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종교의 껍데기 안에 담긴 신앙의 본질을 찾아서
일본 에도시대 막부는 그리스도교 금교령을 내리고 그리스도교인들과 그러할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후미에(십자가에 못 박혀서 매달린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목재 또는 금속 성화상, 종이)를 밟고 지나가게 하여, 예수나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 때문에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거나 밟지 않으면 신자로 간주하여 체포하였다. 배교한 사람들은 목숨을 건졌지만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힘든 고문과 박해로 죽음에 이르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배교를 하기도 했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한 마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한 마디만 하면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배교자들을 믿음이 약한 자라고 비난하거나 외면했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후미에를 밟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리고 난 후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정말 그리스도를 배신한 채로 살아갔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들의 침묵을 대신 깨뜨려준 이가 있었다. 엔도 슈사쿠였다. 그는 소설을 통해 기리시탄, 겉으로는 배교했지만 숨어살면서 여전히 신앙을 유지했던 잠복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저자는 엔도 슈사쿠의『침묵』에서 일본 기리시탄 역사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이후 규슈(九州)문학기행 참가를 위해 『여자의 일생 제1부 기쿠 이야기』와 『여자의 일생 제2부 사치코 이야기』등 엔도 슈사쿠가 쓴 기리시탄 역사에 관한 10여 권의 책을 읽고, 나가사키의 역사 현장과 엔도슈사쿠문학관 등을 방문했다. 그 후 지인에게서 규슈역사 문화기행 가이드를 부탁받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제1부 ‘엔도 슈사쿠’에서는 엔도의 삶을 개관한 뒤, 기리시탄을 소재로 다룬 그의 작품들을 열거하며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제2부 ‘나가사키와 기리시탄’에서는 센코쿠시대의 유명한 기리시탄 다이묘 등을소개한 뒤 도요토미 시대 이후 전개된 오랜 박해의 역사를 정리한다.물론 그 역사의 시계열마다 엔도 작품의 인상적 대목들을 발췌해 인용하여 소설 속에 묘사된 역사를 생동감 있게 느끼도록 돕는다. 제3부 ‘메이지 정부와 그리스도교’에서는 오랜 기리시탄 금교령이 철폐된 이후의 역사를 보여주고, 제4부 ‘전쟁과 그리스도교’에서는 청일, 러일전쟁과 태평양전쟁까지 근대의 전쟁사 속에서 일본의 그리스도교가 처한역사적 상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부록〉에서는 국보 오우라성당과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파괴되었던 우라카미성당 등의 대표적인 나가사키의 기리시탄 유적지들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로 제작된 엔도 슈사쿠의 작품들도 정리하여 이 한 권만 살펴보아도 나가사키를 돌아보며 엔도의 작품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엔도의 글은 독자들에게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며 흔히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지며 함께 그 광야를 헤쳐나가자고 한다. 인간이 고통당할 때, 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서구의 가톨릭 신앙이 어떻게 일본인(아시아인)에게 뿌리내릴 수 있을까? 그는 간단하게 해답을 내리지 않는다. 독자들은 다정하면서도 선 굵은 문장들을 따라 신앙 본연의 질문 가운데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뿐이다.
가깝고도 먼 일본이란 나라, 더구나 그 땅에 복음의 씨앗이 처음 떨어져 수백 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이어온 사실에 대해 우리는 대강 아는 듯하나 자세하게는 잘 모른다. 책에는 일본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되어 정착하는 과정과 혹독한 박해기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유지했던 신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금교정책이 해제된 이후 다시 교회를 세운 신자들의 신앙심이 감명 깊게 그려졌다. 저자는 우리를 대신하여 앞서서, 직접 엔도 슈사쿠의 기리시탄 역사 소설을 번역하고 현장을 찾아 걷고 사진을 찍었다. 또한 나가사키엔도문학관에 연락해 흔히 볼 수 없는 엔도의 사진의 저작권을 받아내어 함께 책에 실을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을 읽고 난 독자 중에는 당장 나가사키로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과 더불어 엔도 슈사쿠의 문학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일본을 향해 품었던 부정적 편견과 애증의 관계, 종교를 벗어나 보편적 삶과 내밀한 인간 공동체의 존재로서 물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