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비서관은 너무 가슴이 뜨거워서 말이야.” 이 책은 30년 글쓰기 경험으로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황홀한 글쓰기 세상, 그 길을 따뜻하게 안내하는 종합 글쓰기 비법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실용 글쓰기 책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속내엔 감성적이고 문학적 글쓰기의 가슴을 품고 있다. 그래서 ‘가슴의 글쓰기 책’이다. 이런 모습의 책을 독자들이 읽고, ‘나도 저 정도의 고난은 겪었고, 또 저 정도의 글쯤은 나도 쓰겠어.’ 하는 위로와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한다.”
- 머리말 중에서
글쓰기 책의 전범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작가이자 소설가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만이 인생을 두 번 살게 해준다. 그 기회에 올라타라.”고 재촉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내면 깊숙한 곳으로 빠져들어 그 실체와 자아를 길어 올리는 과정이다. 지난날의 꿈과 이상, 그리고 혹독했던 자기 상처를 아물게 하는 마중물이자 해법이 바로 글쓰기의 세상이다. 처음 백지장을 마주했을 땐 황망하고 다소 어렵다. 하지만, 첫 장의 첫 단어 하나만 써넣어 보면 오랜 세월 기다리고 있던 나의 무의식이 어느덧 나타나 기꺼이 나를 돕는다. 저자는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바로 글쓰기의 강에 뛰어들어라.”고 강조한다. 글쓰기가 인생을 거푸 사는 지름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고독을 즐기는 유희 같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고독력(孤獨力), 고독을 이기는 힘이 체력처럼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그런 힘을 키우는 일에 가장 유용한 것이 글쓰기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밤에 홀로 앉아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에서부터 무작정 글을 써 내려가 본다. 그러면 어느 순간, 마치 누군가가 곁에 다가와 내 어깨를 다정하게 꾸욱 한번 쥐어주는 듯하다. 우리는 뚜렷한 의미 없이 홀로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글쓰기란 이 혼자만의 우주 공간에서 참 고마운 친구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인생을 닮았다. 그래서 어렵기도 하다. 글을 쓰다 보면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 먹었던 생각과 자꾸만 어긋난다. 지금,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 같고, 시작도 끝도 내 의지대로 쓴 것은 단 한 줄도 없는 것 같다.”
-본문 중에서
또한 이 책은 지난 한 시절을 뒤흔들었던 민주화 시대 전위대로서의 386세대들의 꿈과 이상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래서 그 새 세상으로의 행진 과정을 되살리고 그 지향을 반추하는 회고담이기도 하다. 이 책은 출간 당시 ‘386세대의 자서전’이라는 세간의 평을 받았던 장편소설 『그들 81학번』과 그 연작인 『독신』의 작가이기도 한 김지용의 지난날 감회를 따뜻한 감성으로 잘 풀어간, 마치 짧고 단단한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
“…다만, 그 시대의 가슴 뜨거웠던 ‘386’이 오늘에 와서 온갖 조롱거리가 되어 길바닥에 끌려다니는 세태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 시대를 표상하는 청년 정신이 그렇게 쉽게 폄훼되고 말살되는 것이어선 안 된다.
물론 조급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미 그날의 시대사를 길고 자랑스럽게 써 내려간 사관이 되어 있다. 우리의 이름은 어렵게 개화하고 마침내 스러지는 봄꽃 같은 것이며, 지금은 묵묵히 월광에 비치며 겨우 역사 한 장을 넘기는 중이다. 그리고 그날 서점 매대 앞에 우뚝 선 채로 우리의 길고 고단했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또 공감해 주었던 그날의 여성이 존재한다. 그녀가 지금도 우리의 지친 가슴을 따뜻하게 위무하는 중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특이하게도 이 책은 글쓰기 종합 책이기도 하지만, 한 편의 훌륭한 우울증 극복 투병기이기도 하다. 상처를 겪은 자만이 타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저자는 길고 모질었던 자신의 우울증 세월을 마침내 극복하고, 남모르는 그 고통의 실체를 낱낱이 세상에 알려 지금도 어둠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이 세상 수많은 전사(戰士)들에게 다가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치유로서의 글쓰기, 그 극복으로서의 글쓰기 해법을 자상하게 제시해 준다. 우울증은 단연코 한낱 ‘마음의 감기’가 아니다. 가벼울 때도 있지만, 극심할 땐 말기 췌장암처럼 무섭고 여름날 대상포진보다 집요하다. 그러나 본인이 병의 실체를 잘 파악하고 주위에서 올바른 인식과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면 얼마든지 완치는 물론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작가는 그 해법의 여정을 따라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울이 지나가는 소리를 기다려 국회에 사표를 냈다. 이번에도 모질고 지독했다. 2, 3년에 한 번꼴로 재발하는 이 병, 친숙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만날 때마다 영과 육을 갉아먹는 내 젊은 날의 천형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며 또 이 하루, 어떻게 살아내야 하나, 몽당연필 한 자루 들 힘조차 없었다. ‘주요우울증(MDD, Major Depressive Disorder)’이었다.
내 젊음이 이렇게 포악질당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오래 모셔온 의장께도 할 도리가 아니었다. “책을 쓰기 위해 그만두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스물넷 되던 해의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보좌해 왔다. 그 인연의 끈도 그만 내려놓기로 했다. 내가 그때 얼마나 생의 막다른 경계에까지 오가고 있었던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구스타프 플로베르는 글쓰기의 광대한 세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글쓰기란 참으로 근사한 일이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더 이상 자신에게 머물 필요가 없고,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오늘 나는 남자가 되었다가 여자가 되기도 하고, 가을날 오후에 노란 낙엽을 밟고 말을 타고 숲을 지나가기도 한다. 또 나는 멋지고 근사한 말에, 잎사귀에, 바람에, 주인공이 하는 말 속에 존재할 수도 있고, 심지어 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눈을 감게 만드는 불타는 태양 안에 존재할 수도 있다.”
김지용 작가는 지금 황홀한 글쓰기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 있고, 또 힘겨운 상처를 묵묵히 이겨나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세상 동료들’에게 마음속 깊은 성원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