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퐁피두 센터 미술관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블루와 함께한 독창적 성찰
2019년 10월 12일. 야닉 에넬은 조르주 퐁피두 센터 7층 미술관에서 열린 “베이컨 특별전”에 전시된 42점의 그림과 마주하며 가장 고독한 밤을 보냈다. 그는 프랑스 스톡 출판사에서 기획한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의 하나인 이 책에서, 최고의 시간이었던 그 밤의 체험을 유려한 필치로 이야기한다. 여러 편의 소설과 미술에 관한 글들을 꾸준히 발표해온 에넬에게 미술과 문학은 같은 선 위에 있다. 수년 동안 그는 그림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카라바조와 들라크루아, 베이컨에 대해 명상하며 책과 그림의 상호 보완 관계를 독창적인 시각으로 탐색해 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과 문학 사이의 매혹적인 틈새에 서 있다. 내가 가장 편하게 숨 쉬는 곳이 바로 거기다. (…) 단어와 색채가 서로를 찾고, 교차하고, 얽히고, 맞물린다. 나는 글을 쓰면서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내 손가락 아래 미지의 호수가 열린다. 그리고 이 반짝이는 허공에서 나는 몸을 씻는다. 이것이 나의 진정한 삶이다.” _ 175p
에넬은 작은 손전등과 베이컨이 읽었다는 조르주 바타유의 책 한 권을 들고 저녁 늦은 시간에 퐁피두 센터 미술관에 들어선다. 하지만 미술관에 들어가 자리를 잡자마자 그는 안과적 편두통을 느끼게 되고 곧 극심한 고통에 빠져든다. 청소년기부터 베이컨을 사랑했고, 그의 그림을 이번 기회에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삼을 생각이었던 작가에게는 너무나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평소 지니고 다니는 트라마돌 두 알을 삼키고는, 불안한 상태로 베이컨의 그림들과 마주한다. 그렇게, 베이컨의 그림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그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자신의 편두통을 격렬하게 묘사하며 그 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폭력과 잔인함의 화가가 아니다
40년 동안 수많은 걸작을 남겼고, 추상화가 모든 조형예술을 지배했던 시대에 주류와 동떨어진 그림으로 격찬을 받은 화가. 부유해지고 유명해져서 세계 최고의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여는 영예를 얻었고, 그 후에도 계속 비좁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화가. 미술 경매에 작품이 나왔다 하면 늘 추정가를 훌쩍 넘기며 열띤 경합을 불러일으키는 화가. 그런 베이컨의 걸작들을 여유롭게 감상할 절호의 기회에 미술관 측에서 제공해준 간이침대에 누운 에넬은 어둠 속에서 고뇌와 해방 사이를 오간다.
두어 시간 후 겨우 정신을 차린 에넬은 베이컨의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앞에 선다. 그는 그 그림 앞에 오래 머물며, 화가가 평생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을지를 깊이 생각한다. 비이성적이고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주제들을 다룸으로써 “폭력과 잔인함의 화가”로 기록되었을지언정, 베이컨은 눈에 보이는 것이 삼켜질 위협에 맞서 그 세상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였고, 정신의 부재라는 조직적 현혹에 맞서 예술로 싸우고자 한 화가였다는 것을 에넬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분명히 하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폭력과 잔인함의 화가가 아니다. 가학적인(그리고 우리가 예술가들을 미치광이로 믿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회다. 카라바조나 베이컨처럼 위대한 화가는 악의 편에 서지도 않고 악에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는 인간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포착하여 그것을 드러내는 형태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_ 52p
화가가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
매혹적이며 기적적이었던 밤 동안 에넬은 모순된 강렬함의 상태에 사로잡혀 전시회를 탐험한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조지 다이어(베이컨의 연인)의 죽음을 기리는 3부작 같은 여러 그림과의 대면을 통해 작가는 베이컨의 그림이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극도의 감각적 미궁을 돌면서 베이컨의 그림에서 덜 알려진 측면, 즉 그의 색채의 관능미, 그의 파란색의 성적 신선함 등을 자신만의 언어로 드러낸다. 쾌락의 경험은 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노래로 강조된 깨달음으로 절정에 달한다.
소제목이 붙은 스물다섯 편의 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에넬은 조지 다이어의 죽음에 관해 세 편 분량을 할애했다. 1971년 10월, 베이컨은 파리 그랑팔레에서 전시 초청을 받았다. 베이컨 이전에 이 영예를 얻은 화가는 피카소가 유일하다. 기록에 의하면, 현대미술 애호가인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이 전시장을 방문해 베이컨과 사진을 찍고 작품을 관람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막 이틀 전, 베이컨의 동거인인 조지 다이어가 파리의 한 호텔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베이컨의 수많은 작품에 등장했던 화가의 뮤즈이자 연인이고 예술적 동료였던 다이어. 그 사건으로, 베이컨의 영광의 날은 그의 인생에서 최악의 날이 되었고, 연인의 자살 이후 베이컨의 작품들은 더욱 어둡고 기괴해졌다. 에넬은 베이컨이 다이어의 죽음을 그린 〈1973년 5~6월의 3부작〉을 보며, 죽음에 관해 깊이 성찰하고 애도한다.
에넬의 글은 베이컨의 그림만큼이나 자극적이면서도 잘 정돈된 소용돌이 같고, 그림을 텍스트로 묘사하는 시선에는 분석과 자전自傳이 뒤섞여 예리하면서도 명상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예술적 광기가 넘치는 화가의 작품들을 예술적 광기를 꿰뚫어 보는 작가의 시선으로 묘사한 글이 더할 수 없이 독창적이다. 그런 장점만으로도 《블루 베이컨》은 베이컨 팬들에게는 베이컨의 흥미로운 그림들을 다시 느껴볼 기회이고, 화가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저자의 흥미로운 통찰을 통해 그를 잘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베이컨의 그림들을 존재하게 만든 단어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면 좋겠다. 문학의 모호함 자체도 이와 마찬가지인데, 문학은 단지 문장의 세계를 조정할 뿐이지만 이러한 문장을 통해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조명한다고 주장한다. 이중의 소명은 항상 광적인 일이다. 이러한 모험을 하는 것보다 더 멋진 일은 없다.” _ 107p
미술과 문학이 만나는 이 멋진 접점에서,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작가가 그려낸 미적 경험과 그림이 퍼트리는 자유로운 빛의 에너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