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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달걀 세우기

날달걀 세우기

  • 오창헌
  • |
  • 가을
  • |
  • 2024-12-25 출간
  • |
  • 128페이지
  • |
  • 127 X 188mm
  • |
  • ISBN 979119845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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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 시인의 글

시 창작의 여정

2011년 9월 3일 토요일, 나는 울산의 몇몇 시인들과 함께 울산 기행 행선지로 웅촌의 은현리적석총과 이웃한 웅상의 우불산성, 우불산신사를 찾았다. 두루 돌아보고 웅촌면 곡천리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맞은편 회야강 건너 대숲에 바람이 불었다.
대숲은 좌우로 흔들리더니 이내 멈추었다. 순간 바람의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바람의 집이 무너졌다’와 그것이 ‘폐가’라는 인식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나의 시안(詩眼)이 되었다. 동시에 그간 품었던 시에 대한 의문이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대상의 그 너머를 보는 눈이 내게도 생긴 것이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왔고 다음 날 새벽 네 시에 눈을 뜨고 「폐가」라는 시를 썼다. 이어 함께 갔던 시인들의 시 나눔 사랑방인 다음 카페 ‘쏘울비상구’에 올렸고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첫 시집 『해목』에 「투명한 폐가」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바람이 멎었을 뿐인데
대숲이 새파래졌다
햇살은 댓잎 위로 덩치를 키우고
투명한 詩體는 적멸 중이다
- 「투명한 폐가」 전문

바람의 집이 무너지는 순간과 시에 대한 나의 열망이 담긴 이 시는 내게 기념비적인 첫 작품이 되었다. 이후 내게 온 이 기적이 이 한 편으로 끝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간 내 시 창작의 여정을 담은 한 편의 시를 《시애》에 발표했다.

옛날에 오 씨라는 사람이 밥 먹고 하는 일이
자신의 빈 문패를 쓰러뜨리고 세우는 일이었다
아침에 쓰러뜨린 문패를 저녁이면 세웠다
칠흑 같은 밤이기도 했고
비 오는 새벽녘의 일이기도 했으며
세우지 못한 날도 있었다
세울 때면 붓으로 맹물을 찍어
빈 문패 위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는 자신을 찾고 있었다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왜 사는지 묻고 있었다
그걸 위해 시를 썼다
한 편씩 쓸 때마다 자신을 찾아갔다
한 편씩 쓸 때마다 빈 문패가 세워졌다
어느 날 빈 문패를 쓰러뜨렸는데도 편안했다
이제 그는 굳이 자신을 찾아 떠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자신을 찾는 일로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다
가끔 자신과 어울리는 세상에 대해 읊조리면 그만이었다
그는 빈 문패 위에 먹물을 찍어 자신을 써 내려갔다
空頭, 비어있는 것은 모두 머리다
그는 허공에 머리를 내밀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를 ‘허공의 머리’라 불렀다
- 「空頭」 전문

내가 쓴 시가 나를 위무하고 있다니 비로소 나는 내게 시인의 타이틀을 붙여 주었다.
시인이라는 타이틀은 남이 달아주는 이름표가 아니다. 내가 쓴 시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내가 어떻게 썼는지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내 리듬으로 썼는지 남의 리듬을 흉내 냈는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을 찾아 쓴다면 그것이 곧 나를 매료시키는 내 시의 시작이 아닌가.
이를 계기로 나의 시 쓰기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시적 대상과 나의 대화는 즐거워졌고, 마음이 뜨거워지면 한 편의 시가 새어 나왔다.

이전 나의 시 쓰기는 참 답답하고 암담했다. 순식간에 쓴 글이 시가 되기도 했지만 내가 쓰고자 했던 내용은 시가 되지 않았다. 어떤 것은 시가 되고 어떤 것은 왜 시가 되지 않는지 그 답답한 속내를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내 리듬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여유 없는 나를 여유 있는 나로 이끌어도 보고,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까닭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는 내 속을 넓히는 마음공부를 하기도 했다. 천재 시인으로 타고나지 않은 자가 시인이 되려면 어느 누구라도 이런 고민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는 한 줄의 싯구가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둔재 시인이기에 그 기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시 공부를 하면서 소위 ‘좋은시’라고 알려진 시들을 필사하지 않았다. 남의 영혼과 습관이 내 글에 묻어나올까 하여 매우 경계했다. 10년이고 20년이고 파고들다 보면 제대로 된 시를 쓰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게 있었다.
시를 정식으로 공부하기 전에 고등학교 때까지 나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내 꿈을 밝혔을 때, 어머니는 “화가가 되면 빌어먹을 정도로 가난하게 산다”며 장래를 걱정했다. 그래서 어린 생각에 돈 걱정 안 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없을까? 하는 물음을 내게 던지곤 했다. 그래서 나름 찾은 방법이 이중섭의 은지화를 미술책에서 보고는 은지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개관했을 때 이중섭의 은지화가 전시된다는 기사에 몇 번 찾아가서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이후 두 장의 은지화를 그리며 꿈을 키웠지만, 돈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고서는 이내 꺾이고 말았다. 하나는 애플이 만든 매킨토시라는 컴퓨터에서 포토샵 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래픽디자인이고, 다른 하나는 종이와 필기구만 있어도 되는 글쓰기였다. 매킨토시를 활용한 디자인은 나에게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하여 먹고살게 해 주었고, 글쓰기는 나에게 정신적 자양분이 되었다.

1987년 나는 은사인 신명석 시인을 만나 본격적인 시 공부를 시작했다. 신명석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10년간 시 공부를 하다 보면 시인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시의 고급 독자라도 되어 있지 않겠냐고 하셨다. 이 말씀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10년 공부해 보고 아니면 독자로 남지 뭐…, 라고 쉽게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좋은 직장을 얻을까?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은 나였다.
시 수업료는 가끔 해녀인 어머니가 잡아 놓은 문어 몇 마리, 해산물을 드리는 게 전부였다. 그럴 때마다 신명석 선생님은 문어 좋지, 하고 웃으시며 나를 다독이셨다.
시를 몇 편 써서 선생님을 찾아뵈면 빨간색 볼펜으로 단어들에 동그라미를 쳐 주셨다. 이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한 번은 자갈치 시장에 가서 온종일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라고 하셨다. 자갈치 시장 한 귀퉁이에 앉아,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한심하기까지 했다.
한 2년이 지났을까. 시 원고에는 파란색 볼펜으로 밑줄 친 싯구들이 연결되며 시 한 편의 의미가 되어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난 어느 날, 시 원고에는 연필로 쓰인 감상평이 내 눈을 반겼다. 그러나 시는 도통 알 수 없는 존재였다.
1991년, 서울에서 박재삼 시인의 자제인 박상하 씨가 운영하는 삼하문화사의 도움으로 그동안 써왔던 시들을 모아 시전집(詩展集)을 출간하고 부산가톨릭센터에서 시전을 열었다. 시전을 끝내고 나는 먹고사는 일을 서울 동대문에 있는 ‘지성의 샘’ 출판사에서 시작했다. 그 인연으로 박헌호 시인을 만나고, 문학통신사 대표인 이지룡 선배가 중심이 된 서울문학회 활동을 시작했다. 격려를 아끼지 않던 김규동 시인과 김신용 시인의 시가 가슴을 울렸고, 부산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던 변의수 시인, 시집 『사랑도 아프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으로 주목받던 이복희 시인 등과 교류했다. 일 년간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이지룡 선배의 배려로 1991년 12월 종로1가에 자리 잡은 문학통신사 한쪽에 매킨토시 두 대와 전자사식기 한 대를 놓고 ‘한줄기획’이라는 인쇄기획사를 차렸다. 젊었기에 가능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1992년 여름, 서울 생활을 뒤로 하고 부산에 내려와 중앙동에 사무실을 차렸다. 그해 가을에 결혼했고 1994년 5월 큰애 ‘한솔’이 태어났다.
부산에 와서는 최영철 시인을 만나 ‘부산·경남젋은시인회의’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상개 시인이 운영하는 빛남 출판사에서 출간한 송유미 시인의 시집 『파가니니와의 대화』 표지, 시 계간지 《시와 사상》 표지를 디자인하는 등 겨우 입에 풀칠하며 운영하던 한줄기획은 1996년 울산에 인쇄 관련 일자리가 생기면서 세상에 한줄기 획을 긋고자 했던 부푼 기대와는 달리 아쉽게도 한줄기 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시 계간지 《사이펀》 발행인인 배재경 시인과는 마음이 맞아 울산에 와서도 1998년에 창간한 무크지 《가마문화》, ‘고래와 바다 시전’ 등 여러 문학 활동을 함께 해 오고 있다. 최영철 시인과 서규정 시인은 선배로서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 《문학지평》에 시를 추천하고 싶으니 정식 등단 절차를 밟으라고 내게 조언하였으나 시인으로서 나의 준비가 덜 되었기에 정중히 사양했다.
1996년 5월, 1년만 고생하자는 생각으로 울산에 왔지만, 울산에는 ‘부산경남젋은시인회의’의 의장인 김태수 시인과 정일근 시인이 있었다. 그해 부산작가회의에 이어 울산작가회의가 설립되면서 나 역시 자연스럽게 울산작가회의의 일원이 되었고, 김태수 시인이 회장, 정일근 시인이 사무국장, 내가 사무차장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1997년, 울산상공회의소 기관지 《울산상공》을 디자인하게 되었는데 담당자에게서 울산공단문학상 공모 사업에 회원인 산업체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울산 지역의 근로자와 가족은 응모할 수 있다는 말에 시 열 편을 보냈다. 운이 좋게도 「깨끗함을 위하여」 외 시 2편이 최고상인 최우수를 받았다. 그해 7월 둘째 ‘한길’이 태어났다.
1999년, 나는 어깨너머로 배운 디자인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세상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매체에 주목했고, 웹은 곧 세상을 새로운 물결로 이끌었다. 그래서 나는 울산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정보디자인학과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웹디자인 등 새로운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다. 문학 관련 컨텐츠를 책만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디자인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다. 2004년 2월에야 겨우 석사논문 『수용자 중심의 시 감상 멀티미디어 컨텐츠 제작』이 통과되어 졸업했다. 논문은 ‘영상시 제작’에 관한 내용이다. 이후 고래영상시 등 영상시와 영상시노래 제작에 힘을 기울여 여러 문학 콘서트와 시 교육에 문학 활동가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울산작가회의 사무처장, 이사, 《울산작가》 편집주간을 맡고, 정일근 시인, 안성길 시인과 함께 고래문학제와 시노래 운동, 무크지 《고래와 문학》 발간, 푸른고래 출판사 설립 등 지역 출판 운동을 하며 나름 지역 시인으로 활동해 왔으나 시에 대한 고민은 늘 나를 압박했다.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이 시가 되도록 온 힘을 다 해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번번이 깨졌다는 표현이 맞다. 오랜 시간 내 시에 내가 깨지는 동안 내 시도 내게 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쓰고 싶은 시 한 편을 쓰게 되었다.

“내게 고향이란... 군소개작전에 따라 소각된
잿더미 모습 그대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

거미야 흩어진 기억을 붙잡으러 왔니 저미는 봄빛을 붙잡으러 왔니 니가 더듬듯 갓 피운 꽃잎 하나, 낡은 집이 기우뚱거린다
니가 새로 집 짓는 것이 밤이슬 속에서 새벽이슬 속까지 마냥 애태우는 것이 허공에 눈 틔우는 길이라는 걸 웅크린 새벽에도 여명을 보면 안다
바람 불 적마다 낮은 목소리 섞어 기록하던 키 작은 집들
그 집에 살던 청미래덩굴과 밥 연기와 빈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햇살과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의 오랜 이야기는 아직 곡예 중이다 그 무엇도 땅 짚지 못하고 허공을 떠도는 곡예사들이다
살 에이는 꽃샘바람에도 사월은 꽃잎을 피운다
무거울 정도로 어두운 집터, 꽃이란 오랜 기억을 갈고 갈아 투명한 속살이 되는 이슬, 잠시 머물다 떠나고 다시 돌아와 오랜 나무의 벗이 되는 한해살이
꽃잎이 하나하나 오름을 오르고
낡은 집은 무너져 내린다

* 현기영 作 「순이 삼촌」에서
- 「꽃잎 하나」 전문

이후 첫 시집에 함께 실린 「지리망산 으름꽃」, 이번 시집에 실린 「돌담의 노래」 등 어쩌다 보니 몇 편 건졌지만, 제주4·3과 세월호 사건을 빼닮은 남영호 사건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갇힌 내 가족과 제주민에 대한 시적 자각은 늘 내 시 창작의 여정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주제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시간은 흘러 내 나이 육십을 바라보고 있다.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 한국해양문학가협회, 부산가톨릭문인협회, 금정구문인협회, 늘창문학회, 나로문학회, 바다 동인, 봄시 동인의 시벗들과 시를 나누고, ‘경부울 문화연대’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경남·부산·울산 지역 문화의 현안에 대해 고민하며 산다.
심수향 시인은 시집 『사바나를 벗어난 동물처럼』에서 “시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 역시 겨우 한고비 넘겨 시를 쓰고 있지만 내게 주어진 과제 앞에선 허둥대고 있으니 아직 갈길이 멀다. 그 과제들을 마음껏 휘어잡지 못하니 부끄럽게도 시에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시야, 미안하다.”

목차

자서

제1부

봄비 인사법ㆍ14
웃음꽃 한 송이ㆍ16
삼월이 간다ㆍ18
헛발질한 증거ㆍ19
날달걀 세우기ㆍ20
별이 반짝이는 이유ㆍ24
지구의 검지ㆍ25
얼음 등대ㆍ26
바다의 눈ㆍ29
바다의 문ㆍ32
안개와 수평선ㆍ34
물빛 사랑ㆍ36
한몸이 되는 순간ㆍ38
바람의 지도ㆍ40
하늘 핏줄ㆍ42
치자꽃ㆍ44
늪 속의 바람ㆍ46
저녁 가로등ㆍ48
매미 껍질ㆍ50
꿈꾸는 숲ㆍ52
ㅎㅎㆍ54
신불산 갈대ㆍ56
별ㆍ57
푸른 불꽃ㆍ58
빈집ㆍ60
애통과 애통ㆍ62

제2부

불안ㆍ66
팽이ㆍ68
새벽 풍장ㆍ70
어느 선생님의 낙서ㆍ73
이름값ㆍ76
어떻게 단풍 들까?ㆍ78
겨울 심장ㆍ79
화해ㆍ80
환장하겠네ㆍ82
돌담의 노래ㆍ84
사월 파도ㆍ86
사월의 이유ㆍ87
바람의 노래ㆍ88
고양이가 아냐ㆍ90
우화 1ㆍ92
우화 2ㆍ94
우화 3ㆍ96
물이라도 좋으니 아껴 줄래?ㆍ98
고양이가 운다ㆍ100
봄 달무리ㆍ102
꽃 핀 자리ㆍ104
겨울 수도자ㆍ106
물방울 탑파ㆍ108
새벽별ㆍ110
감사의 그릇ㆍ112
시작일까 끝일까ㆍ114

시인의 글ㆍ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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