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랑 샬리마, 우비강 푸제르 로열, 샤넬 No.5….
전설적인 향수들의 아름다운 향은
전쟁과 공황의 고통, 기술과 여성 인권의 발전과 함께 만들어졌다.
향수는 우리가 소비하는 대표적인 사치품이다. 없으면 안 되는 생필품도 아니고, 저렴해서 쉽게 살 수 있는 ‘소확행’의 대상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드물게 여성 소비자를 핵심 타깃으로 만들어진 상품이기도 하다.
18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140년간의 주요 향수들과 그 역사적 배경을 망라한 이 책은 향수의 이 같은 특성에서 전쟁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여성 인권의 신장과 소비 문화의 변화를 짚어낸다.
전설적인 조향사 에드몽 루드니츠카가 프랑스 파리의 쓰레기장 옆 건물에서 폭격 와중에 만든 향수 로샤스의 팜므(1944)의 탄생 비화부터 합의 이혼이 합법화된 1970년대 이후에야 향수가 남편이 사주는 선물이 아닌 여성이 선택하는 취향이 되었다는 설명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특히 저자의 향에 대한 묘사는 실제로 향을 맡는 것처럼 생생하다.
“베르가못으로 시작하여 정말로 부케처럼 은방울꽃, 오렌지 블로섬, 라일락, 자스민, 장미, 바이올렛 등 여러 꽃들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어떨 때는 라일락과 장미, 어떨 때는 라일락과 자스민, 어떨 때는 은방울꽃, 어떨 때는 장미와 자스민 등 마치 만화경으로 본 장면처럼 여러 꽃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라지고, 종래에는 다
섞이며 명료하게 무엇이라고 지칭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꽃 향이 됩니다. 잔향마저도 플로럴한 느낌에 약간의 오크모스와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섞여 끝납니다. 아름답고 로맨틱한, 꽃다발에 얼굴을 묻는 것 같은 향이에요.” - 우비강 껠끄 플뢰르(1912)
책을 읽고 나면 저자가 수집해 온 것은 빈티지 향수뿐 아니라 문화와 기술, 여성 인권의 발전 과정에 대한 사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수집한 빈티지 향수 47종의 사진과 과거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향수 광고 포스터로도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