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벼랑 끝에 몰린 한국경제가 지금의 위기를 탈출하려면, 바로 이것부터!
- 모든 정권에서 ‘폭탄 돌리기’하듯 방치해 온 5가지 장기 미해결 과제와 그 해법
늘 경제는 어려웠다지만, 요즘 한국경제의 위기는 차원이 다르고 체감도 다르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한민국 주력 기업들의 수출에 빨간불이 들어왔고, 텅 빈 테이블을 보며 한숨 짓는 자영업자들은 야간에 쿠팡 알바를 뛰면서 근근이 버티고 있다. 불안한 국민은 국민들대로 지갑을 편히 열지 못한다. 수출, 내수, 미래 전망 모두 비상이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은행은 얼마 전 우리 경제성장률이 2030년대 0퍼센트대, 2040년대에는 마이너스로 떨어진다고 예측하였다. 성장이 둔화되는 정도가 아니라 경제가 쪼그라드는 단계가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 자체가 빠르게 떨어져 저성장이 고착화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며, 그보다 더 심각한 건 그런데도 이렇다 할 대응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비록 지금은 어려워도 곧 반전’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게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핵심이다.
세계은행이 한국을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멋지게 선진국으로 도약한 ‘성장의 슈퍼스타’라고 극찬할 정도로, 우리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발전을 해 왔다. 빈곤국에서 중진국으로의 첫 번째 도약에 이어, 연이어 선진국으로 두 번째 도약을 해냈다는 것이다. ‘한번 해 보자’는 의욕에 차서 온 국민이 경제를 일으켰던 저력이 옛 추억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절망과 무력감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성취에 만족하며, 곱게 늙어가기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격변하는 세계 경제의 파고에 맞서 세 번째 도약에 도전할 것인가?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질문 앞에 실천으로 답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이 책 『콜드 케이스』를 쓴,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ㆍ복지정책 연구부장과 KDl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지낸 윤희숙은 “지금 새판을 짜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우리에겐 정말 시간이 없다”라고 호소하면서 “두 번 한 걸 세 번 못할 이유가 있냐, 희망을 접기에는 이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의 저자 윤희숙은 “한국경제를 혁신 수용적 사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그간 70여 년간 모든 정권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 의제로 삼기를 꺼려 왔던, 마치 ‘폭탄 돌리기’하듯 미루고 또 미루고 끝내 방치해 온 장기 미해결 과제들부터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라고 제안한다. 일명 ‘콜드 케이스(Cold Case)’들이다. 원래 이 단어는 장기 미제로 남은 범죄 사건을 일컫는 말인데, 우리 경제 및 사회정책 역시도 그런 해묵은 과제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5가지 장기 미해결 과제는 바로 경제 운영체제, 노동시장, 국민연금, 의료시스템, 그리고 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다. 이것들을 계속 방치한다면, 탈피를 미루어 온 갑각류처럼 제 몸을 보호해주던 껍질이 오히려 성장을 옥죄는 감옥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 5개의 콜드 케이스의 진범을 잡으러 가야 할 때가 되었다.
2. 혁신 수용적 사회로의 탈바꿈, ‘국가모델 2.0 시대’를 열어라
- ‘경제 운영체제’와 ‘노동시장’을 공정하되 역동적으로 바꿔나갈 새판짜기 대안들
퀴즈 하나. ‘단두대’처럼 철폐하겠다, ‘전봇대’를 뽑듯이 없애겠다, ‘손톱 밑 가시’ 혹은 ‘암 덩어리’처럼 뽑아내겠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온갖 화려한 수사와 단호한 결기로 선포했으나, 지금껏 그 어떤 변화도 없는 영역은 무엇일까? 맞다. 바로 ‘규제’다. 물론 모든 규제가 악은 아니다. 딥페이크처럼 사회적 해악을 분명히 끼치는 것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막아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 자체를 막고 죄악시하는 규제들이 우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다.
간단한 사례 하나만 들어도 그 실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의 ‘투지아’나 인도의 ‘오요 룸스’는 근래 약진하고 있는 공유숙박업의 글로벌 유니콘 기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관광진흥법 등의 규제로 사업이 제한된다. 기존 숙박업소를 보호한다는 취지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혁신기업이 태어나 성장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토양임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2023년 현재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 분포를 보면, 미국 59개, 중국 12개, 인도 6개에 비해 우리 기업은 토스 한 곳뿐이다.
민간경제가 잘 성장하도록 지원자 역할을 하는 대신 공무원들은 오랫동안 각종 ‘규제’를 자신들이 권력 행사를 할 수 있는 자산으로 여겨왔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규제의 빌런’이 또 있다. 역동적인 혁신경제로 탈바꿈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국회의원이다. 규제개혁 노력으로 몇 개를 없앤다 해도 그 몇 배의 규제가 국회에서 신설되는 구조다. 심지어 품질마저 엉망이다. 아니, 법 만드는 국회의원이 법 만드는 게 무슨 죄냐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자. 4년간 일본은 의원 1인당 법안 발의 건수가 0.6개, 영국은 1개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79개이고, 의원 1인당 법안 심의 건수도 82개로 영국의 68배, 일본의 88배에 이른다. 특별히 우리 국회의원만 열심히 일하는 건가? 단지 마구 만들고 마구 통과시키는 구조일 뿐이다. 그런데도 무조건 법안 발의를 많이 하면 열심히 일하는 의원이라고 평가하는 언론들도 아직 많다.
규제에 묶여 있는 경제 운영체제뿐만 아니라 또 하나 혁신 수용적으로 변모해야 할 영역이 ‘노동시장’이다. 한국은 대기업과 공공기관과 같이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 둘 다 높은 1차 노동시장과 그 둘 모두 불안정한 2차 노동시장으로 나뉘어 있다. 대략 15 대 85의 비중이다. 한쪽은 경직되어 있고, 또 다른 한쪽은 노동조합 조직률이 거의 0% 가깝고, 유연해도 너무 유연하다. 특히 1차와 2차 노동시장 간의 장벽이 너무 높아, 2차 노동시장에 한 번 진입하면 1차 노동시장으로 옮겨가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 장벽 사이의 틈을 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자체를 현실에 맞지 않게 틀어막으면, 온갖 편법만 난무하고 취업취약계층의 취업기회를 더욱 빼앗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일본과 독일처럼 비정규직 운용을 지금보다 좀더 탄력적으로 운영하되 고용 기간 외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엄격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직 이후 계속고용,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혁 등 노동시장을 보다 혁신 수용적으로 만들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3. 나이 들어 아프고 일 못해도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 ‘의료시스템’과 ‘국민연금’ 개혁을 가로막아 온 허들을 넘기 위해 꼭 필요한 관점들
혁신 수용적 사회라면 흔히들 이런 오해를 한다. ‘그래서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판치는 세상을 만들자는 건가?’ 그게 아니다. 지레 겁먹지 않고 도전하되, 그 과정에서 상처입거나 탈락한 사람들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어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혁신 사회다. 그러기 위한 핵심적인 사회정책이 의료시스템과 국민연금이며, 그에 대한 개혁 역시 뒤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의대 정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우선 의료시스템개혁을 단지 의대 정원 문제로 좁게 봐서는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에 극단적으로 드러난 취약한 정책 리더십과 구멍 난 파트너십은 그간 정부가 싼값에 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편법을 제도화해주면서 이해관계자들을 강압적으로 찍어눌러 왔던 지난 20여 년간의 곪아 온 상처가 터진 결과이다.
대표적인 편법이 의약품 정책이다. 낮은 건강보험 수가 대신 의약품을 통해 의사들의 소득보전의 길을 살짝 열어놓았고, 의약분업이 오래전에 되었으나 여전히 간납업체 등 각종 편법이 난무하는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전공의들의 몸을 시쳇말로 ‘갈아 넣어서’ 운영됐던 대형종합병원들의 의사 수련 비용 또한 이제 마땅히 사회화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미국이나 캐나다의 병원은 전공의 수련 교육을 총괄하는 의사는 전체 근무시간의 80%를, 지도 책임을 맡은 의사들은 40%를 수련 교육에 할당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의료시스템은 의사 개인의 선의와 희생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노후 삶의 안정과 행복을 좌우하는 사회정책으로는 ‘국민연금’이 있다. 연금 고갈에 대한 경고가 끊임없이 울리고 있지만, 20년 넘게 그 어떤 정부도 손대지 않고 있는 최강 난이도의 장기 미결 과제 중 하나다. 그 원인은 일단 자명하다. 1998년 9% 인상을 마지막으로 이후 26년간 한 번도 보험료 인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 국민연금 재정은 엉망이 된 것이다. 나한테서만 안 터지면 된다는 심정으로 ‘폭탄 돌리기’만 해왔던 대표적인 사회정책이다. 누군가는 이를 ‘세대 간 도적질’이라고 표현할 정도인데, 이대로 두면 그 말이 정말 진실이 되고 만다.
모수개혁과 구조개혁 등 국민연금개혁의 방향과 방법은 그간 선진국들이 앞서 노력한 여러 사례들 속에 이미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다. 그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공론을 모아가는 슬기로운 방법이다. 스웨덴을 본받을 만하다. 1990년대부터 전격적인 연금개혁을 추진했던 스웨덴은 일단 책임 있는 논의기구에서 ‘개혁의 상위 원칙’을 논의한 후, 그 내용을 1992년에 공개적 논의에 부쳤다. 그런 후 개혁 방향에 관한 포괄적 입법부터 1994년에 단행했고, 구체적 사항은 정당 대표와 전문가 등 책임 있는 소수들이 안을 만들어 순차적으로 입법했다. 무엇에 대해 국민의 생각을 물을 것이고, 무엇을 공적 책임을 맡은 이들이 결정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 경제의 성장판을 닫아 온 ‘콜드 케이스들’을 하나하나씩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지도층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슬기롭게 공론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