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치이고 인간관계가 힘에 부칠 때
때로는 투명한 단순함이 위로가 되기도 하니까”
넘기는 책장마다 뿌려지는 호기롭고도 유쾌한 아홉 살 문장들
★★ 8천여 편의 후보작 중 엄선된 단 한 권의 에세이 ★★
★★★ “여유 없는 하루에도 최소한 책을 읽는 동안에는 오랜만에 시간이 천천히 흐를 것이다.” 50만 부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작가 정문정 추천 ★★★
단단한 마음의 껍질 없이 사회에 내던져진 우리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작고 말캉한 손을 잡자 내 마음이 단단해졌다
성인이 되고 일기를 써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의 일기장을 본 적이 있는가? 지금과 그때의 일기는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이들과 만난 지 23년째, 내리 8년을 2학년 초등학생의 담임으로서 일하고 있는 작가는 “아무거나, 아무렇게 써도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는 순수한 글쓰기를 이때 아니면 언제 맘껏 해볼 것인가.”라는 믿음 아래 아홉 살 아이들과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아이들의 어느 때보다 호기롭고 투명한 시선을 엿볼 기회를 얻었다.
어른이 아이보다 나은 게 있다면 바로 경험이 아닐까. 하지만 경험이 많다는 것을 어찌 좋다고만 볼 수 있을까.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집. 무한 경쟁에 내몰리며 지금 이게 제대로 사는 것이 맞나, 하는 어른들. 단단한 마음의 껍질 없이 사회에 내던져진 우리는 작은 일에도 크게 동요하곤 한다. 실수를 할까 노심초사하고 공든 탑이 무너질까 도전하기를 주저한다. 남들과의 비교로 마음의 평화가 헤집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와중에 만난 아이들은 실수를 저지를까 머뭇거리지 않고 실패에도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냉이는 다른 친구들보다 키도, 몸짓도 큰 친구라 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거미줄 놀이에는 상대적으로 불리했다. 정해진 움직임 횟수 이내에 실을 건드리지 않고 통과해야 하는 놀이가 결코 호락호락하진 않았을 테다. (…) 냉이가 줄에 닿지 않으려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성을 다해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전할 수 없어 안타깝다. 그건 직접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었다. 불리한 조건에도 꺾이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진심을 다해 도전 과제를 수행하는 태도. 그것이 냉이의 미래가 기대되는 진짜 이유다.” _〈건설적? 신나면 됐어〉
“오늘은 학교에서 봄맞이 대청소를 했다. (…) 티슈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보니 물티슈들이 다 얼룩이 져 있어서 좀 더러웠다. 그래도 얼룩이 져 있는 티슈들을 보니 친구들이 참 열심히 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친구들도 참 뿌듯할 것 같다.” _〈모든 것이 일시에 무너져버리는 순간에도〉
공들인 시간의 결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금은동 색으로 순위를 매기는 메달, 대상과 최우수상으로 노력의 가치가 결정되는 듯한 삶이지만 아이가 쓴 글에서 공들인 시간의 모습을 바로 본다. 노력의 결과는 아마도 “구석구석 닦아내느라 애쓴 노력으로 잔뜩 더러워진 물티슈”처럼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문장은 그 연결이 매끄럽지 않고 문법을 지키지 않아 조금은 서툴게 보이기도 하지만 불리한 상황에도 시도해보는 용기, “작고 기특한 애씀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마음”을 오롯이 담고 있다.
맑고 담백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미숙함 속에서도 기쁨을 찾도록 돕는다. 일에 치이고 인간관계가 힘에 부쳐 무너질 듯한 날이 오면 작고 말캉한 아이들의 손을 마주잡아 보자.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뭉클하며 때로는 호기로운 어린이들의 말과 글”이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우리의 마음을 보듬어줄 것이다.
빛바랜 감정에 생기를 불어넣을 아이들의 당차고도 유쾌한 문장들
“잔잔한 일상도 찬란하게 살아갈 수 있잖아!”
살아가며 어느새 희미해진 수많은 감정들을 아이들의 일기를 통해 바라본다. 두려움, 실망감, 무력감, 그럼에도 희망, 일상의 즐거움, 편견 없는 사랑 등 아이들에게는 나름의 옹골찬 감정소화법이 있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다던 그 시절을 지난 지 이미 오래되었고 두려움, 무력감 같은 감정은 조금 더 색이 진해진 듯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일상의 행복을 놓치는 법이 없다.
“일요일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어렵다는 입학시험을 봤다. 처음에는 쉬울 것 같아서 방심했지만 시험 보러 가는 엘리베이터에 타니 너무 떨려서 온몸이 오징어 댄스를 췄다. 시험장에 도착하니 형, 누나들이 잔뜩 있었다. 나는 영리한 형, 누나들의 머리를 가진 슈퍼 천재인 걸까?라고 잠시 착각을 했다. 시험지를 받은 후 30문제 중에 5문제를 풀고 25문제를 백지로 내면서 나의 착각은 모두 사라졌다. 그래도 도전은 재밌었고 참가상으로 받은 가나초콜릿은 꿀맛이었다.” _〈아이들은 행복을 놓치는 법이 없지〉 중에서
남들과의 비교로 무참해지기보다, 푼 문제보다 못 푼 문제가 더 많음에 무력함을 느끼기보다, 영리한 형, 누나들과 같은 시험을 치른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대견해할 줄 아는 어린이. 참가상으로 받은 달콤한 초콜릿으로 자신에게 보상을 주는 아이는 앞으로 더 당차게 삶을 살아갈 것이다.
대개는 고단하고 가끔 찬란한 것이 삶이다. 별 일 없이 잔잔하게 살다 보면 지루하고, 허둥지둥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자주 납작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만, 작가는 이 모든 일상들을 잘 견뎌온 청춘들에게 말한다. “여기까지 잘 왔어.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