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시아 콤플렉스’에서 ‘사회적 교환 이론’까지, 이야기로 접근하는 심리 수업!
어린 시절 자신이 죽은 형을 대신해서 ‘대체된 아이’로 살아간다는 정체성은 성인이 된 고흐로 하여금 엄마를 대신하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여인을 찾아 헤매게 만든다. 내 모습 이대로 사랑받는다는 안정감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욕망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흐의 특이한 행동들을 “일종의 광기로만 취급하면 놓치게 되는 중요한 진실들이 너무 많”게 된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한 늙지 않는다.”라고 말한 고흐의 말처럼, 우리도 아픈 사랑을 통해 성숙한 사랑을 배운다면 비록 상처는 남을지언정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일례로, 고흐는 시엔이라는 창녀를 알고 지내면서 점점 그녀의 불쌍한 상황에 공감하다 급기야 ‘결혼’만이 그녀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고 결론 내리고 만다. 그녀의 힘든 성격을 받아주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스스로 구원자를 자처하는 심리를 ‘메시아 콤플렉스’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를 사랑하게 되리라는 일종의 기대심리이자 나를 의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으려는 보상심리다. 결국 시엔이 점차 자립적으로 변해 가자 고흐는 그녀 곁을 떠나 버린다. 하지만 고흐 자신도 분명 이 사건을 통과하면서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계속된다.
사랑은 상대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아무리 보살피고 사랑해도 그 대상이 성장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동정심과 연민만이 사랑이라면 사실은 구원자 콤플렉스에 지나지 않다. 다른 관계에서 상처받은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하나의 대체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동정의 사랑은 매우 위험하다. 상대가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김동훈, 『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에서
● ‘모방 욕망’에서 ‘주의 회복 이론’까지, 그림으로 접근하는 심리 수업!
고흐의 심리를 분석할 때 아버지의 영향은 지대한데 「성경이 있는 정물」(1885년)이 대표적이다. 목사였던 아버지를 상징하는 성경책이 캔버스를 독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화가 자신을 상징하는 에밀 졸라의 소설 『삶의 기쁨』은 책상 끄트머리에 작게 그려져 있다. 에밀 졸라는 “아버지가 고흐에게 읽지 말라고 강조한 자유사상에 빠진 작가”였다. 고흐는 “진정 살기를 원한다면 담대하게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주인공 폴리의 태도를 자신의 좌우명처럼 여겼다. 이 작품은 커다란 성경책과 작은 소설책이 대비되고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길을 가겠다는 고흐의 굳은 의지로” 보인다. 자아 발달 과정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겪는 우리의 방황을 고흐도 힘겹게 극복해 나아갔던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때문에 친구나 경쟁자 또는 롤모델을 어느 정도 모방하기도 한다. 고흐와 테오가 나란히 서 있는 그림 「헤이그 근처의 라크몰렌(풍차)」(1882년)에는 테오가 고흐의 분신이나 또 다른 자아를 뜻하는 ‘알테르 에고(alter ego)’처럼 묘사돼 있다. 고흐는 서로를 신뢰하고 이해했던 십 대 시절을 그리워한 것이다. 한편 「중절모를 쓴 자화상」(1887년)에서는 자신을 테오처럼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그렸다. 당시 파리에서 테오는 구필화랑의 책임자로서 전도유망해 보였는데 고흐도 한때 그런 테오를 부러워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향한 부러움이 크면 클수록 자신이 그런 능력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열등감이 작동하면서 끝내 상대를 제거하고 자신이 그 능력을 차지하려고 한다. 동생 테오는 고흐의 재능을 통해 성공하는가 싶더니 형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다.” 결국 파리에서 고흐는 테오의 집을 떠나게 된다.
또 한 번은 아를의 집에서 고갱과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그 또한 수포로 돌아간다. 이 시기에 고흐가 ‘아를의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그린 여러 장의 마리 지누의 초상화를 보면 처름에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렸다가 나중에는 고갱이 그린 마리 지누를 모방해서 그렸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에 따르면 “어떤 대상을 향하여 경쟁하면서도 닮아가는 상태를 ‘모방 욕망’이라고” 한다. 당시 고독한 고흐에게는 테오의 지지가 절실했는데 그런 테오가 고갱을 숭배하자 고흐도 일종의 ‘모방전염’을 겪은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심지어 집단 속에 있다 해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나의 가치를 스스로 아는 것이다. 만약 주변 사람들이 우리의 동료를 영웅으로 본다면 우리도 고흐처럼 행동할지 모르겠다. 그에게 고갱에 대한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와 명예를 갈망하면 할수록 자신만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사람은 주목받지 않아도 내적으로 강인하다. 이런 강인함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실현하도록 돕는다. 이제 자신만의 스타일을 믿으며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타인의 인기가 아닌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김동훈, 『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에서
고흐는 자신의 귓불을 자르는 등의 정신적 위기를 겪지만, 이후 「별이 빛나는 밤」(1889년)에서 보듯 고흐는 밤마다 별빛을 통해 안정을 찾아 나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말과 평판에 휘둘렸던 고흐가 점차 내면의 힘을 찾으면서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비록 힘든 여정이지만 우리도 고흐처럼 깊은 좌절을 통과하면서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진정한 나 자신의 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주의 회복 이론’(ART: Attention Restoration Theory)에 따르면, 자가 내면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의를 자신에게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연과의 접촉이 제시되고 있다. 어찌 보면 고흐는 나무들을 그리며 자연이 지닌 치유의 힘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얻었을 것이다.
-김동훈, 『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에서
고흐의 말처럼 “상처받은 삶이라도, 새로운 생명과 희망은 가능하다.” 이 책은 고흐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