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동아시아 전통의학은 ‘뿌리는 같지만 기후와 토양이 다른 生長 과정’에서 제각각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자국의 문턱을 넘어 타국의 문을 열고 들여다봐야 한다. 시선을 달리하여 자기 세계를 확장하여야만 他者를 제대로 볼 수 있으므로, 연구의 대상(무엇을 바라보는가?)보다 연구자의 시각(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ㆍ동아시아 전통의학 역사를 보면 중국은 약 3,000년, 일본은 그 반인 약 1,500년에 걸쳐 있다. 일본은 중국 수입의학을 자국의 민족의학인 ‘和方’에 맞서는 용어로서 ‘漢方’이라는 용어를 붙였다.
ㆍ일본 한방의학에는 ‘유파’ 형성이라는 독특한 의료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은 두껍든 얇든 어느 정도의 배타성을 가지고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다. ‘표준의학’에 대응하는 ‘전통의학’의 정의도 어려운데, ‘전통의학’에서도 ‘流’ ‘派’가 존재하므로 속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그 뿌리까지 헤집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ㆍ의학사에서 1603년 에도시대가 열리기 전 30년의 전란의 시기에 마나세 도산이라는 한 의학자의 공로로 의미 있는 독자적인 의학 체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저자의 본론은 여기를 출발점으로 하며, 이후 일어난 계승·갈등·창 조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ㆍ저자는 대부분의 학자가 추구하는 방식인 ‘시대 흐름·구분’에 따르지 않고, 한방의학의 물줄기만 좇아가고자 한다. 고대 동아시아 의학이 어떻게 일본으로 흘러 들어가서, 오늘에까지 전해졌는가, 하는 식의 프레임이다. 역사학자처럼 ‘연대기에 따른 의학의 모습’이 아니고, 수입된 외래종이 어떻게 독자성을 확보하였는가 하는 토착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의학에 중심을’ 두면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배경을 함께 살핌으로써 어떻게 변모하였는지를 살피는 것이 저자의 전개 방식이다.
ㆍ역사의 교훈이라 흔히 말하지만, 미래를 지향하기 위해 서는 과거를 들이미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 과거를 돌아보면서도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 과거가 끊임없이 재발견되고 해석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ㆍ본서에는 의학자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의학자 한 명 한 명의 개인적 삶에 대한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려 하였다. 여기서 ‘師承關係’라는 단어가 나온다. 임상의는 어느 스승에게 배웠으며, 어떤 문헌을 가지고, 어떤 사고로 환자를 봤는가에 따라 치료 방법론이 달라진다. 이렇게 맺어진 스승과 제자는 자연스럽게 流·派를 형성하는데, ‘나는 누구에게 배웠으며, 어떻게 성숙하였고, 누구에게 전하는가’ 하는 것은 학문의 계승과 전승에서 중요한 고리이다. 우리가 오늘날 미래의 의학을 설계할 때는 계승과 전승의 과정에서 일어난 갈등과 대립, 변용과 창조를 눈여겨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