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시애틀의 자연과 역사
도시는 어떻게 시작되고 또 어떻게 진화할까? 물론 고대 도시에서 그 답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이들은 시간적으로 너무 옛날이라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대 도시 중에서 도시의 기원과 진화를 물리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그중 하나가 바로 시애틀이다.
시애틀은 도시로서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진다. 지리적으로 보면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는 내해가 있으며 동쪽은 워싱턴호수가 있다. 북쪽으로 유니온호수, 남쪽에는 두와미시강이 있다. 또 시애틀은 물리적으로 얇고 긴 모양이라 마치 물 위에 길게 떠 있는 다리 같다. 건축가들은 이를 가리켜 땅과 땅(혹은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는 ‘지협 도시(Isthmus City)’라 부른다. 시애틀 서쪽 내해는 퓨젓사운드(Puget Sound)라 부른다. 퓨젓사운드는 북쪽으로는 캐나다 밴쿠버까지 올라가고, 남쪽으로는 터코마까지 내려간다. 시애틀은 산도 많은데, 서쪽에는 올림픽산맥, 동쪽에는 캐스케이드산맥이 있다. 캐스케이드산맥의 대표 산은 레이니어산(Mount Rainier)인데, 시애틀에는 나지막한 동산(높이 150미터 미만)이 7개 있는데 이는 근경이자 도시 안 경계를 형성한다.
너무나 유명한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 시애틀의 파이크플레이스마켓(PPM)은 한때 데니힐 남쪽의 산자락이었지만, 오늘날은 다운타운 한복판이 되었다. 아마존캠퍼스와 아마존 본부가 들어서 있는 사우스레이크유니온(SLU)도 데니힐 평탄화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파이크플레이스마켓과 사우스레이크유니온은 오늘날 시애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세계적인 명소이다. 보잉이 태어난 시애틀에서 그 뒤를 이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했고, 스타벅스가 성장했으며, 아마존이 나왔다.
시애틀은 규모로 보면 미국에서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이처럼 지속적으로 산업혁신이 일어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날마다 혁신하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서 움직이는 도시다. 시애틀을 보면, 빙하가 만든 자연구조를 바탕으로 이를 잘 활용한 데니힐 평탄화 작업이나 번화가 이동 등 인공구조를 이루어낸 도시야말로 혁신을 이어가는 도시생태계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시애틀이 가진 도시 특성을 살펴보면, 앞으로 우리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왜 미국의 다른 도시가 아니라 시애틀에서 나왔을까?
지금까지 저자 이중원 교수가 펴냈던 〈건축으로 본 (도시) 이야기〉 시리즈는 거의 3년에 1권씩 발간되었지만, 이번 책은 무려 7년 만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 답사를 직접 할 수 없다는 공백이 컸지만, 책을 집필하는 속도보다 시애틀의 도시 변화 속도가 더 빨라서 좀처럼 원고 탈고를 하지 못한 이유가 컸다. 이 기간에 다른 매체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도시를 변화시키는 조건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축의 힘과 이 시너지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면서, 계속해서 새롭고 더 넓은 관점에서 파고들게 되었다.
“어떤 도로가 더 번영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도로의 번영 조건, 부촌의 이동 및 번화가의 이동 요건을 연구했다. 무엇이 그곳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또 무엇이 그곳을 매력 있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재미있고, 더욱 깊게 분석하고 생각해 볼 주제이다.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도시가 캠퍼스 연구파크로 새로워지는 방식과 코로나가 가속화한 기술 중심 바이오테크 글로벌 경제 변화에 주목했다. 코로나 기간, 코로나 백신이 미국 보스턴의 MIT-켄달스퀘어에서 나왔고, 온라인 활동이 광범위해지면서 빅테크 회사에 글로벌 자본이 쏠리며 미국 샌프란시스코 만의 스탠퍼드대-실리콘밸리에서 AI가 나왔다. 글로벌 바이오테크 자본이 보스턴으로, 글로벌 AI 자본이 샌프란시스코에 쏟아졌고, 같은 기간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아마존이 있는 시애틀도 엄청난 수혜를 누렸다.
시애틀 빅테크 기업은 AI의 폭발적 성장으로 자산가치가 분기마다 치솟고 있다. 또 이들 기업에 쏟아지는 자본은 시애틀의 물리적 변화를 주도한다. 구도심, 신도심이 서로 포개지고 갈라지며 도시를 끌어올린다. 아마존은 클라우딩 서비스와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을 열며 새로운 상품으로 다가간다. 빅테크 회사 캠퍼스와 도시의 상호작용은 다소 보수적일 수 있는 건축의 혁신과 변화까지 촉구한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기술과 도시와 건축이 어떻게 서로 대응해야 하는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코로나가 불러온 바이오테크와 기술 기반 바이오와 AI 혁명은 패권체제의 개편을 의미한다. 이 큰 흐름에서 이 책은 곱씹어볼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좀 더 빨리 내놓지 못한 이유가 급변하는 시장과 거래가 빚는 도시의 변화가 너무나 빨랐고, 그 물리적 변화가 가지는 의미를 소화하기 다소 벅찼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치는 1850년에 시작해 아직도 진행형인 시애틀의 변화를 2024년 스냅숏을 찍어 그간 변화를 현재에 성찰하고, 앞으로 전개될 시애틀호의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에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한 번쯤 독자 스스로 던져야 하는 질문은 “왜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미국의 다른 도시가 아니라 시애틀에서 나왔는가?”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와중에 숲의 중요성, 해양 생물의 중요성, 자연과 하나가 되는 도시의 중요성, 혁신을 갈망하고 혁신을 추구하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머릿속에 개념화되고 그려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