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희여기자상 · 올해의 여기자상 수상
《착취도시, 서울》 《여자를 돕는 여자들》 이혜미 기자 신간 에세이
최은희여기자상, 올해의 여기자상, 이달의 기자상 등을 수상하고 1만여 구독자에게 여성·젠더·페미니즘 뉴스레터 〈허스펙티브〉를 보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과 함께 해방할 길을 모색하는 이혜미 기자의 신작 에세이 《잠정의 위로》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약 100년 전 영국에 살던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 열두 문장을 가려 뽑아 현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으로 답장을 썼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8년작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과 ‘1년에 500파운드’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100년 뒤 자기만의 방과 소득을 가진 교육받은 여성들의 삶을 상상했다. 약속된 100년까지 3년이 남은 지금, 이혜미 기자는 여전히 여성에게 사나운 세상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고자 애써온 시간을 털어놓는다. 보호받는 성별로서 안정적인 원 안에 머무를 수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자꾸만 원심력에 이끌려 바깥을 바라봤다. 안온하고 풍요로운 원을 벗어나기란 어려웠으나 끝내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곳에는 ‘온전한 나’로 사는 삶이, 잠정의 위로가 있었다.
“결국 100년 전 영국 여성과 현재의 한국 여성이 발 딛고 있는
기울어진 땅은 본질적으로 같으리니”
서울의 사립대학교를 졸업한 뒤 주요 일간지 기자로 온갖 사건 현장을 누비고 다양한 무대에 연사로 등장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지금의 이혜미 기자에게서 가난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기자가 된 이유를 “따뜻한 시선으로 공동체의 변화와 공존을 모색하고 싶”어서라고 답한 까닭에는 빈곤과 수치가 깊이 새겨진 지난 기억이 있다. 부산의 한 영구임대주택, 가난한 싱글맘 가정에서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며 ‘보통’의 조건만이라도 갖추고 싶어 악착같이 배우고 살아남은 그는 사람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서울이라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났다. 서울을 사랑했고 서울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그 사랑은 지독한 외사랑 같았다.
다행히 글쓰기를 업으로 삼게 되었지만 많은 여성이 그러했듯 자기의 글과 생각을 의심하게 하는 이는 너무 많았고 자기만의 방을 갖기는 너무 어려웠으며 자주 남성과의 관계로 정의되었다. 똑같은 주제를 다루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격받기도 했고 그에게 중요한 이슈들은 신문의 맨 뒤에 조그맣게 다뤄지는 데 그치곤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버지니아 울프가 약 100년 전 《자기만의 방》을 썼을 때의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는 앞선 여성들의 텍스트에 기대며, 성취와 관계를 믿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 마침내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를 손에 쥐고, 끝내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페미니스트이며 글 쓰는 여성, ‘자기만의 삶’을 사는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울프의 시대 여성들이 그러했듯 어떤 억압 앞에서도 자신으로 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100년 전 영국과 현재의 대한민국의 기울어진 땅이 본질적으로 같다 할지라도, 오늘날의 이혜미는 자기만의 삶을 살며 “여성들이 보호받는 성이었을 때 관찰된 사실들에 기초한 모든 가정”을 허무는 방식으로 울프와 공명한다.
“그러나 이 수단을 얻었을 때,
나는 여전히 내가 해방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울프가 틀린 걸까”
마침내 자기만의 방과 안정적인 소득을 얻었으니 해방된 것일까? 가난 때문에 늘 밀려나는 삶을 살았던 그는 결코 자기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안정을 갈망해왔다. 하지만 그토록 원했던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를 거머쥐었을 때 그는 오히려 ‘부자유’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글을 통해 시대를 가로지르며 글 쓰는 여성들과 만난 끝에 발견한 ‘잠정’의 자리가 그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과 1년에 500파운드가 필요하다던 울프의 말이 강조하는 바는 안정적인 삶일지 몰라도 안정적인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바는 남성들과의 관계로만 설명되지 않는 삶, ‘집 안의 천사’를 살해하고 기꺼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삶, 언제든 원하면 자기만의 방을 훌쩍 떠날 수 있는 ‘잠정적인 삶’이었다.
잠정은 그에게 ‘자기만의 삶’을 살더라도 불안으로 굴러떨어지지 않고 머물 공간, 여전히 기울어진 땅 위에서 안정적으로 주어진 여성의 역할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선물했다.
“증명해 보이고 싶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공표하고 강력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도
정말로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고”
오늘날 어떤 여성들은 여전히 독립된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불안정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궁금하다. 우리가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는 있는 건지, 언젠가는 1년에 500파운드를 벌 수도 있는 건지. 어떻게 하면 그러면서도 나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을지. 이혜미 기자는 자신이 울프와 나혜석, 시몬 드 보부아르, 아니 에르노 그리고 자신을 축조한 모든 여성들의 말을 붙잡고 그 길을 건너왔듯, 이후에 올 여성들의 질문에 삶으로 답을 건넨다. 울프와 약속한 100년까지 아직 3년이 남았고 이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을 얻어 그 방 밖으로 나가기를 응원하며. “잠정을 사랑하는 탓에 영영 안정의 세계를 겉돌 뿐이라 해도, 고향 없는 슬픔과 야생의 행복 사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의 삶 있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