내게/ 안부를 묻는 것 같아서 좋”다. “서툰 사랑에/ 서툴러도 된다고 고백해 주는 것 같아서 좋”고, “시 한 편 쓰다 보면/ 온전히 나를 이끌어주려 하신다.”
시는 빛이고, 빛은 빛과 빛을 결합시켜 “천지개벽”의 “큰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DNA가 있어서 천명이 있어서/ 빛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그리고 빛이 있기 때문에, “감자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난다. “초록 풀이나 미역을 뜯었다는” 공룡도 그렇고, “폐지 한가득 손수레를 끄는” 이 땅의 할머니들도 그렇다. 빛과 빛의 결합에 의하여 사람이 탄생하고, “아버님 어머님 우리 고운 님”이 탄생한다. 빛의 발자국은 시의 발자국이고, 시의 발자국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빛님의 발자국이다. 빛은 “환장하도록 고운 저녁노을”이며, “감탄사”이고, 빛은 천지개벽의 대서사시이며, 대우주의 원동력이다.
시와 시인이 하나가 되고, 시와 빛이 하나가 된다. 시인은 빛이요, 파동이며, 생명인 것이다. 따라서 정동재 시인의 ‘양자역학의 시학’은 인위적이 아닌 자연 그 자체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양자역학은 삶의 철학이자 긍정의 철학이며, 따라서 이 삶의 철학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비판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정동재 시인의 ‘양자역학의 시학’이자 그 장엄하고 웅장한 위용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쟁기질 중인 저 소는 순백의 화합물이다
등짐을 벗고 화합물에서 벗어난 시간
밤별 외양간에 들이고 앉아
또다시 뿔난 황소의 전진 되새김질이다
염소 질소 수소 산소도 일심동체가 되고 싶었던 게다
사실 소였던 게다
굴레 쓴 소처럼 H2O, CO2, C2H5OH, CH4가 되어
들녘 가로지르는 뿔난 소가 되고 싶었던 게다
미세먼지 가득한 이 도시 저 산야에서
대기를 가르며 올라 구름으로 쟁기 끌었던 게다
하늘 이야기 눈비로 써 내리며
사람 사는 이야기 늘 같이하고 싶었던 게다
- 「들녘 뿔난 황소처럼」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