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산문과 시로 엮어낸 치유와 성찰의 기록
이종수의 시산문집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은 그림과 시, 산문이 어우러진 독특한 작품이다. 전업 작가로서 생계를 이어가는 어려움 속에서 시작된 그림 그리기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시인의 삶을 지탱하고 치유하는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제목에서 풍기는 유머러스한 뉘앙스처럼, 이 책은 일상의 고단함과 창작의 기쁨을 유쾌하고 진솔하게 담아냈다.
시인은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그 과정에서 자연과 사람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갔다. 책의 서문에 드러난 이야기는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림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담고 있다. 아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시작된 초상화, 기린에 얽힌 아버지와의 추억, 연밭에서 여름날의 풍경 등 시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그림들은 단순히 시각적 기록을 넘어 시적 정서와 사유를 담아낸다.
산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꽃과 실직〉에서는 어려운 시기를 버티게 해준 자연 속의 위안을, 〈어머니에게는 마당이 필요하다〉에서는 가족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자화상과 사람들〉에서는 "1일 1 그림"을 실천하며 얻은 창작의 기쁨을 이야기한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시인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통로가 되었고, 시를 깊이 있게 다듬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산문 끝에 실린 37편의 시이다. 그림과 산문이 그린 세계를 시로 이어받아 더욱 풍부하게 확장한다. 특히 시인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언어적 한계를 넘어서려 했으며, 이는 시와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