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포착하는 시인의 메타포
이 시집의 제1부를 여는 순간, 이 시인이 풍경을 포착하는 눈과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다. 일상의 주변에 있는 경관이지만 이를 포착하는 방향과 각도가 시인의 심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면, 우리는 그 영상에서 많은 전언을 엿들을 수 있다. 제1부의 사진들은 진중하면서도 그윽하다. 여기에 결부된 시적 언술은 사진이 다 말하지 못한 시인의 내면 풍경과 남몰래 숨어있는 마음의 상흔들을 시의 표면으로 밀어 올린다. 「물수제비」에서 별과 달과 바다의 언어, 「사라진 언어」에서 ‘일그러진 입들’을 가진 고목의 형상, 「이분법」에서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의 상징이 모두 이를 말한다. 이와 같은 관찰의 수순이 작동하고 있으면, 시의 의미가 깊고 풍성해진다.
비가 지나간 후
땅이 마르기도 전에
“이제 괜찮을 거야
이젠 괜찮을 거야” 말하며
쌍으로 찾아왔습니다
- 「아픔 뒤에는」
무지개는 언제나 꿈이요 희망을 말한다. 그러기에 일찍이 윌리엄 워즈워스가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 뛴다”고 노래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무지개가 하늘에 걸리기까지의 이전 단계가 곤고하기 때문에, 그 현상이 더욱 화려하게 빛나는 것이 아닐까. 어두운 밤이 길수록 밝은 아침이 더 찬란하듯, 시인이 목도한 쌍무지개의 배면에는 더 많은 인내의 시간이 숨어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추론에 대한 근거는 영상에 결부된 시의 문면에 있다. ‘비가 지나간 후 땅이 마르기도 전에’ 무지개는 ‘이제 괜찮을 거야’를 두 번 반복하며 쌍으로 찾아왔다는 진술이 그렇다. 시의 제목이 ‘아픔 뒤에는’인 것은, 이 무지개 출현의 순간을 인용하여 삶의 고난과 극복을 동시에 지칭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떠나버린 아내가 그리워
함께 간 아이들이 보고 싶어
이 산에 사다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고 그리움이 쌓이면
님 계시는 저 하늘에 닿겠죠.
- 「나무꾼의 사다리」
오르막 산길에 사다리 모양의 발 받침 시설이 깔려 있다. 더 위로 올라가도 계속되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 시설이 산을 오르는 이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풍경으로 보아서 한국의 야산 중턱쯤 되어 보이지만, 이 또한 알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 시인이 이 장면을 보는 시각은 사뭇 특별하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우리 옛이야기의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소환했다. 시의 현재 시점은 이 이야기의 후반에 이르러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하늘로 떠나간 다음이다. 그 속절없는 그리움에, 마침내 ‘님 계시는 저 하늘’에 닿고자,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사다리를 만들었다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 속의 나무꾼에게 현대적 의장意匠을 입히면, 곧장 오늘의 우리 형편과 같아질 수 있을까. 시인의 메타포가 경이롭다.
화자의 존재 증명과 재생 신화
이병석 시인의 디카시에는, 언제나 화자의 존재 자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타자가 전제되어 있다. 이는 시인 자신을 객관화하고, 동시에 자신에게 여러 상념과 의식을 공여하는 ‘당신’의 지위를 규정한다는 뜻이다. 때로는 그 당신이 시인의 신앙 위에 드리워져 있는 절대자인가 하면, 또 때로는 세상 만물을 형성하는 자연 풍광의 형상이기도 하다. 이 존재론적 구도를 바탕으로 하여 시인은 끊임없이 소거와 재생, 스러짐과 일어남, 소멸과 부활의 방정식을 꾸려낸다. 이 시집 제2부의 시들이 대체로 그와 같다. 「빈 그네」에서의 당신, 「싹이 피었습니다」에서의 당신, 「노송과 바다와 하늘」에서의 그림 그리는 노송(老松)이 모두 이 구조적 문법을 운용하는 타자의 모습이다. 그 맞은 편에 이 상황에 대한 인식의 주체로서 시인이 서 있다.
내 눈이 머무는 저 먼바다가 보이시나요?
난 그곳을 나는 꿈을 꾼답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그곳이지만
매일 조금씩 그리고 멀리 다녀옵니다
그러다 보면 내 눈이 머무는 곳까지 가 있겠죠
- 「내 눈이 머무는 곳」
바다 위의 나무섬에 갈매기 한 마리 외롭게 서 있다. 사람이든 새든 혼자 서 있자면 온갖 생각의 침범을 받기 마련이다. 시인의 관점은 어느새 갈매기의 그것에 투영되어 있다. 그러한 관찰과 발화의 방식으로, 시인은 갈매기의 입을 빌려 ‘저 먼바다’의 꿈을 진술한다. 갈매기는 자신이 ‘아직 가보지 않은 그곳’이지만, ‘매일 조금씩 그리고 멀리’ 다녀온다고 들려준다. 그러다 보면 ‘내 눈이 머무는 곳’까지 가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이때 먼바다의 꿈, 눈길이 머무는 그곳은 과연 어디이며 어떤 지형을 하고 있을까. 그것은 외로운 갈매기의 염원이자 시인의 소망이며, 마침내 우리가 추구하는 정신적 자유로움의 땅이 아닐까.
현상 너머 본질과 영혼의 울림
어떤 생명현상이나 자연현상에도 본질이 있고 현상이 있다. 본질은 그 대상의 내부적이고 안정된 본성을 말하며, 현상은 이 본질의 외부적이고 직접적이며 구체적으로 드러난 형식을 일컫는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비유와 상징을 동원하여 암시적으로 말하는 시에 있어서, 이 두 개념의 긴장감 있는 길항(拮抗)은 어쩌면 필요불가결의 요소인지도 모른다. 이 시집의 제3부에서는 유독 이러한 사유의 관계성이 잘 드러난다. 「공존」에서 볼 수 있는 공존의 원래 개념과 나무 및 풀의 모양, 「하늘에 걸린 가로등」에서 볼 수 있는 달과 하루 일과를 마친 발걸음의 상관성, 그리고 「거꾸로 본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래 위 물구나무를 선 뿌리의 탄식 등이 그에 대한 서술항을 이룬다.
저물 깊은 곳 숨겨진 왕국에
천사들마저도 시기한 버지니아와 에드거의 사랑 이야기가 있고
왕국에 갇힌 버지니아의 슬픈 노래와
그들의 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 되어 찾아온다
- 「수중 궁궐」
초록 물결이 출렁이는 물의 나라 한복판에, 검은 나무 등걸과 초록색 나뭇가지가 꿋꿋하게 서 있다. 시인은 여기서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 리」를 유추하고, 이를 ‘수중 궁궐’이라 호명했다. ‘천사들마저도 시기한’ 버지니아 글렘과 포의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가 이 물 가운데 잠겨있다고 선언하는 시인의 눈길은, ‘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잔해를 거기서 찾아낸다. 그 애틋한 사랑이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이 되어 찾아온다면, 이 물가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담론의 자리이며 가히 수중 궁궐을 조망할 수 있는 유의미한 공간이다. 사랑의 물결이 밀리는 이 풍광이 현상이라면, 시공을 초월하는 애너벨 리의 사랑 곧 참된 사랑은 사태의 본질이다.
디카시는 강조하여 말하자면 일상의 예술이요 예술의 일상이 가능하게 되는 새로운 문예 장르다. 온 세상의 남녀노소 누구나 이 시 놀이 창작 현장에 뛰어들 수 있고, 규격을 갖춘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다만 쓰기는 쉬우나, 그만큼 잘 쓰기가 쉽지 않다는 데 방점이 있다. 이병석 시인의 첫 디카시집이 이 용이한 접근법과 더불어 놀랄만한 수준의 영상과 시를 함께 묶어낸 것은 내내 화제가 될 만하다. 이 시집 제4부의 시들은 그처럼 일상적인 풍경을 모태로, 공감과 감동을 남기는 창작의 성과에 이르렀다. 「퇴화목」의 풍찬노숙(風餐露宿)을 지나온 나무, 「번개와 역사」의 기묘하게 팔을 벌린 나무, 「사랑의 다른 이름」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서로를 향한 마음’을 표출한 두 식물의 모양 등이 이를 증명한다.
AI
두뇌
터널 속 전자회로들의 움직임
초록불이 켜졌다.
- 「도서관」
고요하고 정숙한 도서관의 광경이다. 누구나 근접할 수 있는 풍정(風情)과 분위기에 잠겨 있다. 중세 건축 양식의 고풍스러운 천장과 창문이 잘 수용되어 있어서 이 영상의 품격을 높여준다. 시인은 이 그림 속에서 AI 곧 인공지능을 떠올리고, 인간의 두뇌를 그다음 시행으로 병렬했다. 도서관이 정보의 집합체이자 교류처라는 사실을 환기해 보면, 우리 시대의 품격있는 도서관이 그와 같은 용어 및 콘텐츠의 호명과 긴밀하게 공조 될 수 있음을 납득하게 된다. 이 도서관에서 ‘열공’ 중인 사람들과 그들의 시야를 밝히고 있는 초록 불이 매한가지로, 고색창연하고 조촐한 지적 이미지의 행렬을 형성한다. 이때의 시는 일상의 움직임 속에서, 한결 수준 있는 정신적 울림을 불러온다.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이병석 시인의 디카시 세계는, 꼭 60편에 달하는 시를 4개의 부로 나누어 한 권의 시집으로 간행했다. ‘하늘에 걸린 가로등’이라는 표제는, 사진과 시가 조합하여 산출하는 새로운 예술적 지향점을 표상하기에 매우 적절해 보인다. 그의 시는 우주와 자연의 경관을 바라보면서 내밀하게 움직이는 내면의 소리를 표현하고, 은연중에 그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작동하게 하는 불가사의한 존재의 힘을 상정한다. 그런가 하면 본질과 현상의 존재론적 발화 방식을 분별하면서, 평범한 삶의 도정(道程)에서 강렬한 영혼의 반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짐작컨대 앞으로도 그의 시와 디카시가 새로운 행로(行路)를 열어가면서, 우리가 수발(秀拔)한 문학예술과 만나는 기쁨을 간단(間斷)없이 누리게 해주리라 믿는다”고 평한다.
이처럼 이병석 시인의 디카시집 『하늘에 걸린 가로등』을 펼치면 일상의 풍경이 범상한 풍광으로 변화하는 환상과 웅숭깊은 사상의 침전(沈澱)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