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진 한남대 교수 - 해설 일부 발췌)
#1 - 〈(이혜경) 시인은 등단한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첫 시집을 내고 다시 5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다. 이로 미루어 보아 시인은 다작의 시인은 아닌 듯하다. 이런 느림의 행보는 시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 숙고와 고민을 거듭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번 시집의 가편들이 확인해 준다. 시적 생산의 양이 많은 다작의 시인이라 하여 모두 훌륭한 성취를 이루는 것도 아니며, 또 시적 의미나 시사적 의미를 확보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세계는 단 한 편의 시로도 충분히 충격할 수 있다.〉
#2 - 〈나는 이혜경이 추구하는 이런 디카시를 찰나를 봉인하는 영원 미학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아래의 시에서처럼 대체로 짧고 간결한 형태미와 여백의 미를 지향한다. 가령, 〈하늘과 땅 사이에 피는 꽃// 돌도 안된 손녀가 보내준 웃음꽃// 가장 커다란 함박웃음 꽃/ - 「행복」 전문〉 라고 노래할 때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너무나 투명하고 맑고 깨끗하다. 여기에 굳이 무슨 덧붙일 말이 필요할까만, 한 행을 한 연으로 처리하여 깊은 여백과 지극히 단순한 이미지의 전개로 말미암아 한 장의 사진을 보는 듯하다.〉
#3 - 〈이혜경의 시편들은 또 직관이 길어 올린 찰나의 순간 포착과 연관하기 때문에 사물의 풍경이 담고 있는 서정적 감각을 아주 간명하고 단순하게 표백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물들의 침묵 속에 초침이 흔들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결핍」) 헤매며 감각하려는 태도가 그의 시의 풍경의 감각을 이룬다. 그 시심의 풍경이 그리는 이미지들은 때로는 경쾌하고 건강하지만 또 때로는 우울한 실존의 불안한 자의식을 그려내기도 한다. 사실 이혜경의 디카시가 추구하는 것처럼 언어 이전의 사물, 즉 인간의 어떠한 관념으로도 표백되지 않는 살아있는 날것으로서의 사물, 그래서 인간의 관념적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물(物) 자체를 신의 예언자처럼 직관적으로 드러내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언어는 관념의 대체이기 때문이다.〉
#4 - 〈밝고 건강하며 굳센 의지의 양강과 경건의 풍격 이면에 이혜경의 시편들은 현실의 확실성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훼손된 자아와 세계의 우울하고 불안한 실존의 표정이 짙게 표백되어 있다. 말하자면 시인의 시적 사유의 중요한 징후 가운데 하나가 우울과 불안이라 부르는 정서적 경험의 변주이다. 그리하여 이혜경의 시는 다소 어두우면서 부드러운 음유의 풍격을 느끼게 하며, 그런 이유로 또 동양 시학에서 말하는 침착의 풍격을 내장하고 있다. 침착은 말이나 행동이 들뜨지 않고 차분함을 가리킨다. 이때 침(沈)은 시인의 심경이나 기분이 차분히 가라앉은 상태, 착(著/着)은 무언가를 꽉 붙잡고 놓지 않고 골몰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침착은 시인의 감정이 무겁게 가라앉은 것을 가리키는 동시에 어떤 감정이나 의식이 시인을 굳세게 사로잡고 있음을 뜻한다.〉
#5 - 〈개인적 차원에서든 사회 역사적 차원에서든 불안이라는 용어가 함의하는 현상들은 다종다기하다. 그런데 이혜경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불안의 일반이기 이전에 세계를 지각하는 특수한 감각이며 관점이라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우리는 이혜경 시인이 느끼는 특수한 불안, 시에 육화된 불안을 읽었다. 그런 가운데 내면 풍경을 낯선 이미지들의 연쇄 충돌을 통해 엮으면서 발생하는 모호하지만 만연한 어떤 심리적 정황들,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하는 의미의 불확정이야말로 이혜경 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