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의 기원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세계대전이 몰고 온 애국주의 광풍에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대부분 굴복해 국제주의를 버리고 자국 정부를 지지하면서 제2인터내셔널이 수치스럽게 붕괴했다. 그 잿더미 속에서 떠오른 새 세대 혁명 투사들이 각국에서 공산당을 건설하고 제3인터내셔널(공산주의인터내셔널, 즉 코민테른)을 수립했다.
공산당들은 한때 러시아 등지에서 노동계급이 권력을 쟁취하도록 이끌었다. 공산당원의 압도 다수는 천대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의 대의에 진심으로 헌신하는 마음에서 입당한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기존 질서의 수호자들에게 수시로 박해를 당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공산당들은 점점 더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닮아 갔다. 서방에서는 기존 질서에 영합하려 했고, 동방에서는 집권당이 돼 혁명을 가로막고 탄압했으며,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정부 참여에 눈이 멀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기 일쑤였다. 이 책은 1946년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에서, 1953년 베를린에서, 1956년 헝가리에서,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와 프랑스에서, 1969년 이탈리아에서, 1973년 칠레에서, 마오쩌둥 시대 중국에서 공산당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 살펴본다.
희망과 배신이 뒤엉킨 공산당의 역사
1989~1991년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하자 그 사회 체제를 합리화하고 지지하던 전 세계의 공산당들도 급속히 쇠퇴·해산하면서 소멸하는 듯했지만, 오늘날에는 격화하는 미·중 갈등을 배경으로 (중국·북한·쿠바 바깥에서도)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와 경쟁하며 소생하고 있다.
지은이 이언 버철이 한국어판 머리말에 썼듯이 “오늘날의 좌파들(흔히 희망의 원천을 찾는 데서 어려움을 크게 겪는다) 중에는 공산당 집권기를 공산주의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로 기억하며 그리움을 느끼는 개인과 집단이 있다. 심지어는 사회주의적 면모가 있다는 척조차 하지 않는 푸틴의 러시아를 흠모하는 듯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희망과 배신이 뒤엉킨 과거 공산당의 역사를 “그저 잊어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는 결코 되풀이되지 않지만,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얻을 것이 상당히 많다. 과거의 독특한 과정들을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독특한 과정들에 대처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공산당들이 서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아직 건재했고 사회민주주의와 만만찮게 경쟁했으며 유러코뮤니즘으로 진화해 가던 과정을 다룬 이 책이 그런 과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40년간 사회민주당들의 배신의 역사를 살펴봤던 지은이의 또 다른 책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배신 1944~1985》와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