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같은, 수다 같은, 독백 같은
1.
인류 문명과 그 역사를 같이 해 온 ‘책’의 의미가 현저하게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 책은 더 이상 귀중품도 아니고, 교양이나 지성의 전유물도 아니다. 무엇보다 ‘종이를 여러 장 엮어 맨 물건’이라는 책의 기본적인 정의가 바뀌었다.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SNS나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이 ‘준(準)-책’의 범주로 인정되거나 아예, 책의 일부로 취급되기도 한다.
게다가 오늘날 책 제작은 더 이상 엄청난 진입장벽을 가진,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아니다. 또 책을 소중한 물건으로서, 평생토록 보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손에게까지 물려줄 것으로 생각되던 시절은 상고(上古)적 이야기가 되었고, 공공도서관에서조차 정기적으로 책을 폐기하는 시절이 되었다. 다양한 소비재 중의 하나일 뿐이거나, 아예 ‘소비되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기조차 한다.
2.
그러나 ‘종이를 여러 장 엮어 맨 물건’으로서의 책은 단지 정보를 수록한 물성(物性)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 진화와 함께하면서 인류가 오늘과 같은 사고 행태와 문명 양식을 구축할 수 있게 한, 인간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 내면의 무의식 차원에 책에 대한 향수와 책을 통한 삶의 반추와 기록의 욕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책의 정의와 범위의 외연이 점점 확장되고 있지만, 그리고 그에 따라 인간의 정체성 또한 급격한 진화(進化) 또는 변화(變化)를 겪고 있지만, 책은 여전히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하는 인간 존재의 일부, 인간 삶의 일부, 인간 미래의 동반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 존재는 스스로 책을 펴냄으로써 완성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런 차원으로 접근하면 이 세상에는 여전히 ‘자기 책’을 가진 사람보다 가지지 못한 사람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그만큼은 여전히 흠모의 대상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책 세계의 이쪽(출판사, 작가, 책을 내 본 사람)에서 보면 책 출간의 진입장벽은 거의 높이가 없다고 할 만큼 낮아져 있지만, 책 세계의 저쪽(일반 독자, 책을 내 보지 못한 사람)에서 보면, 진입장벽은 여전히 아득히 높아 보이는 것이다.
3.
어려서 즐겨 먹던 반찬인 ‘고등어’가 내가 사는 경기도 어디쯤에서 나는 경기도산(産)인 줄 알고 자랐던 순박한 도시 내기 이윤정은 이러한 장벽을 돌파한,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는 책을 펴내고 싶다는 바람을 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성숙시키고, 마침내 그 장벽을 넘어섰다. 그의 책에는 평범한(세상 모든 사람은 각자 평범하다) 여성이 일상에서 기록할 수 있는 “시 같은, 수다 같은, 독백 같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글의 소재를 멀리서, 유별난 것에서 찾지 않고, 내 삶 속에서 우러나는 것들에서 수집하여,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써 놓고 한 발자국 떨어서 저자 스스로가 들여다보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나를 돌아보고, 멀찍이 놓고 쳐다본다는 것만큼 경이로운 경험은 없을 것이다. 그 아득한 황홀은 독자들이 공유해도 좋을 것이라 믿고, 용감하게 공감을 구하는 작업을 해 보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내며 이윤정의 이야기를 읽어 주기를 바라기보다, 독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 내리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읽어 보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