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_김기석 목사
ㆍ의심과 질문의 숲을 지나 다다른 레이첼의 마지막 책
ㆍ김기석, 김혜령, 김효경, 신지혜, 오선화, 진희경, 나디아 볼즈웨버 추천
이 책에서 레이첼은 ‘온 마음 다하여’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과 질문을 포함하여 자신의 취약함을 솔직히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에서 어떤 의미인지, 간과되고 무시되어 온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러 측면에 대해 질문하고, 숙고하고 그 답을 찾아 나간다. 그녀에게 있어 온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전통적 의미의 뜨거움이나 열심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며 유구한 신앙 전통의 공동체 안에 내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 안에 머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온 마음 다하여’ 사랑하기 위해 취약해지셨듯, 하나님을 믿으려는 인간 또한 ‘온 마음 다하여’ 취약함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사랑에 안겨야 하는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이다,라는 역설과 마주해야 하는것이다.
이 책에서 레이첼은 믿음, 확실함, 열정, 흔들림 없음, 의심하지 않기 등의 전통적 신앙 기준으로 인해 교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솔직한 마음을 터놓을 수 없는 세대를 위해 숨통을 터 준다. ‘왜 그리스도인인가?’를 묻는 그녀의 질문과 답변 속에서 독자도 레이첼과 함께 자기 신앙의 이유와 소망을 묻고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레이첼이 떠난 후, 그녀와 함께 ‘진화하는 믿음’ 컨퍼런스를 이끌어 왔던 오랜 친구 제프 추가 가족으로부터 유고를 넘겨 받아 완성한 책이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아는 제1저자(레이첼)와 제2저자(제프)가 협업하여, 레이첼의 목소리와 꿈을 고스란히 구현해 냈다.
결국 나의 믿음을 살린 것은 의심이었다
미국 남부, 공립학교 진화론 교육 논쟁을 불러일으킨 ‘스콥스 원숭이 재판’이 벌어졌던 테네시주 데이턴의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레이첼은 신앙의 진리를 세상에 전하기 원했던 열심 가득한 소녀였다. 학내 기도 모임을 주도하고, 마을 전도 계획을 세우고, ‘최우수 기독교인상’을 연이어 수상한 바 있던 그녀는 기독교 신앙의 탄탄한 이론과 토대를 갖추기 위해 기독교 대학에 진학해서는 기독교 신앙의 진리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원했던 열성 청년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들어갔을 때 그녀가 마주한 세상과 세상 사람들은 그간 배웠던 바와는 너무도 달랐다. 졸업 후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그녀가 전해 줄 진리가 필요한 죄인들이기보단 오히려 그녀의 좁은 시야를 열어 주고 오만한 마음을 받아 주고 도와주는 뜻밖의 사람들이었다. 레이첼은 자신이 전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통해 오히려 더 큰 세상과 사랑에
눈뜨며 더 큰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 알아 간다. 그녀는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줘야 한다고 굳게 확신했지만, 오히려 세상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그녀에게 발견하게 해 주었다.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교회 밖, 비신앙의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고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평생 배워 온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교리와 확실성에 대한 수많은 질문이 싹텄다. 그녀는 그 질문들 외면하기보단 하나하나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신앙의 전반적인 변화를 겪는다.
개인 블로그와 트위터에 나누던 이야기, 확신에 찬 신앙에서 의심과 질문을 수용하는 믿음으로 나아가는과정을 담은 회고적 이야기를 담은 ‘헤아려 본 믿음’(2010)이 책으로 나오면서 전국적인 작가로 부상하게되었고, 교회에서 있을 곳을 찾지 못하거나 교회를 떠나는 새로운 세대를 대변하는 작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성경적 생활 방식을 문자 그대로 실천한 실험의 기록인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년’(2012)을 냈고, 전통적인 교회를 떠나 다시 교회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교회를 찾아서’(2015), 모순과 역설로 점철된 성경을 새로운 눈으로 읽고 이해하는 여정을 그린 ‘다시, 성경으로’(2018)를 출간했다.
신앙생활 가운데 마주치는 근본 질문과 갈등을 특유의 솔직함과 따뜻함으로 담아낸 그녀의 글은, 온라인과 SNS상에 함께 질문하고 서로를 보듬는 온라인 공동체를 낳았다. 그녀가 던진 메시지는 보수적인 권위에는 도전으로, 교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는 연대와 지지로, 믿음과 교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공감과 영감으로 비쳤다.
오바마 대통령의 종교자문위원을 지냈고, 2012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지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여성 50인’에 꼽혔다. 캠퍼스 커플인 댄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고, 2019년 독감 치료 중 부작용으로 37세의 이른 나이에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대부분의 글을 썼던 블로그에 남긴 마지막 문장은 “죽음도 삶의 일부입니다”라는 사순절 묵상이었다. 어린 두 자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2021)와 유고를 정리한 ‘온 마음 다하여’(2021)가 사후에 출간되었다.
‘왜 그리스도인인가?’ 그리고 ‘진화하는 믿음’
레이첼은 자신과 같은 질문을 갖고 신앙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컨퍼런스를 기획해 열게 된다. 그녀의 신앙적 씨름에서 친구가 되어 준 ‘문신을 한 장신의 여자목사’ 나디아 볼즈웨버와 함께 ‘왜 그리스도인인가?’라는 이름의 컨퍼런스를 시작했고(‘온 마음 다하여’의 첫 장은 이때 레이첼이 나눈 강연을 옮긴 것이다), 이
후 몇 차례 이어지던 소규모 연례 모임은 그 필요를 공감하고 절감하는 이들을 위한 전국 모임으로 확장된다.
사라 베시, 제프 추 등과 함께한 ‘진화하는 믿음’이 그 후속 모임이었다. 레이첼이 주축이 되어 시작한 모임이 3회를 앞두고 그녀의 사망으로 기로에 서지만, 그녀 없이 그녀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어진 모임은 이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함으로써 그녀가 꿈꾸던 비전이 더 큰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전통적인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정체성 일부를 보류하거나 내려놓아야 했던 이들, 의심과 질문과 이성은 교회의 문앞에 놓고 들어가야 한다고 느꼈던 이들이 이들 모임과 관련 책에서 환대와 용기, 자유를 경험했다. 그동안 교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이들이 자신의 신앙의 근거를 고백하고 나누며 목소리를 나누는 모임이었지만, 그저 다양성의 인정이라기보단 인류를 다양한 모습으로 지으신 하나님과 그분의 은총과 사랑에 대한 더 큰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성경으로’가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된 이후 레이첼에 대한 팬덤은 미국 못지않게 형성되었다. 북미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신앙 지형에서도 같은 고민과 갈등을 하는 30-40대 젊은 여성 세대가 많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녀의 책은 20대 청년들에게도, 특히 ‘다시, 성경으로’는 성경 읽기를 위한 기본 도서로 대학 선교단체와 여러 교회에서 읽히고 있고, 비슷한 시기의 고민을 담은 ‘헤아려 본 믿음’ 역시 청년들의 애독서로 읽히고 있다. 어린 자녀들을 위한 그림책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는 아이들에게 읽어 주다가 오히려 부모가 감동하여 울어 버렸다는 후기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을 만큼, 그녀의 책은 전 세대에 걸쳐 공감과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다. 우리네 신앙 풍통가 북미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고(이는 ‘헤아려 본 믿음’을 읽어보면 확인할 수 있다), 우리보다 한 세대 앞서간 그들에게서 우리가 참조하고 숙고할 만한 유의미한 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레이첼의 마지막 책인 ‘온 마음 다하여’는 본문의 앞뒤에 편지로 시작해서 편지로 끝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레이첼의 남편 다니엘(‘댄’)이 떠난 레이첼에게 쓴 편지로 시작해서, 유고를 전달받아 책을 완성하게 된 경위를 담은 제2저자 제푸 추의 서문, ‘왜 그리스도인인가?’ 컨퍼런스에서 레이첼이 했던 강연, 그리고 본문
뒤에는 레이첼의 장례식에서 그녀의 절친이자 ‘모든 죄인과 성인의 집’ 목사였고 ‘어쩌다 거룩하게’의 저자인 나디아 볼즈웨버가 전한 추도사, 그리고 마지막에는 김기석 목사가 레이첼 혹은 이 시대 이 땅의 레이첼들에게 쓴 편지 ‘레이첼에게’가 덧붙였다. 그리고 그녀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다섯 여성의 긴 추천의 글까지, 그녀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우정과 사랑의 연대가 일궈 낸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 이 땅에서 ‘온 마음 다하여’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책이 무슨 일을 알 수 있을까? 추천의 말을 쓴 이들에게서 그 구체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나는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글처럼 이토록 솔직하고 진솔한 날것의 신앙문을 본 적이 없다”고 그녀의 글의 독특함을 언급하며 “의심의 은총,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다. 신앙의 전체주의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그의 마지막 책을 권한다”는 김혜령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의 지적은 이 책의 고유한 특징을 짚어준다. “그녀의 글은 처음 접할 때부터 느꼈지만 치유적이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다가 어떤 문장을 읽고는 내가 기다려 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 순간. 『온 마음 다하여』 를 읽을 때 독자들은 문장마다 그런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온 마음 다하여』는 아직 교회에 남아 신앙을 지키며 참 자아로, 다시 처음인 듯 살아가고 싶은 이들을 위한 책이다”라는 환대의공간 레미제라블 대표 김효경 목사의 글도 빼놓을 수 없다. “보수적인 신앙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점차 마주치게 되는 다양함과 이질감 사이에서 고민하고 탐구하고 논쟁했던 레이첼은 지금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에게 이 책을 통해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괜찮다고, 그건 이상하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레이첼의 단단하고도 부드러운(그녀의 말을 인용한다면 ‘얼굴은 두껍게, 마음은 부드럽게’가 될 것이다) 어조를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의 신앙에 대해,구도에 대해, 하나님을 알아 간다는 것에 대해 작은 용기한 줌 얻게 될 것이다.” 20년 넘게 ‘신지혜의 영화 음악’을 진행해 온 전 CBS 아나운서 신지혜 작가의 긴 글은 레이첼에게서 자신을 발견한 이의 고백으로 들린다. “『다시, 성경으로』를 통해 처음 만난 그녀는 용기 있고 솔직했다. 책을 읽는 내내 반갑고 놀랐고 부러웠다. 그녀는 내게 정의와 공의를 향한 용기와 확신을 선물해 주었다. 『온 마음 다하여』로 다시 만난 그녀는 내내 나를 설레게 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려 주었고,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려 보게 했으며, 내 믿음에 확신을 얹어주었다. 이 벅찬 설렘을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추천한다.” 청소년 활동가이자 여러 책의 저자인 오선화 작가는 레이첼이 던진 왜 그리스도인인가,라는 질문에서 용기와 동기를 발견한 경우라 하겠다. “온 마음을 다한 그 사랑의 향기 덕분에 일어났어요. 덕분이에요.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대의 여정에 보폭을 맞추어 동행하고 싶었던 게 분명해요. 주춤거리는 나의 리듬까지도 기꺼이 반겨 주리라는 믿음이 싹텄어요. 이 책의 행간에서 진하게 울려오는 메아리를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리운 옛 친구에게 쓰는 듯한 편지글을 쓴 진희경 목사(어린양교회)는 레이첼이 걸어간 길을 성경의 여러 인물이 보여 준길과 동일시하는 동시에 자신이 걸어가는 길의 동행자로 친근감을 표하고 있다.
레이첼과 비슷한 연배의 이들 다섯 여성 필자가 대변하듯, 이 땅에서 목소리를 찾지 못하고 억압받고 자유함을 잃은 신앙의 주변인들에게 혹은 방랑하는 기독인에게 레이첼은 신앙의 본령을 떠올리며 ‘온 마음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신 분을 기억하게 할 뿐 아니라 ‘온 마음 다하여’ 믿고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공감과 연대, 희망과 용기, 은총과 사랑을 북돋아 줄 것이다. 그리하여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처럼, 온 마음 다하여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의 눈길과 손길, 발길을 인도할지 모른다. 참으로 좋은 친구, 속깊은 동료, 그 여정의 동행자의 음성을 이 책에서 듣게 될지 모른다.