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濫讀의 즐거움
“등하굣길에 읽는 책, 전차 안에서 읽는 책, 교실에서 몰래 읽는 책, 집에서 읽는 책, 이런 식으로 구별을 두고, 늘 몇 가지 책을 병행하여 읽을 수 있도록 안배했다. 실로 터무니없다고 할 만한 행동이었지만, 그 당시의 도를 넘은 왕성한 지식욕과 호기심은, 느긋하게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다른 책을 펼쳐볼 여유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독서에 대하여」
중학교 시절 러시아 문학을 읽으면서 시작된 고바야시의 독서열은 집에서 읽는 책, 학교에서 읽는 책, 전차에서 읽는 책 등 구분을 해두고 여러 책을 병행하며 읽는 데까지 발전한다. 이때 쌓은 남독(濫讀)의 경험은 독서의 진정한 즐거움으로 이어지고 자신만의 독서 기술을 체득하기에 이른다. “독서의 첫 번째 기술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음으로써 배양된다. 난해하겠지만 일류 작품만 읽어라. 탁월한 작가를 선택해 그 사람의 전집을 읽어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은이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읽어라” 등과 같은 실질적인 조언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스물여덟에 비평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비평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다
고바야시 히데오의 평론 데뷔작 「각양각색의 의장(様々なる意匠)」은 ‘근대비평’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마르크스주의 문학 전성기에 특정 문학사조가 지나치게 신봉되는 것을 지적하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다른 문학사조와도 거리를 유지했다. 이런 태도는 주류 비평가들과는 다른 고바야시만의 존재감을 보여주었지만, 당시 문단에서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1935년 1월, 『문학계』에 「도스토옙스키의 생활」 연재를 시작한 고바야시는 소설가가 역사적 인물에 몰두하여 그 인간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내는 것처럼 자신은 문학, 예술계의 천재를 대상으로 하여 추상적 묘사로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최고의 비평이라고 말한다. 이제껏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최상의 비평은 언제나 가장 개성적”이라고 생각했던 비평가 고바야시의 탄생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상을 묵묵히 바라보면 보인다
“여러분이 들판을 걷다가 예쁜 꽃이 한 송이 피어 있는 걸 봤다고 합시다. 가만히 보니 제비꽃입니다. “뭐야, 제비꽃이네”라고 판단한 순간 여러분은 더 이상 꽃의 모양도 색도 보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 꽃의 자태나 색의 아름다운 느낌을 말로 치환해버렸다는 말입니다. 말의 방해를 받지 않고 꽃의 아름다운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며 묵묵히 꽃을 바라보면, 꽃은 여러분에게 일찍이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그야말로 한없이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미를 추구하는 마음」
1941년 여름, 고바야시는 일본 토기나 불화 등 고미술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다. 논리의 힘은 프랑스 문학, 러시아 문학과 서양 근대 문학으로 단련했다면, 이번에는 일본의 고미술, 고전과 마주하며 물건을 보는 힘, 눈의 수련을 쌓은 것이다. 형태만으로 말을 걸어오는 미술품을 오로지 바라보고, 형태로부터, 말하자면 무언의 말을 얻으려는 노력이었다. 단지 계속 바라본다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이런 훈련은 나중에 문학이나 사상도 읽는 것을 뛰어넘어, 바라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고바야시 히데오 특유의 독서술을 이끌어냈다. 바로 이 책 『비평가의 책 읽기』에 실린 글들을 관통하는 가치관이다.
비평 정신의 가장 근원적인 것은 자기 이해이다
“감상하는 데는 허심(虛心)이란 게 필요하다, 자기를 버리고 타인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데, 이 말인즉슨 몰입하라는 의미입니다. 자기가 의식하는 자신은 진정한 자신이 아닙니다. 타인에게서 빌린 것입니다. (…) 이런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허심해져라, 다시 말해서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문장 감상의 자세와 방법」
대상을 보고 감동한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것이 곧 비평이 된다고 생각했던 고바야시 히데오는 그만큼 감동을 중시했다. 비평은 연구와 다르다. 연구가 지식을 분류하거나 정리하고, 새로운 사실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다면, 비평은 대상이 미술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무언가에 감동하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대상이 아니라 감동하는 자신을 비평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한다. “즉 비평 정신의 가장 근원적인 것 혹은 순수한 것을 더듬어가다 보면, 자기 비평 또는 자기 이해라는 것을 극점에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비평에 대하여」)고 할 수 있다.
「국어라는 큰 강」에는 딸이 보여준 국어 시험문제가 자신이 쓴 문장인지도 모르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본인도 착각할 만큼 고바야시 히데오는 편안한 문장이 아닌 집중해서 맥을 좇아야 하는 악문으로 유명하다. 『비평가의 책 읽기』는 대표적인 그의 평론들보다는 읽기 수월한 글들이다. 독서를 제대로 즐기는 기술, 그림이나 음악을 감상하는 법 등 고바야시 히데오에게 던져진 주제들은 모호하고 추상적이지만 그의 조언은 꾸밈없고 실용적이다. 자신이 실천했던 독서술을 공개하고, 문예비평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비평가로서의 노하우를 전함으로써 고바야시 히데오 자신만의 사유로까지 확장해나간다. 책 끝에는 교양을 주제로 철학자 다나카 미치타로와의 대담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