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마’가 들려주는 삶의 이치와 순리
유순예 시인은 ‘옴마의 입말’이라는 형식으로 생전에 어머니가 했던 말들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인생의 경험과 삶의 현장이 깊게 배어있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담아낸 이유는, 그 자체로 온전히 시(詩)이기 때문이다. 대지의 딸이자 그 딸의 어머니로 평생을 살아온 ‘옴마’의 입말에는 세상의 모든 이치와 순리가 스며있다.
무수(無數)한 세월 헛살았다/ 헤아릴 수 없이 서러운/ 새벽이나 한낮이나/ 밭에 나가 호맹이질을 해댔으니/ 동지섣달에도 장터에 나가/ 종일 쪼그려 앉아 있었으니/ 무르팍도 허리도 어깨도 팔꿈치도/ 성할 리가 있겄냐/ 너는 나맹키로 고생고생 살지 마라/ 구수하고 달달한 무수적맹키로/ 납작 엎드려서/ 무수(撫綏)한 세월 둥글넓적하게 살아라
-「무수적」
「무수적」은 ‘무전’의 전북 지역어 ‘무수적’과 동음이의어인 ‘무수(無數)’와 ‘무수(撫綏)’를 병치하면서 시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어머니가 해준 무수적은 겨울날 굴풋한 허기를 채워준 달큰한 음식이었으리라. 온 생애를 고된 농사일에 바쳐온 어머니는 그런 힘겨움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시인은 무수적을 생각하며 자신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주던 어머니의 무수한 사랑을 떠올리는 것이다.
아가, 나 여기 있다! 니들 아버지도 옆에 있다// 부모님 산소가 있는 밭을 빙 둘러보는데/ 풀숲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행방불명이던 핸드폰이 손을 흔들며 기어나온다// 아이고, 옴마!/ 핸드폰 없어졌다고 그 소란을 피운지가 몇 년여/ 여기다 떨어뜨려놓고/ 혼자 밭일하느라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어!// 뒤죽박죽된 핸드폰 틈새마다 끼어든/ 해묵은 흙을 맨손으로 쫓아내고/ 해묵은 잡초 부스러기들 떼어내기를 반복하는데/ 초겨울 찬비가 쏟아진다/ 우둑! 우둑!/ 쏟아진다, 속절없이 쏟아지는 빗소리에/ 불통이던 휴대폰이 전화를 받는다// 옴마, 아버지 옆에 누우니까 편안하지?
-「풀숲에서 온 전화」
「풀숲에서 온 전화」는 어머니가 잃어버린 휴대전화기를 돌아가신 후에야 풀이 우거진 밭에서 찾는 내용이다. 여기저기 흙이 묻어 있는 전화기를 보면서 시인은 “혼자 밭일하느라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어!”라고 퉁생이를 놓는다. 그러다 문득 “속절없이 쏟아지는 빗소리”에 어머니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다. 시인은 그 전화기에 대고 “옴마, 아버지 옆에 누우니까 편안하지?”라고 말한다. 그렇게, 한평생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비로소 진정한 위로를 건넨다.
우리는 이 우주에서 함께 살아간다
『당신이 그곳에 계시는 동안』에는 요양병원, 노인보호기관, 노치원 등에서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는 어르신들 이야기도 담겨 있다. 치매와 요실금을 앓고, 휠체어에 의지하며 수시로 관장을 하고, MRI에 몸의 징후를 살펴야 하는 노년이 때로는 애잔하면서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금쪽같은 새끼들을 품고 있던/ 당신의 몸 곳곳마다 온통/ 실금이 갔네요/ 눈물도 줄줄 새고/ 콧물도 줄줄 새고/ 발음도 줄줄 새고/ 새고 새는/ 당신의 몸 곳곳마다 온통/ 주사 바늘이 찌른 상처들로/ 새까맣게 멍이 들었네요// 금쪽같은 새끼들은 다 어디에 숨기셨나요
-「요실금」
우리 사회는 이제 고령화시대를 지나 초고령화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생로병사’는 모든 인간이 겪는 삶의 과정이다. 더 이상 노년의 삶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잘 영위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유순예 시인이 따듯한 눈길로 보듬어낸 어르신들의 모습은 우리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므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만남을 하고 많은 이별도 한다. ‘옴마’는 생전에 시인에게 “이별은 얼어 죽을 이별이냐 형체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 이 우주 안에 함께 있는디”(「하관(下棺)」)라고 말했다.
그렇다. ‘옴마의 입말’처럼 우리는 이별한 게 아니다. “이 우주 안에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계실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리기 위해서라도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야 마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